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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내고향 남쪽나라

노산 이은상 선생 기림 사화집

경남시조시인협회 편

 

 

권두언

이은상 선생 기림 사화집을 엮으며

 

김진희(경남시조시인협회 회장)

 

세계 각국은 각 나라마다 전통적으로 이어온 고유의 문화가 있습니다. 건전한 선진문화는 적극 수용하면서 우리 고유문화도 잘 살려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격변기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 노래는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일 할 때나 힘들 때, 즐거울 때도 노래 부르며 심신을 달랬다고 합니다. 산업화와 기계 문명이 발달할수록 정신적 안식처가 되는 고향에 대한 노래는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변함없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가고파>는 노산 이은상 선생의 고향인 경남 마산 앞바다를 그리며 지은 노래입니다. 파랗고 잔잔한 고향 바다와 그 위를 날고 있는 물새들, 그리고 같이 뛰어 놀던 어릴 적 친구들과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국 가곡의 형태가 아직 정립단계에 이르지 못했던 당시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애타는 심정을 표현하는 노랫말과 선율이 맑고 아름다워 우리 민족이 즐겨 부르는 가곡입니다.

노산은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으며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경찰서에서 갇혀 있었습니다. 8.15 해방이 되어 풀려나면서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과 안중근 열사 승모운동에 몸을 던져 이끌어 온 애국지사이기도 합니다.

고향생각, 가고파, 성불사의 밤등 서정적인 노랫말로 이 땅의 가곡사(歌曲史)는 물론 시조 부흥에 큰 자취를 남긴 노산은 산을 사랑하여 한국산악인회의 기틀을 다지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일제 강압시절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한 현실을 참고 이겨나가는 노랫말은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우리들 가슴에 물들이고 있습니다. 마음속의 영원한 고향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노산을 그리는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추억하며 그의 자취를 더듬어 이은상 선생 기림 사화집 가고파, 내 고향 남쪽바다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노산을 올바로 이해하고 선생이 추구하고자 했던 깊은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을 출간하기까지 편집 실무를 맡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원고 취합과 정리를 해주신 김복근 시조시인과 편집위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근대사에 대표적인 민족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을 주제로 중복된 내용은 피하였으며, 13편이내로 제한하여 가능한 많은 사람의 글을 싣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노산의 삶과 문학에 대한 재평가와 문학사적 위상位相을 정립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산선생鷺山先生님께

윤재근

 

 

노산선생님께 몹시 기쁜 소식을 올리고자 합니다. 서른 한명의 후배들께서 선생님께 올리는 헌사獻詞를 묶어 가고파, 내 고향 남쪽바다를 펴내었습니다. 몇 사람 말고는 모두 선생님의 후배 시조인時調人들입니다. 하늘에서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제 시조時調는 우리말을 더욱더 우러러 받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서는 후배 시조인時調人들이 짓는 시조를 하늘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읊어주셔도 됩니다. 선생님께서 20대 시절 시조는 없어져야 한다던해와파海外派들의 입질을 시조로 써 열창熱唱하셨던 일을 후배들은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일제강점기를 무릅쓰고자 방방곳곳을 몸소 찾아다니면서 조선사화집朝鮮史話集을 엮어내시고 이 산하山河 우리들에게 절절한 시조를 읊게 해주셨던 선생님의 깊은 뜻을 또한 후배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더욱 기뻐하실 일은 후배 시조인들이 시조는 우리말이 아니면 지을 수 없음을 뼈저리면서부터 시조가 우리네 가시歌詩의 본류가 돼가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속담은 굴러온 돌은 박힌 돌을 뽑지 못하고 결국 굴러 가버리고 만다는 속뜻을 담고 있음을 이제는 다들 알고 있는지라 선생님께서는 걱정하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제 정신머리 없는 사대事大 따위는 헛것임을 문화적으로 깨우친 터인지라 노산정신鷺山精神이 정백正脈이 돼 앞으로 더더욱 시조정신時調精神의 지남指南이 되어 가리란 확신을 이번에 선생님께 올리는 가고파, 내 고향 남쪽바다에서 시조인이 아닌 저마저도 갖게 되었습니다. 외람되이 선생님께 아룁니다: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기쁘게 미소微笑지어 주십시오.”

(한양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축사

                                                                       마산의 자랑,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

 

                                                                            창신대학교 이사장  강 병 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학가이신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의 기림 사화집 가고파, 내 고향 남쪽 바다출간을 창신학원의 전 가족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난 11월에 창신고등학교 소강당에서 있었던 제1회 노산시조문학상 시상식을 돌이켜 볼 때,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기려 수여하는 여느 문학상보다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노산 선생께서 출생하신지 113년과 서거하신지 34년을 맞이하는 해에 경남시조시인협회가 뜻을 세우고 마산의 향토기업인 몽고식품주식회사에서 기금 지원을 하여 주시므로 아름다운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부터 마산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예향도시입니다. 노산 선생은 마산에서 태어나 창신학교에서 초중등과정을 수학하시고.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마치고. 다시 모교에 교사로 근무하는 등 청소년 시절의 꿈을 창신학교에서 키웠으며. 일본 유학을 통한 문학의 성숙을 일구어 현대시조의 기초를 든든히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노산 선생은 31독립만세 운동의 참여와 한글을 말살하려는 일본의 폭정에 맞서 우리말 사전 편찬에 앞장섰던 관계로 마침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의 혹독한 옥고를 치르시다가 조국해방이 되자 출옥하여 건국위원회에 참여하신 독립유공자로서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 종신 명예회장 등 많은 사회단체 활동은 물론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였습니다.

선생의 서거 이후 고향 마산에서는 선생을 기리는 노산가곡의 밤’, ‘민족문화강좌’, ‘영 리더스 강좌등의 사업이 있는데 그 가운데 창신고등학교 교정에 가고파시비를 건립하여 선생의 얼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노산 선생의 문학적 업적은 영국에서는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독일에서는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같은 반열에 오른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산의 시조문학의 공적과 향기를 그 무엇으로도 결코 덮을 수 없으며 그의 고결한 나라사랑의 의지를 퇴색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갈 때 비로소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발간하는 사화집 가고파, 내 고향 남쪽 바다에는 서른 두 분의 필자들이 그동안 노산 선생에 대한 순결한 문학 사랑과 나라사랑 정신에 관하여 쓴 마흔 여섯 작품을 다섯 갈래로 나누어 선생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도록 엮은 자랑스러운 책입니다.

작년의 아름다운 출발에 이어 올해 발간되는 사화집이 마산의 자랑이자 한국적인 멋과 아름다움이 돋보이도록 자리매김할 것이며 앞으로 한국 시조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선생의 모교인 창신고등학교에서 문학적 소양을 갖춘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발간을 위해 수고하신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며 거듭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총 목차

 

노산시조 12선

고향생각/ 옛동산에 올라/ 성불사의 밤/ 사랑/ 가고파/ 진달래/ 오륙도/ ㄹ자/ 해바라기/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탱자꽃/ 고기가 바로 저긴데

 

제1장 국민애창곡

노산 선생의 조국애와 가고파 주변 이야기 -김교한

미항 마산과 가고파 - 이우걸

가고파의 브랜드 가치 -김복근

그래도 애향의 노래는 불러야 한다 - 김복근

노산문학의 진실 -하순희

한국의 명시 불후의 가곡 가고파 - 서일옥

가고파여 가고파여! -임성구

노산 선생을 만나다 - 공영해

가고파 꼬부랑길 - 옥영숙

 

제2장 조국을 노래한 민족시인

노산의 충무공 사랑 -이근배

대문호 노산 이은상 선생 -김시종

만원의 가고파 사랑 -남재우

노산 선생의 마산사랑 -오정방

애향, 애국시와 노산 -이우걸

노산시조문학상의 의미 -김연동

연정을 곡진한 선율로 노해한 노산 이은상 -이처기

노산의 양장시조를 다시 생각한다 -장성진

노산 선생의 향기 -하순희

노선 선생의 옥중시조 -서일옥

작품마다 조국애 영원하리 -이두애

 

제3장 노산 선생의 삶고 사유

노산의 고훈(誥訓) 조국으로 돌아오라 -윤재근

노산문학의 얼 말 글 정신 -이근배

경남지역의 문인등단 50주년 기록자들, 이은상 -강희근

고향을 내 세우지는 못할망정 -오하룡

노산의 인간성에 머리숙이며 -홍진기

피어린 육백리 -이처기

노산은 친일인사가 아니라 반일운동가였다 - 이달균

시인과 산악인의 삶을 산 노산 이은상 -이용대

노산 이은상과 리스 엘조그 -백인섭

겁도없이 따라간 겨울 설악산 -손수원

 

제4장 청라언덕과 은상이 샘

청라언덕은 노산의 동무생각 시속에 있다/ 조원기

고유한 창원(마산)의 문화유산 청라언덕 -정목일

대구 청라언덕 사업의 허구성 -김복근

<은상이 샘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읽고 -김정희

물맛 좋은 은상이 샘 -오정방

은상이 샘 가고파의 어머니 -조현술

우리 시가의 고향 이은상 시인 -이경철

좋은 선생님 -김진희

 

제5장 역사적 진실과 고언

노산 선생의 백운산 은거지 답사 -김교한

노산 선생의 은거지 백운산은 말한다 - 김교한

노산 선생 315의거 폄하논란의 진의 분석 -오하룡

노산 이은상 선생에 대한 우리 문인들의 입장 -오하룡

노산문학관, 마산문학관 택일의 갈림길에서- 민병기

가곡 <그리워>에 얽힌 일화 -김복근

진리는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 보인다 -명형대

경남 출신 애국 국어학자 선양사업 하루빨리 서두르자 -임규홍

시의 도시엔 노산문화제가 필요하다 -이달균

 

 

                                                                            대문호 노산 선생의 삶과 사유

                                                                                          -노산 기림 사화집 뱔간의 의미

                                                                                                  편집실무  김복근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입니다. 좋은 문학작품을 만나면 마음이 맑아지고 높아지며, 삶은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집니다. 성품은 고상하고 순결해집니다. 심신을 즐겁게 하면서 진실을 깨우쳐 주기도 하고, 생생한 에너지와 원기를 회복시켜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노산 이은상 선생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맑고 아름다운 삶의 진실을 깨우쳐 주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1903년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 창신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수업하다가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사학부와 동양문고에서 국문학을 연구하였습니다. 1928년 조선어사전 편찬위원을 시작으로 이화여전 교수, 동아일보 기자, 신가정(新家庭)편집인, 조선일보사 출판국 주간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홍원 경찰서와 함흥 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기소유예로 석방되었으며, 1945년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 경찰서에 유치 중에 광복과 함께 풀려났습니다. 광복 후 이충무공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중근의사숭모회장, 민족문화협회장,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맡아 민족정신 함양과 선열 기림 사업을 펼쳤습니다.

선생은 시, 시조, 수필, 평론, 국학연구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26년대, 시조부흥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시조를 비롯한 전통문학과 국학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동안 자유시와 시조 창작을 병행하다가 1930년대부터 시조인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됩니다. 시조를 창작하면서 시조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기도 합니다.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조 문제, 시조단형추의(時調短型芻議), 시조창작문제등의 논고를 통하여 시조의 정형성을 구명하려 하였습니다. 1932년에 나온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은 향수 · 감상 · 무상 · 자연예찬 등이 담겨있는 명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고향생각, 가고파,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등은 가곡으로 작곡되어 그 감미로운 서정성은 인구에 회자됩니다. 광복 후 선생의 시조는 국토예찬, 조국분단의 아픔, 통일에 대한 염원, 우국지사들에 대한 추모 등 개인적 정서보다는 사회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노산시조선집(1958)푸른 하늘의 뜻은(1970)으로 묶어졌고, 마지막 시집 기원祈願(1982)에서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선생의 시조는 쉬우면서 기발하여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습니다. 사학가이면서 수필가이기도 한 선생은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유려한 문장으로 국토순례기행문과 선열의 전기를 많이 써서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습니다. 광복 후에는 사회사업에도 진력하게 됩니다.

문학 작품은 당대 사회가 처한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선생의 경우는 일제 강점기라는 어렵고 궁핍한 현실에서 유년기와 소년기, 장년기를 보내야 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안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그의 생애와 작품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작품과의 상관관계가 드러나며, 구체적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나타나는 주제 의식의 변모 양상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선생을 가리켜 백철은 동양적인 무상의 시인이라 했고, 서정주는 애정과 향수의 시인이라 하였으며, 피천득은 애수적인 시인이라 했고, 이태극은 기교적인 시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평자들이 그를 애국시인, 민족시인, 종교시인 등 다양하게 일컫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선생의 시조 세계가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학 작품은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독창적인 소산입니다. 작품이 독자적인 원리와 체계를 가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사회적 산물이라면 작품이 갖고 있는 미적 양식으로서의 독자성과 사회적 표현으로서의 역사성은 그 중요성이 다 같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선생의 아호 노산鷺山은 선생의 생가가 있던 노비산鷺飛山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파자해보면 뜻을 나타내는 새 자와 음을 나타내는 길 자를 더하여 이루어진 형성문자입니다. 길 노는 발로 걸어 다니는 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람의 도리방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가 함의하는 백로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남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까지 날아다니는 여름철새입니다. 젊은 시절 노비산에 서식하는 백로를 보면서 자유인의 기상을 키운 선생은 방방곡곡 산과 강을 직접 답사하면서 조국강산이라는 시집을 남기기도 하였고, 작고하는 해에는 남북분계선 155마일을 횡단하면서 시집 기원을 읊기도 하였습니다.

선생의 시조를 읊조리면서 땅에서 올라오는 지기地氣와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기天氣가 호응하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 마산에는 선생의 흔적과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워져가고 있어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우리는 소박하지만, 노산기림사화집 가고파, 내 고향 남쪽바다를 묶어내기로 하였습니다.

지난해부터 원고를 수합하고, 정리하고, 편집하면서 우리는 일제강점기에는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였고, 광복 후에는 정치적 유혹을 멀리하면서 오로지 나라 사랑과 문학 활동에만 전념한 선생의 숭고한 행적을 밝힐 수 있어 남다른 기쁨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선생의 작품 속에는 선생의 삶과 사유체계가 담겨 있고, 그 삶 속에 역사와 사회적 환경, 인간적 조건이 포괄되어 있습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선생의 시조 정신과 미의식, 삶에 대한 굳건한 의지와 조국애를 음미하기도 하였습니다.

선생에 관한 글은 수없이 발표되고 있으나. 이번 사화집에는 선생을 기리는 내용을 중심으로 31명의 후학들이 45편의 글을 모아 수록하게 되었습니다. 귀한 원고를 주신 필진과 축하의 글을 주신 윤재근 교수님, 강병도 이사장님, 격려를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편집 취지와 달라 수록하지 못한 원고의 필자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선생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 실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