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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의 대결
오하룡
겨울도 중반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 곧 봄소식이 들릴 것 같은 시점에 겨울호를 만들고 있다. 양심이 비틀거림을 느낀다. 약속은 계간이나 그 계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니 그런 것이다. 동화작가 최미선이 멀리 원주의 토지문화관을 다녀온 것이 지난 여름인데 그 기사가 이제 나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너무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도 박경리 선생과 그 따님인 관장의 승낙을 받아놓고 이 모양이니 그분들도 아마 기다리기 지쳐 있을 터이니 도리가 아니다.
이밖에도 원고를 일찍 보내온 분들이 많다. 좀 당겨낼 욕심으로 여름 가을호가 나오자마자 독촉을 해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고향을 떠나 한동안 소식이 없던 정시운 시인은 최근 신작을 통 볼 수 없었다. 그가 오랜만에 기청이란 필명으로 시집을 보내왔다. 반가운 김에 신작을 다그쳤다. 그도 일찍 원고를 보내온 분 중의 한 분이다.
정일근 시인은 진해시절 문단 선배였던 배기현 시인의 서평을 약속했었다. 그 약속이 좀 지체되는 듯했다. 그도 독촉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 바쁜 그가 원고를 보내온 지도 꽤 되었다. 이런 식으로 당장 내일이라도 책이 나올 듯이 설쳐대며 원고를 모았다. 그런가 하면 김성춘 시인은 비교적 과작인데도 옛 정리를 생각해서 지난 15집에 이어 이번에도 우선해서 신작을 보내주는 성의를 보여주어 감격하게 했다. 계획대로라면 이렇게 제대로 원고가 모였으니 다른 일 제쳐두고 이 약속 지키는 일을 먼저 해야 되는 게 당연했었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생업이 달려 있는 출판사 일이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어디로부터 특별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것도 아니다. 『작은문학』도 출판사 편집진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니 그 편집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작은문학』이 돈이 되는 일이라면 열 일을 제쳐두고 먼저 했을 테지만 어디를 살펴봐도 작은문학은 돈 되는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출판사 쪽이 분주해질 때 열심히 축적이 되어야(그래봤자 별 것 아니지만) 『작은문학』이 좀 숨쉬기가 나을 수 있으니 이런 미래를 의식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밀리게 된 것이다.
이런 설명을 한다고 얼마나 이해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혼자 염불하는 식으로 중얼대는 이유도 양심의 비틀거림에 대한 변명이 될까 해서다. 누가 자꾸 권했다. 작은문학도 신인을 배출하라고. 그러면 독자도 늘고 신인들이 책도 좀 소화해 줄 거라고. 그렇지만 나는 그런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게 잡지를 운영해선 안될 것 같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구독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수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누구에게건 부담을 주는 일이라면 결단코 사양할 각오가 되어 있다.
이번 호 자료모음에는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네이폴을 중심으로 노벨상의 자료를 신문에 나온 글 중심으로 모아 보았다. 신문마다 조금씩 다른 편집 스타일도 살펴볼 수 있고 노벨상을 보는 신문의 시각도 잠시의 읽을 거리는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여 오밀조밀하게 읽을 거리 위주로 잡탕식 편집이 되었다. 격식을 지적해 주는 사람도 주위에는 많다. 그러나 당분간은 욕심부리지 않고 읽을 거리 위주로 소탈하게 엮어 갈 밖에 없다. 신인의 작품도 실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런 분이 있었다. 중년 부인이었다. 문학을 그냥 쓰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신들린 듯 쓰기만 하는 그런 분이었다. 어디 발표가 되지 않으면 광인이라도 될 것 같은 그런 눈빛을 가진 분이었다. 그런 분이 쓴 것이 어떤 것인가를 이번 호에 보여준다. 그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건 그건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눈빛을 보고 그가 쓴 것 중에서 몇 편을 실었다.
앞으로도 양심을 의식하는 기본은 달라지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계간 작은문학 제18호(2001년 겨울호) 목차
■화보│원로시인 문덕수 생가
■시와 그림│여행길 ― 하기와라 사쿠타로
■책머리에│양심과의 대결 ― 오하룡
■김만수 신작시조│추억 외 2
■김성춘 신작시│샤콘느 혹은 불타는 가을산 외 4
■김춘랑 신작시조│어떤 휴식 외 8
■성기조 신작시│바다 1 외 1
■오삼록 신작시│바다 외 9
■이광남 신작시│눈 길 외 4
■이부용 신작시│들꽃 2 외 4
■정시운 신작 자유연행시조│가고 오고 외 2
■조무근 신작동시│발견 16 외 2
■조운주 신작시│바람에게로나 가자 외 2
■김가록 신인시│하늘 보며 외 9
■박래녀 신작수필│개 이야기
■이외율 신작수필│내 삶의 이유
■차상주 신작수필│산동네의 숨은 이야기 외 1
■서평│흑백다방, 진해 그리고 육자배기 ― 정일근
■독백
이상개 ― 다시 읽는 첫 시집
정일근 ― 처음의 아름다움
■생활 속의 발견⑥│'아테네의 돌'과 불효자 ― 吳仁文
■토지문화관, 토지문학공원을 찾아│사고는 능동성의 근원이며 원천―최미선
■정삼조 시인의 명시 해설│추억에서 68―박재삼/남해 금산―이성복/
「고성가도固城街道」―백석/거제도 둔덕골―유치환/山에 가서―강희근
■자료 모음│200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V.S.네이폴의 문학세계
■단편소설│북으로 간 '장기수' ― 유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