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머│리│에 전기수 선생 오하룡 선생은 나에게 산문집 원고를 넘기며 몇 번이고 당부하였다. 한자 단어는 절대로 한글로 하거나 괄호 안에 넣지 말라고. 나는 미련하게도 요즘 독자들은 한문이 짧아 이대로 나가면 읽어내지 못한다는 조언 아닌 요즘 독자들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러나 선생은 일언지하에 거부하는 것이었다. 우리 글은 한자에서 온 것이 많으므로 한자를 곁들여 읽어야 글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라도 이렇게 써야 그나마 한자말이 살 뿐만 아니라 한자말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지론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친 한글화로 한자가 영원히 사라질 것은 불문가지이며, 아예 한문을 아무도 배우려 들지 않을는지 모른다는 근엄한 지적인 것이다. 그..

시인 킹선장의 불이론 이상개 10월 26일은 우포늪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도심을 빠져나가자 강물과 들판 그리고 산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가끔은 바깥 공기를 맡고 살아야 한다는 평소의 내 지론이 역시 맞는구나 하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김성식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이별한 지도 벌써 반 년을 넘기고 있었다. 이 가을날 그와 같이 하는 여행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10년은 채 못된 것 같지만 그와 서울 나들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무슨 볼 일이 생겼던지 동행을 해서 서울에 갔다가 그의 어머님도 뵙게 되었고 형님도 만났다. 그가 바다에 떠돌기를 30년이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서울에 어머님과 형이 계신다는 것도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때가 아마 그와 내가 즐긴 가..

책│머│리│에 20호를 내며 오하룡 『작은문학』이 어느새 통권 20호를 맞았다. 등록은 1995년 7월 15일에 하였으나 막상 창간은 1996년 봄호로 실천이 되었다. 햇수로 7년이 된 셈이다. 계간이므로 결호 없이 제대로 내었다면 지금 27호가 되었을 것이다. 사정이야 있었지만 계간으로서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부분이 마음의 부담이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잡지의 나이나 연륜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잡지의 기능에 충실했느냐가 평가의 잣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작은문학은 그렇게 자를 들고 재려 든다면 별로 내세울 게 없다. 내가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듯이 내가 만드는 잡지도 평범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사는 내 몰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