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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문학> 창간내력의 실제

 

오하룡 시인, 경남문학 초대 편집장

 

 

 

서언

 

지금 현재 경남문학사()에는 <경남문학>2개 존재한다. 하나는 1969831일 창간되어 겨우 2(1970831)로 종간되고 만 한글제목의 <경남문학>이고, 하나는 1982년 창간되어 현재 통권 123호에 이르고 있는 정통 <경남문학>으로, 제목이 한자로 된 <慶南文學>이다.(사진 참조) 그러니까 같은 경남문학으로 이름은 같으나 뿌리가 다른 것이다. 이러함에도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에는 이 두 개를 뿌리가 하나인양 연결 기술하여 얼버무리고 있어, 자칫 이 사실을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나중 엉뚱한 오류의 역사로 굳어질 염려가 있어 그 실제를 밝혀 정리해 놓고자 하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처음의 <경남문학>이 창간되었을 때 중단 없이 계속 간행되었다면 후발 <경남문학>이 새삼 출발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경남문인들의 긍지인 <경남문학>지의 역사의 두께도 더 두툼하고 단단하게 알차짐으로써, 전국 어떤 지역의 문학 지() 보다도 자랑스러운 모범자산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영속되지 못한 것이 새삼 아쉽게 다가오는 것이다.

처음의 것이 창간된 것은 1969년이니 1982년에 새삼 <경남문학>발간을 계획하면서 앞의 것과 연결시켜 연속 발간하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햇수로 10년 넘게 중단되었던 사실 때문에 그 간극을 넘어 명분만 쫓아 그냥 하나로 이어가기가 무리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짐작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나갈 사실이 하나있다. 뒤에 그 연유가 살펴지겠지만 이런 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의 핵심 위치에는 마산문협(당시는 문협지부라고 표기하였음)이 존재하고 이 단체가 이 일을 주도한 점이다. 처음 것은 당시 마산문협 회장이던 김교한 시조시인이 간행위원장을 맡아 진행하였고, 후의 것은 당시 회장이던 이광석 시인이 맡아 창간작업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정은 전적으로 당시 경남지역의 중심기능이 마산지역에 있었고 지역문단의 중심역할을 마산문협이 해 왔다는 점과 주역인 된 주요문인 또한 마산문협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 자연스럽게 마산문협이 중심역할을 하게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경남문학> 창간의 실제

 

1969년 창간의 경우

 

1969<경남문학> 창간 무렵 그때는 미처 범 경남문학 단체, 즉 경남문협의 결성 같은 생각을 못했던 같다. 경남문학 간행위원회 이름으로 간행된다, 간행위원회라면 조직을 어떻게 갖췄는지도 막상 책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간행위원장은 당시 마산문협 회장이던 김교한 시조시인이 맡고, 실무는 마산문협 사무국장이던 염기용(백치동인, 뒤에 조선일보 출판부장 역임, 당시 경남매일 기자) 작가가 맡았던 것으로 편집후기를 통해 짐작이 된다. 무엇보다 창간 취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창간사(1)와 편집후기(2)에서 직접 발간의 취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창간사에서 보면 경남문학 창간 취지로 두 부분의 내용이 살펴진다.

첫째는 이제 신문학 60주년의 고비를 넘기고 한국문단사의 물굽이가 전환 될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부분이다. 우리 현대시의 출발로 평가되는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소년> 지 창간호에 발표된 사실을 중요시하여 이 무렵 신시 60년 행사를 범 문단적으로 진행하였다. 이에 자극받아 지방으로서도 자연히 시단과 문단 전반에 걸쳐 현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여기 편성해 자연스럽게 경남문단에서도 <경남문학> 창간분위기가 대두된 것으로 유추된다.

둘째, 신시 60년이 거론되다보니 지방문단이 상대적으로 중앙문단에 비해 낙후된 것을 깨닫게 된다. “줄기차게 치닫는 조국의 새 역사 앞에 지방문단이 뒤떨어지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지방의 열등의식의 반등을 위해서도 중앙과 비등한 문학지의 간행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했을 수 있게 보이는 부분이다. “스스로 허약을 드러낸 중앙 의존심을 없애고 솔선하여 우리 문단을 개척해야 할 사명감을 이 지역사회와 조국 앞에 실현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향토문단의 새로운 탑을 높이고자 하는 소이가 있는 것이다.”라고 다소 우회적인 표현이기하나 명확히 밝혀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무적으로 어떤 조직이 적극성을 보였을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해답은 편집후기에서 설명되고 있다. 당시 <경남매일신문> 박두석 사장이 문협의 허실을 보게 되고 그렇다면 경남매일편집진이 경남문학 창간에 간여하는 것이 최선책이 라고 보고 결단을 내리면서 일사천리 창간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닌지 유추되는 것이다. 편집은 물론 교정까지 협조가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경남매일 기자이면서 마산문협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염기용 편집자는 <경남문학> 창간을 당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달나라에 착륙한 아폴로우주선 사건에 비교하며 경남문학 창간호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협(文協)>은 마산문협의 기관지 <문협>을 말한다. 마산문협은 1962년 창립되었으나 기관지는 1968년에 이르러서야 창간호를 내게 된다.(마산문협이 <마산문학>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왜 <문협>으로 했는지는 궁금한 여지를 남긴다. 3호부터는 <마산문학>이 된다)이 창간호를 내고 바로 다음해 경남문학 발간위원회를 결성하여 <경남문학> 창간호를 간행하게 된 것을 알게 된다. 마산문협은 <문협>지를 속간해야 했으나 <경남문학> 1-2호를 내는 동안 결간(缺刊) 하고 경남문학이 2호로서 사실상 종간되고 난후 19722호 문협 지를 속간한다. 그러니까 <경남문학>을 간행하는 동안 마산문협은 기관지를 내지 못하고 경남문학으로 대신하는 이타의 희생정신을 보인 것이다. 이러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다. <경남문학> 2호의 편집후기에서 그 단면이 드러난다. 창간호에서 편집을 맡았던 염기용 작가가 경남매일에서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기면서 편집진이 바뀌고 그만큼 편집에 고충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 더 이상 <경남문학>의 속간을 어렵게 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마산문협은 더 이상 <경남문학> 발간에 매달리지 않고 본분의 <문협> 발간으로 회귀하는 분위기가 예감되는 것이다.

 

 

1)

창간사

향토 문단에 탑을 세워

 

우리 남도는 산하가 맑고 굽이쳐 아늑한 해안선에 이었다. 그러기에 정서의 가락도 높고 길다. 일찍이 많은 시인 작가를 배출하였으며 슬기의 씨앗을 퍼뜨렸다. 그러나, 지방이란 조건이 향토를 끝내 지키게 하지 못하고 이 고장을 떠나게 하였다. 문학이 민족 정신의 소중한 재산이라면 여기에 있어 지방과 중앙의 차등이란 관념조차 있을 수 없다. 이제 신문학 60주년의 고비를 넘기고 한국문단사의 물굽이가 전환될 시기에 접어들었다. 줄기차게 치닫는 조국의 해 역사 앞에 지방문학이 뒤떨어지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중진이란 이름의 권위와 줄달음치는 중앙 편중현상은 소외감마저 더욱 짙게 하였다. 이 현상은 중앙에서 발행되는 문학지의 수가 한 두 권 는다고 해서 해소될 일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향토문단의 새로운 탑()을 높이고자 하는 소이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허약을 드러낸 중앙 의존심을 없애고 솔선하여 우리 문단을 개척해야 할 사명감을 이 지역사회와 조국 앞에 실현하려는 것이다.

경남 향토권 안에 있는 전 작가 문필가들의 의욕과 창의를 터 연간지 <경남문학>을 창간하는 바이다. 드높고 슬기로운 문학의 기능을 발표할 것을 전제로 할지라. 이 경남문학을 통해서 수작(秀作)이 발표되어 지역 사회의 발전과 한국 문단사에 새로운 빛이 더하기를 스스로 힘써 정진할 것이다.

 

19698

경남문학 간행위원회

위원장 김교한

 

2)

편집후기

*그것은 이 고장에서의 아폴로계획이었다. 무모하다고 표현할 만치 허허한 초토(焦土)에서의 출발이었기에 마지만 페이지가 인쇄되기까지 진땀나는 긴장의 연속을 강조 당했다.

처음 이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문협마산지부가 <文協>지를 발간한 뒤로 당시 경남매일신문 박두석 사장의 지원에 큰 힘을 입어 과감히 내세운 기획이 681월 문학작품만으로 기회하지 않는 것도 범 향토문단지란 점과 350만 도민이 모두 참여겠다는 점에서 <문화재를 아끼자>를 특집으로 삼고 그 필진을 넓히었다.

*대개 도내에 살고 있거나 경남출신 문인, 문필가를 대상으로 했다.

(내용 보완)

*반년만의 편집기간에 더 많은 옥고를 마련하지 못하고 이 정도로 만들어 놓고 보니 부끄러우나 더욱 이 책이 끝내 지방 문단의 기수가 되어야 할 것을 다짐해 둔다. 귀중한 옥고에 응분의 대접을 못해 드린점 송구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끝내 쉬임없이 밀고나간 출판부의 끈기도 그것이려니와 교정에 볓밤을 세우며 땀 흘려준 경남매일 이영배, 정호연 제씨는 이 책과 더불어 영 잊혀질 수 없다.

*출간에 큰 힘이 되어준 몇 관계 기관에게 만강의 기쁨을 표한다.()

 

1982년 창간의 경우

 

<경남문학> 두 번째 창간도 마산문협이 주도하게 된다. 계기는 1982년 가을에 개최되는 제63회 전국체전이 기폭제가 된다. 체전행사에 문화행사도 곁들여져야 하는 만큼 문학 분야도 어떤 형식이든 당연히 참가해야 했다. 한해 앞서 한국문협의 지방순회행사가 <한국문학과 인간성 회복>이란 제목으로 마산에서 12일 개최되었다. 당시 마산문협 회장이던 이광석 시인은 조연현 이사장을 만난자리에서 체전용 <경남문학> 특집 간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취지를 설명하였다. 그날 저녁 이규효 지사 초청 연회장에서 조 이사장이 이런 사실을 축사를 하면서 공개함으로써 경남지사의 관심을 끌어 급진전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시일이 촉박하여 우선 경남체전 기념 <경남문학 특집호>로 계획하고 도내 문협 단위 또는 개별문인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간행을 실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미처 장래 연속 속간을 생각 못하고 전국 체전을 위한 문인들의 참여만 의식한 나머지 창간호라고 표시하지 못하고 특집호라고 발간한 것이 다음해 1983년 경남문인협회가 결성되면서 속간으로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으나 특별호표시로 다소 어색한 출발이 경남문학 창간호가 된 이유이다.

앞의 1969년 창간호 때는 조직이 표시되지 않았으나 이번의 간행위원회는 조직이 갖춰진다. 명예간행위원장은 이규효 당시 경남도지사, 간행위원장은 마산문협회장 이광석 시인이 맡는다. 간행위원은 마산 신상철 수필가, 김교한 시조시인, 서인숙 수필가, 진주 박재두 시조시인, 강희근 시인, 울산 김성춘 시인, 김해 전기수 시인, 남해 문신수 소설가, 통영 차영한 시인, 창원 황선하 시인, 밀양 유종관 시인 등으로 지역 대표들이 망라되었다. 당시는 울산이 경남에서 독립되기 전이어서 울산 문인들이 경남문협에서 활동하였다. 여기에 편집 실무진도 갖춰지는데 마산문협 실무진이 그대로 맡는다. 마산문협 부회장 임신행 아동문학가, 사무국장 오하룡 시인은 당연직이고 당시 출판사 해조문화사를 운영하던 박재호 시인, 이광석 시인과 경남신문에 같이 근무하며 이 간행위원장을 돕고 있던 문화부 기자 정목일 수필가가 참여하여 구성된다. 이들은 모두 마산문협 소속이다. 다음의 편집후기에서 밝혔듯이 이 특집호는 <마산문학> 8집을 대신하고 있다.

편집후기

*마치 경남의 뿌리를 캐내는 작업을 하는 느낌과 고충을 겸하게 했다. 전국체전이라는 큰 잔치는 헤어졌던 이름과 얼굴을 다시 챙기는 보람을 안겨 주기도 했지만 노산 선생님의 명복을 비는 아픔을 안게 됐다. 우리 고장의 문맥이 이토록 깊고 넓은 줄 다시 한 번 놀라면서 어떻게 하더라도 소홀함이나 빠짐이 없어야겠다고 서둘렀으나 뭣인가 허전한 구석도 있지만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들이 거듭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원래 우둔하여 손끝이 여물지 못한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오형이 산역을 맡았다. 월초 선생님은 노구의 몸으로 나오셔서 손수 쓴 원고와 교정지를 살피셨고 지부장 이광석 시인은 경비조달, 원고 조달에 너무 너무 고생이 많으셨다. 책을 마무리하는 18일 새벽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서거소식을 접하고 문협은 조화를 내고 삼가 명복을 빈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박 선배님, 오형, 정형, 김 부장, 한잔의 막쇠주로 가슴을 데웁시다요.()

*마산문학 8집 대신 범 경남종합문예지를 내기로 뜻을 모으고 간행위원, 편집위원 구성, 원고모집, 편집, 교정, 출판비 마련 등 제반 출판문제를 수행하기 위해 3개월 동안 힘을 쏟았다. 전 경남문인들의 결속과 단합으로 내는 <경남문학> 지가 지속적으로 발간 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이 모색돼 명실 공히 경남지방 문화의 선도 역할을 해 주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게재 순위는 가급적 등단연도를 감안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원고 도착순으로 편집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미비점이 많을 것으로 보며 필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목차에서는 구분 시켰지만 본문에서는 장르표시를 과감히 생략하였다. , 시조, 동시는 물론이고 필자에 따라 꽁트, 장편(掌篇)소설, 창작, 단편소설 등으로 구분되어 온 것을 생략해 버린 게 그 예이다. 체제를 통일시키지 못한 우()를 변명할 길이 없다. 부호가 각양각색이며, 한자를 괄호 속에 넣지 못한 게 끝까지 걸린다.()

 

참고로 여기서 박은 박재호, 임은 임신행, 일은 정목일, 오는 오하룡이다. 김 부장이란 사람은 해조문화사 직원으로 박재호 시인을 도와 <해조문화사> 실무 일을 맡아하였다. 경남문학 특집호는 해조문화사에서 간행하였다.

 

<경남문학> 계간 화 그후

 

1983년 들어 도내 문인들을 총괄하는 경남문인협회가 결성되면서 <경남문학>은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기틀을 마련한다. 이때 실무적으로는 신상철 수필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컸다. 땨라서 그의 초대 회장설과 경남신문 사장으로 와 있던 이중 시인 추대 설이 있었으나 이들이 고사하면서 전 해 전국체전기념 경남문학 특집호를 만들면서 수고했던 마산문협회장 이광석 시인(부회장 박종해, 강동주)에게 초대회장이 돌아갔다. 사무국장은 경남신문 민완 문화부 기자이면서 신진 수필가로 친화력을 돋보이던 정목일이 맡으면서 조직이 갖춰져 <경남문학> 2(새로출판사)를 펴내고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편집위원도 범 경남적인 강희근, 김성춘, 박재두, 박재호, 오하룡, 임신행, 정목일, 정시운으로 짜여 진다. 이 팀은 3(1984. 새로출판사)까지 이어지고 4호에는 박재호만 사망으로 빠진다. 1985년의 제4호 부터는 신생 <도서출판 경남>에서 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간호를 냈던 해조문화사는 1985년 박재호 시인이 급서하면서 문을 닫고 말았다. 1986년 경남문협 2대 회장에 수필가 신상철이 맡으면서 사무국장 이우걸 시조시인, 편집장은 오하룡(편집위원 정목일 이우걸 정일근)으로 개편된다. 신상철 체제는 19876호를 연간으로 펴내고 1988년 들어 7. 8(편집장 오하룡, 편집위원 강희근, 김성춘, 정목일, 정일근), 19899, 10호로서 연 2회로 반 연간으로 늘였다가 드디어 199011.12.13(편집장 오하룡, 편집위원 강희근, 김성춘, 정목일, 정규화) 3회 간행, 1991년 들어서며 완전 계간 체제를 이루어 이후 한 번도 결호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연간에서 계간으로 이끈 공은, 전임 집행부에서도 거론은 되어 왔으나 현실적인 실현은 전적으로 신상철 회장의 폭넓은 역량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신상철 체제에서 1993년 통권 25집까지 간행하고, 1994년 들어 통권 26권부터 강희근 회장 체제가 되면서 1995년까지 2년간 출판사가 불휘출판사(인쇄 겸업)가 간행을 맡았다가 1996년 전문수 회장체제가 되면서 다시 도서출판 경남으로 간행권이 넘어오게 된다. 이때 인쇄는 불휘인쇄에서 계속 진행했으나 2003년 태풍매미로 하여 불휘인쇄소가 수해를 입으면서 인쇄 일을 접게 되어 도서출판 경남으로 인쇄까지 넘어오게 된다. 강희근 체제에서 하길남 편집장(편집위원 서우승, 박종해, 유명선, 김복근, 고재곤, 강호 인)팀으로, 전문수 체제에서 이상옥 편집장(편집위원 김홍섭, 박종현, 우무석, 이달균, 이월춘, 한후남)팀으로 변화를 맞기도 한다.(이후는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편집진도 바뀌는 데 그 명단은 판권에 표시되어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앞으로 경남문학사를 따로 정리하는 기회가 있겠지만 개략적으로 현재까지의 경남문학 발행실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임기 2년으로 봤을 때 이광석 2, 신상철 9, 강희근 2, 전문수 4, 정목일 4, 이우걸 4, 김복근 4, 고영조 2(1년 대리 김홍섭), 김연동 2, 조현술 2년으로 볼 때 신상철 회장 임기가 1년이 모자란 것이 되어 차질이 있어 보인다.)

 

간행위원장 이광석 1982- 1986년 특집호(창간호)-1

초대 이광석 1983-1984       002-003

02대 신상철 1985-1986         004-005

03대 신상철 1987- 1988006-008

04대 신상철 1989- 1990009-013

05대 신상철 1991- 1992     014-021

06대 신상철 1993-              022-025

07대 강희근 1994-1995     026-033

08대 전문수 1996-1997     034-041

09대 전문수 1998-1999     042-049

10대 정목일 2000-2001    050-057

11대 정목일 2002-2003    058-065

12대 이우걸 2004-2005    066-073

13대 이우걸 2006-2007    074-081

14대 김복근 2008-2009    082-089

15대 김복근 2010-2011    090-097

16대 고영조 2012-             098-101

대리 김홍섭 2013-              102-105

17대 김연동 2014-2015    106-113

18대 조현술 2016-2017    114-121

19대 김일태 2018-2019    122-(130)

 

마무리

 

경남문학사의 핵심은 <경남문학>에 있으므로 나름대로 현재까지를 정리해 본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실제 <경남문학>의 창간부터 실무 편집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기억을 보장할 수 없는 연치에 이르고 있어 의무감에서 나름대로 정리를 하지만 보완할 부분이 많으리라 본다. 현재 통권 123호를 간행하고 있으나 <경남문학관>이 생기면서 보존문제를 생각해서 <도서출판 경남>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을 2부씩 <경남문학관>에 일괄 넘긴바 있다. 그런데 어느 때 가보니 2부씩 보관하면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 1부씩만 보관하고 있다고 하여 약간 놀란바가 있다. 1부가 없어지면 어디서 보충할 방법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때 넘긴 뒤로 출판사에도 초기 것은 보관 된 것이 없다. 욕심 같아서는 지역의 대학 도서관이나 공공 도서관에서 지역에서 나오는 간행물을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싶으나 그런 데는 없는 것 같아 <경남문학>의 보존 문제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회원들도 모르긴 해도 전부를 모으고 있는 분이 없는 걸로 보여 미래가 걱정된다. 아무튼 어렵게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경남문학>이 경남문협의 기관지 또는 회지라는 인식에서 머물지 않고 300만 경남도민의 종합 문학지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발전하기를 기대하여 마지않는다. 앞으로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격월간 내지 월간으로의 발전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