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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어려움



오하룡_시인, 주간, gnbook@hanmail.net


요즘 들어 글쓰기의 어려움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기억에 의존하다 보면 자칫 진실을 놓치고 나도 모르게 허구를 앞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해 나는 『마산문학』(29호)에 고 정진업 선생의 회고담을 쓴 일이 있다. 물론 쓰고 나서 나름대로 퇴고도 하고 여러 번 읽기도 하였다. 그런대로 사실을 제대로 쓴 것으로 생각하였다. 선생이 별세한 지 사반세기 가까이 되었으니 주저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확인이 쉽지 않으니 기억에 의존하여 쓸 수밖에 없었다. 부실이 예견되는 상황이었으나 모험을 했던 것이다.

선생이 별세했을 때 정신없는 유족을 돕는다고 인곡공원묘원 현지답사도 누군가와 함께하였다. 그때는 승용차가 흔치 않을 때여서 택시를 타고 인곡공원묘원까지 가는데 당시의 인식으로 왕복택시 요금이 이만 원인가 되었다. 비싼 듯해서 유족 측에 미안해하던 생각까지도 선연하다. 물론 장례식 당일에도 현장에 가서 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당연히 그때 기억이 선명하게 남았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하루 일과인데도 이상하게 어떤 부분은 선명한데 어떤 부분은 흐릿해서 분명하게 기억되지 않아 당혹스럽게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올해 들어 지난 10월 경남문학관에서 추모문학의 밤을 개최하면서 정진업 선생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다(시조시인 이명길 선생과 함께였음). 순서에 선생에 대한 회고담을 피력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도움 될까 하여 『마산문학』에 썼던 그 원고를 이 행사에도 쓰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찬찬히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놀란 것이다. 이 글의 도입부를 읽다가 이럴 수가 있는가. 얼굴이 화끈해짐을 느낀 것이다. 선생보다 사모님이 몇 년 앞서 돌아가셨는데 이 내용에선 선생이 먼저 가시고 사모님이 뒤에 돌아가신 것으로 해서 합장 운운하고 써 놓고 있는 것이다.

사모님의 산소가 공원묘지 입구의 언덕배기에 있었고 선생이 돌아가신 후 그 묘소를 옮겨 선생과 합장하게 된 것이 사실인데 허구를 쓴 것이다. 이런 오류를 어디다 밝혀야 한단 말인가. 내 글을 참고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에게 이런 실수의 용서를 빌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이번 『마산문학』 30호에서 있은 일이다. 이선관 시인의 추모 글을 썼다. 제목을 달면서 '이선관 시인의 삶과 문학'이라고 해야 할 것을 책이 나온 후에 보니 '이선관의 삶과 인생'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홈페이지에 올릴 때는 분명히 바로 고쳐 올려놓았다. 잠재의식 속에 거기 올리면서 고친 것을 책의 것에도 고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은 바람에 생긴 실수인 셈이다. 책이 나올 때까지 아니, 원고를 탈고하고 나서도 계속 자신이 쓴 원고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방심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내 자신이 편집자의 위치에 있어 언제나 최종까지 내 원고는 볼 수 있고 고칠 수 있다는 방만한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제 버릇은 아프게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 원고가 깨끗하지 못함을 불평하고 타박하는 경우가 많다. 똥 묻은 개가 흙 묻은 개를 흉본 셈이다.

'삶'이 '인생'이고 '인생'이 '삶' 아닌가. 어떻게 보면 한글 '삶'은 실제적인 현장적인 삶을 나타내고 '인생'은 사람의 한평생을 내다보는 보다 심오하고 더 진한 삶의 뜻을 내포한 듯한 어감은 분명 있다. 따라서 '삶과 인생'이라고 썼다고 하여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보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중복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생'보다는 '문학'이 여기에선 의미전달이 명확할 진대 합당한 제목은 '삶과 문학'이 적재적소의 역할인 것이다.

이토록 한순간의 방심이 오래도록 아쉬움을 남긴다. 정말 진땀나는 글쓰기이고 제목 붙이기가 아닐 수 없다.

며칠 전에는 우리 출판사가 펴낸 책에 얽힌 이런 사실이 있었다. 저자 자신이 자신의 약력을 이메일로 보내온 것이다. 이런 원고도 자세히 보아야 하는 편집자의 위치지만 실수를 하려면 무엇이 눈을 가리기나 한 듯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 고초를 겪는다. 특히 약력은 저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어서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틀리면 큰일 날 것처럼 여기고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렇게 까다롭게 후벼 파듯이 보는 곳에 실수가 따르니 어쩌랴.

저자를 너무 믿은 것이 탈이다. 더구나 저자가 연만한 분이어서 자신의 원고에 허점이 많으니 잘 봐 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그래서 본문은 나름대로 띄어쓰기에서 맞춤법에 이르기까지 본다고 보았다. 많은 부분 바로잡고 고치고 하였다. 이 정도 했으니 저자가 당연히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저자에게 보이기까지 하여 진행시켰다. 그런데 약력에서 그만 놓친 부분이 생긴 것이다. 약력은 저자에게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저자가 보낸 이메일대로 했으니 설마 한 것이다. 우리 편집 실무진은 약력 틀린 것은 저자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변명을 한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이유 불문하고 사과부터 하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저자는 이를 핑계하여 잔액 남은 걸 정리하지 않고 치일피일 시일을 끌고 있다. 떼먹든지 얼마라도 깎아야 겠다는 저의가 보이는 행동이다.

편집일의 까다로움과 함께 야박한 출판계 현장의 한 단면이어서 잘 감내하면서도 못내 가슴이 빈 듯이 허전하고 쓰리기까지 한다.


계간 작은문학 제32호(2006년 가을/겨울호) 목차

■시와 그림│새해 아침에는 이상해―오하룡
■책머리에│글쓰기의 어려움―오하룡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2
  김상옥, 김소운, 이현우, 이광우, 금수현, 이인영, 천상병, 염주용
■서간문│사랑하는 며느리들에게―이원기
■신작시
겨울밤에  외 10―도리천
밀양 국시  외 15―임신행
■근작시
고향 그리는 마음  외 2―金壽年
한나절의 고독  외 2―김정호
가벼움  외 4―윤상운
그 씨 그런 核으로만  외 1―전의홍
弔旗 揭揚  외 1―조찬구
꿈 같은 꿈  외 2―홍진기
■근작수필
아이와 사탕―류지연
박꽃―박충일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그냥 영국박물관―배기현
考終命―엄국정
自信이 없다―황선락
■근작동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최상일
■근작평론
임신행의 따뜻함, 또는 파도타기―강희근
해양동화의 개척과 동화의 담론 구조―전문수
약수암으로 가는 길―임신행
고향 어머니와 같은 시―정목일
■생활 속의 발견⑮│문단의 선거철과 정관 개정 소동―오인문
■연작시 난중일기 下│병법  외 11―이상개
■서평│고향과 공동체 의식―이광석
         ―구자운의 수필집 『아름다운 그곳』과 『자연의 하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