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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과 현실 29. 2017 하반기호 주요내용

 

권두언- 제29호를 내면서/ 이우걸 편집인

 

권두시화- 왜 제유인가/ 구모룡

 

열린시단

김후란 이수익 유재영 박진형 공광규 최도선 김혜연 김동원 정이경 권영호 장하빈 민창홍 이영광 최금진 조민 최석균

우원곤 이기영 윤현주

 

시조

이정환 이승은 오승철 권갑하 박권숙 박영숙 우은숙 이분헌 임성화 김윤숙 정경화 이태순 이화우 한분옥 권영희

한분옥 권영희 정희경 김덕남 배경희 임대진 이명숙 류미야

 

중요시인 자세히 읽기/ 고형렬 시인

대표작 가재 외4

신작    가족의 심장속에서 외2

평론    결핍과 부재, 낯선 미학에 이르는 길/이연숭

 

연재- 한국시조문학 통사/ 장성진

어두운 시대의 화두, 민족과 전통

 

소시집

시   김수우 박서영 김승강

 

시조  서일옥 유영애 이남순

 

2017 서정과 현실 시인작품상 시부문/ 이준식

당선작 가을이 밀려들어왔다 외2

당선소감 심사평

 

내가 읽은 시 시조/ 성선경 박권숙

 

 

 

왜 제유인가(전문)

 

구모룡

 

 

옥타비오 파스는 훌륭한 시인이지만 독창적인 시론을 많이 남겼다. 그는 시와 시편이라는 글의 첫머리에서 시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을 열거한다. 이 정의들은 서로 만나고 충돌하며 상호모순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poetry)라는 심오한 관념을 그려낸다.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며 포기이다.” 가장 처음 나오는 정의이다. ‘구원포기가 한 문장 속에 있다. 모두 시를 지시한다. 과연 시는 어떠한 앎일까? 모티머 아들러에 의하면 마음의 사다리는 네 개의 단계로 구성된다. 정보-지식-이해-지혜. 이 가운데 시적인 앎은 어디에 속할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의 지각에 의한 앎이어서 시인과 시편(poem)에 따라서 편차도 다양하다. 그런데 구원이라고 한다. 누구를 구원한다는 것일까? 시인인가, 시를 읽는 사람인가? 이 또한 의문만 커진다. ‘은 어떠한가. 시 쓰기가 이 된다는 뜻은 무엇일까? 분명 세속의 권력은 아닐 터이다.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힘인가, 아니면 사회를 변혁하는 힘인가? 여기다 포기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포기의 대상이 무엇일까? 욕망, , 권력, 가치? 이처럼 처음 정의부터 요해가 만만찮다. 이어지는 정의에서 답이 있을까?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적 행위가 혁명적이어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진술과 시는 정신의 수련으로 내면 해방의 방법이라는 주장이 양립할 수 있는가? 결국 주체와 세계의 문제인데 내부와 외부의 선후를 따지는 일이 무익할 것이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인의 측면이 아니라 시인이 드러내는 세계라는 관점에서 그렇다. 시인의 측면은 어떠한가?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이쯤 읽으면 시와 시인과 세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윤곽에 도달한다. 그럼에도 시에 대한 정의는 계속 이어진다.

 

시는 격리시키면서 결합시킨다. 시는 여행에의 초대이자 귀향이다. 시는 들숨과 날숨이며 근육 운동이다. 시는 공()을 향한 기원이며 무()의 대화이다. 시의 양식은 권태와 고뇌와 절망이다. 시는 기도이며 탄원이고 현현이며 현존이다. 시는 악마를 쫓는 주문이고 맹세이며 마법이다. 시는 무의식의 승화이자 보상이고 응집이다. 시는 계급과 국가, 인종의 역사적 표현이면서 역사를 부정한다. 시 속에서 모든 객관적 갈등들이 해소되고 인간은 마침내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것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을 얻게 된다. 시는 경험이며 느낌이고 감정이며 직관이고 방향성이 없는 사유이다. 시는 우연의 소산이자 계산된 결과물이다. 시는 세련된 형식을 사용하여 말하는 기술이자 원시적 언어이다. 시는 규칙에 복종하며 동시에 다른 규칙들을 창조한다.

 

시는 시인이라는 단독자의 개별성을 말한다. 우리의 시언지’(詩言志)가 말하듯이 시인의 마음은 자신의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자기로부터 나와 타자와 외부로 나아가는 행보를 거듭한다. 시는 천지의 마음으로 향한다. 따라서 시인의 개별 시편은 낱낱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더 큰 공통 감각으로 결합한다. 상실이 일반화되고 지속가능한 경험이 사라지는 고향상실과 경험파괴의 시대에서 시는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공한다. 소멸하고 죽어가는 것들 가운데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영역이 시다. 시가 섣불리 미래를 말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생명의 시원과 거처가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시가 초대하는 여행은 대체로 귀향연습을 닮았다. 유년의 초록이며 물빛, 바람과 그늘을 통해 비루한 자아를 이격하게 한다. 더 나아가 사물과 존재의 근원이 공이고 무임을 깨우치게 한다. 언어로 된 시의 양식은 때 묻은 언어의 한계로 인하여 권태와 고뇌와 절망의 산물이지만 시가 지향하는 바는 기도와 탄원, 현현과 현존이다. 갈망과 명상이 진동하는 과정이 시이다. 더 큰 슬픔과 더 깊은 고요를 통해 시인이 도달하는 방법이 현현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개념이 현현이다. 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계기로 이미지를 강조하는 옥타비오 파스의 관점은 바로 현현이라는 말과 연결된다. 그는 예술가는 이미지의 창조자, 즉 시인이다라는 미학을 표명한다. 시는 먼저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이어야 한다. 가령 율격이 전제된 시조의 경우 그 형식의 틀에 따랐다고 하여 모두 시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낱낱의 시편을 살려내는 완전한 새로움 없이 시적 지위를 보장받긴 어렵다. 유일무이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을 강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표현과 재현이 아니라 현현을 앞세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세 개의 좌표인 주체와 세계 그리고 언어 가운데 표현은 주체의 위치에서 행해지는 발화이다. “시는 경험이며 느낌이고 감정이며 직관이고 방향성이 없는 사유라는 규정에 상응한다. 표현의 시발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개 외물에 자아의 감정을 투사하는 방식이 선호된다. 자연스럽게 직유와 은유가 동원된다. 많은 사람들이 시적인 것의 발현방식으로 은유를 내세운다.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 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은유가 아니다. 그보다 리듬과 이미지가 시를 구성하는 주된 요소다. 그럼에도 은유를 중심에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감정과 느낌의 대상을 외부에서 쉽게 찾으려는 데 있다. 투사하고 감정이입하는 과정에서 바깥의 사물이 자아의 의지에 의해 징발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언어 자체가 은유이므로 은유가 시적 특성을 대변할 수 없다. 자아중심주의로 회수될 공산이 큰 은유와 달리 재현은 세계와 타자의 위치에서 작동한다. 대상들을 어떻게 그려내었느냐의 문제인데 시보다 소설 혹은 서사에 더 주효하다. 사실들을 나열하는 환유가 적합한 수사이다. 그런데 옥타비오 파스가 시는 역사적 표현이면서 역사를 부정한다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재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하나의 표현은 다른 표현으로 새롭게 창조되면서 시적 역사를 이룬다. 모든 시편은 역사적 맥락을 지닌다. 또한 역사를 부정한다. 파울 첼란은 어떤 시인도 결코 타인의 문제로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로만 말할 뿐이라고 한 바 있다. 죽음의 수용소를 겪은 그이기에 그의 말이 절실하다. 첼란의 말처럼 시인은 자기의 문제로 싸워야 하는 존재이다. 세계는 그 다음이다. 시인의 싸움은 또한 언어와의 싸움이다. 외부의 사물을 도구로 삼는 은유가 이러한 고투에 큰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자칫 유희와 동어반복에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바로 인용문에서 옥타비오 파스가 기술이라고 말한 대목과 연관된다. 율격이 기술이라면 은유 또한 기술이다. 율격을 이겨내고 율동을 형성해야 하듯이 은유를 넘어서 실재를 말하려는 언어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는 율격과 은유가 아니며 율동과 이미지이다.

다시 옥타비오 파스가 말한 현현과 현존으로 돌아가자. 이 말에 상응하는 수사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유이다. 제유는 모든 부분들이 전체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념의 표현이다. 모든 유기체의 생명 현상이 이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원초적인 관념이자 수사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관념으로부터 멀어져 왔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세계를 포획한 것이다. 제유는 근본 비유이면서 배제되거나 억압되었다. 하지만 시인이 자아와의 싸움을 통해 더 큰 고통과 깊은 슬픔을 깨닫고 고요와 명상에 이를 때 도달하는 영역이 제유이다. 위장된 은유가 아니라 전체(혹은 정체) 공능의 표현인 셈이다. 옥파비오 파스는 이미지를 통하여 이러한 경계를 설명한다. “이미지가 됨으로써, 말은 말이면서 동시에 언어, 즉 역사적 의미화 작용으로 주어진 체계를 뛰어넘는다.” 이를 그는 다시 실재의 현시라고 말한다. ‘현현과 현존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한 번 걸러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현시한다.” 이를 통해 그가 지향하는 바는 실재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재창조하며 되살리는 것이다. 이를 그는 부활이라고 한다. “그러한 부활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의 부활일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어둡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분의 부활이기도 하다.”(오타비오 파스, 이미지에서)

 

우체함 속에

새 한 마리가 둥지를 짓고 오도카니 앉아 있다

마치 날개 달린 편지 같다

벌써 산란 때가 되었다?

올봄도 찾아온, 저 초대하지 않은 손님

마치 제 집에 가구를 들어놓듯,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며

풀 둥지를 짓고 알을 품고 있다

바깥의 생을 몸으로 체득한,

우체함 속의 집

지금 새가 알을 품고 있으니 우편물을 투입하지 마시압!

우체함 속에 편지 대신 들어 있는 새 한 마리가

꼭 봄의 농담 같은,

잉크로 타이핑으로 쓰이지 않은,

백지의 난() 속에 실핏줄로 쓴, 살아 있는 편지가

죽은 활자 대신 살아 있는 숨결이 느껴지는 것

봄의 농담이 아니라

濃淡 같은 것

(김신용, 편지전문)

 

대상의 발견에서 이미지를 얻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마치 날개 달린 편지 같다는 시인의 직접적인 감정의 표현은 곧 거두어진다. 시인은 외부를 통하여 내부를 사유한다. “바깥의 생을 몸으로 체득한이라는 구절이 말하듯이 마음과 새 한 마리의 경계가 지워진다. 구체적인 대상이 이미지로 현현한다. 바로 농담 같은 것이다. 이 시에서 이미지는 다른 관념을 말하기 위해 동원되지 않는다. 시인의 경험과 사유가 외부와 만나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이미지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미지가 쉽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겪은 표현의 역사가 일군 결과이기 때문이다. 새 한 마리가 편지와 같다는 직유와 은유를 지나 농담이라는 이미지로 살아난다. 이와 같이 몸으로 체득한시적 교감을 제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편의 전 과정에 제유의 수사가 받치고 있는 시인으로 조용미를 들 수 있다. 그는 물소리에 관한 소고에서 내 몸속 세포의 흐름이 저 물소리의 우주적 운율과 다르지 않아 또 몸에 귀 기울여야겠구나/이젠 몸을 떠나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있겠나 묻지 않는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옥타비오 파스의 다음과 같은 진술을 상기할 수 있다. “시는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동시에 원초적 존재로 돌아가게 만든다. 인간을 자기 자신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미지이다. , 그 자신이며 타자이다. 리듬이고 이미지인 구를 통하여 인간, 끊임없이 자신이 되고자 하는 자는 존재한다. 시는 존재로 돌아가기이다.”(옥타비오 파스, 이미지에서) 조용미야말로 이미지와 운율을 통하여 존재를 드러내는 시인이다. 백무산 또한 인간의 조건과 투쟁하다 더 큰 세계로 귀환하였다. 모든 생명의 고통에 대한 깊은 인식에 도달한다. 가령 태양은 따뜻한 중심이 아니라/제 몸이 뜨거워 불덩이를 사랑으로 마구잡이로 흩뿌리는 거다/주변에 있어 모두 손이 둘인 거다 모두가 겱핍돼 있어/손을 잡아야 일어설 수 있는 거다//아이들이 둥글게 앉아서 손을 잡고 논다/가운데는 죽은 술래만 앉는다”(주변뿐인 우주에서). 텅 빈 중심과 주변으로 이루어진 세계란 바로 생명의 세계이다.

 

 

구모룡

1959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공부하였다. 부산대와 부산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1982<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1993년부터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문화연구와 동아시아 미학 그리고 지역문화를 강의해 왔다. 저서로 앓는 세대의 문학-세계관과 형식, 구체적 삶과 형성기의 문학, 한국문학과 열린 체계의 비평담론, 신생의 문학, 문학과 근대성의 경험, 제유의 시학,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 시의 옹호, 감성과 윤리,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해양풍경, 은유를 넘어서, 제유, 예술과 생활-김동석문학전집(편저), 백신애연구(편저) 등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