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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지 만드는 재미


오하룡



이번 호에는 뜻밖에 재미있는 소설 한편을 만난다. 도리천 스님의 신작 체험소설이 그것이다. 도리천 스님은 이미 중견 시조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동시를 재미있게 쓰는 아동문학가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그가 산문 능력이 비상함을 이미 지난번 그의 문학선집 『코스모스 꽃씨를 받으며』를 만들며 거기에 든 산문을 읽고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꾸준히 산문을 쓰고 있으리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소설까지 쓰고 있을 줄은 미처 짐작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소설을 보내온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도리천 스님과 그의 거처에서 단둘만이 마주하고 독백을 듣는 심정으로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소위 비평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본다면 부질없는 잣대로 온갖 할 소리 안 할 소리 이야깃거리가 많겠지만, 이미 이런 수작에는 면역의 경지인 나 같은 부류에겐 소설이면 잘 읽히고 재미있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도리천 스님의 체험이라는 수식까지 달려 있으니 더 잘 읽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은 속리산 법주사에서 5년간 수도생활을 끝내고 세상 돌아가는 걸 구경할 겸 자유로운 여행을 하기 위해 약 2주 예정으로 첫 행선지를 부산으로 잡고 고속버스를 탄 한 수도승(도리천이라고 본명을 쓰고 있다)이 마침 자리에 앉고 보니 묘령의 아가씨가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앉았는데 그 아가씨는 얼굴이 '예쁠'뿐만 아니라 '뽀얀 살결의 무릎이 퍽 이나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이 묘령의 아가씨를 만나므로 겪게 되는 3일간의 이야기로 시종한다.

나는 이 소설이 구도자인 도리천 스님 자신의 환속을 유혹하는 한 전형으로 이해하고 있다(막상 스님 스스로는 멋있는 연애소설 한편을 썼다고 둘러댈는지 모르겠다). 속세의 유혹이 얼마나 집요했는지를 이 묘령의 아가씨로 환치되어 표현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는 '아주 짧은 치마'와 '뽀얀 살결의 무릎이 퍽이나 아름다운'으로 표현되는 아가씨도 실은 세속적 유혹의 서곡에 속하는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이 아가씨를 묘사한 구체적인 부분은 이 소설의 서술의 백미인 동시에 스님을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유혹하는 비유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처럼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채 오른 손으로 턱을 괴고 무언가 조용히 생각하는 듯 그런 모습의 아가씨, 이 세상 어느 누가 보아도 꽃 같은 얼굴에 달빛 같은 자태의 아가씨, 천상에서 미의 사신으로 이 땅에 내려온 천사 같은 아가씨, 지성과 인품과 부귀와 그리고 교양과 미모를 골고루 다 갖춰 보이는 이 아가씨는 뽀얀 무릎의 살결도 무척 고와 보였지만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 피부색이 더 한층 고와 보였다.


고 묘사하고 있다.

스님은 모든 남성이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한 정형을 이 곳에 설정해 놓은 것이다.

이 여성은 스물 다섯이고 스님은 스물 아홉의 절정기의 청춘남녀임을 밝혀놓고 있다. 이런 나이라면 어느 정도 이성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논리도 가능하지만 늦바람이 더 겁난다는 속설도 있듯이, 스님이 이 여성을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경도되어 있듯이 이 여성 또한 스님을 이상형 남성의 한 정형으로 인식하고 일방적으로 미래까지 약속받고자 서두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만큼 이들은 무슨 행동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최후의 선은 넘지 않는다.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플라토닉 러브라고나 할까. 놀랄 정도의 절제의 미덕을 보여준다. 이 여성 즉, 스님의 환속을 유혹하는 미인계는 지극히 관능적이고 지능적이며 치밀하다. 이미 결혼 날짜까지 잡아 논 상황인데도 스님을 오빠로 삼아 우선 접근하는 것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                  <이후 생략-긴 글 넣기가 제한되어 있어서입니다..>


계간 작은문학 제19호(2002년 봄/여름호) 목차

■화보
│남지 강홍운 「낙동강」 시비 제막/추억의 흑백다방시화전 개최
■시와 그림│바위소묘 ― 김춘수
■책머리에│문학지 만드는 재미 ― 오하룡
■신작체험소설│3일간의 여행 ― 都利天
■권상철 신작시│남해의 꿈 1  외 8
■김양채 신작시│10년의 세월 속에  외 5
■윤재환 신작시│시냇물  외 4
■이찬희 신작시│파 초  외 4
■임종린 신작시│첫눈이 오던 날  외 4
■정목일 신작시│암각화  외 4
■장재 신작시조│가을 풀꽃  외 5
■노길자 신작동시│해님이 까―꿍  외 9
■權正錫 신작수필│상향평준과 하향평준 중간결산
■윤지영 신작수필│텅빈 어항 1  외 1
■이원기 신작수필│음식문화  외 2
■이학수 신작수필│신 엽기시대
■차상주 신작수필│갑판 조수와 숨바꼭질  외 1
■생활 속의 발견⑦│내가 정말로 바라는 것 ― 吳仁文
■그 시절 그 현장
│그 시절 진해 예술계 ― 배기현
■다시 읽는 수필│김수임 이야기 ― 모윤숙
■다시 읽는 소설
│참 외 ― 오유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