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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의 상황과
삶의 열망
임신행
멀쩡했던 가정들이 한순간에 허리가 꺾여 신음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나라는 온통 궁핍과 절망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다(가진 자는 더 흥청망청 재미를 보다 못해 즐거운 비명이고……).
북녘은 북녘대로 남녘은 남녘대로 무진 속에 내리는 찬비를 맞고 있다. 한 마디로 참담하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는 말이다. 가진 자들은 밖으로 빠져 달아나 가진 만큼 큰소리 치니 뜻있는 이들이 아연해 하지 않을 수 없는 딱한 실정이다. 견디기 어려운 시대나 민족 상잔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이라는 것이 앞에 놓여 국민 모두가 의연하게 어려움의 고개를 거슬러 왔다. 지금은 그때와는 너무나 이질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그것은 빈익빈 부익부에 의해 앞이 보이질 않는다는 말이다. 하루에 서른 명이 훨씬 넘는 생명들이 허기와 비참해진 자신을 추스르지 못해 그냥 목숨을 꺾고 있다는데 있다.
이 암울한 시대에 과연 문학이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이 엄청난 질문에 고개를 떨군 채 담배를 축내든지 아니면 애꿎은 소주잔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힘없음과 능력없음에 서글프게 웃고 마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깝다. 우주보다 더 소중한 생명을 우지끈 죽순을 꺾듯이 스스로 꺾는 것은 솔직히 말해 너무 이기적이고 나약한 심성 때문이다. 치열한 삶의 의식이 모자라서이다. 말을 바꾸면 일자리를 얻기 위하여 단답식 공부는 엄청 많이(잘 외우고, 기억하지만) 했으나 인생의 역경을 이겨낼 책 읽기에 소홀해서이다.
한 편의 소설은 한 편의 박사 논문보다 더 값지며 우리 인간이 건너야 할 삶의 바다를 건너는 한 척의 배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고 살아왔다. 책 읽기를 통하여 우리는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견디어 낼 극기의 힘을 얻어(시나 소설의 행간에서 획득한다는 사실)낸다. 책 읽기를 통하여 직접 경험하지는 못해도 주인공의 삶을 공감하고 의분해 하는 간접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책 읽기를 소중히 한다. 책 읽기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며, 당당한 자기 선언이기도 하다. 책 읽기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며, 당당한 자기 선언이기도 하다. 강한 쇠를 연마하듯이(스스로를 지금보다 더 단단하게 한다) 스스로를 책 읽기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책 읽기를 게을리하면 사소한 충격에도 함몰해 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책 읽기다. 책 읽기를 통하여 미리 절망과 좌절을 배우고 진정한, 패배의 의미와 헤쳐나갈 무서운 지혜를 스스로 채광하여야 한다. 책 읽기는 편안함이 아니다. 책 읽기는 외롭고 고독한 자신과의 부단한 투쟁이기도 하다. 책을 통하여 삶의 진실과 자신의 비뚤어진 의사 내지 의견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가능의 잣대를 지닌다. 우리가 예술인 아니 문인을 그런 대로 예우하는 것은 자신보다 너와 나라는 공통분모를 은닉한 채 작업을 하여 공동의식의 불씨를 가슴마다에 담아낸다는 데 있다. 우리는 마산 진해 창원을 통틀어 아니 경남을 예술의 고장이라고, 문인의 산실이니 지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 고장과 견주어 보면 확실하게 예술인이 많다는 데는 손색이 없다 하지만 변변한 문학지나 종합지 한 권을 이어내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실정이다. 아무리 궁핍하며 삶이 더 어려워졌지만 책 읽기에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우리는 책 읽기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더 풍요롭게 해야만 살아 남는다.
귀한 달러를 바꾸려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그런 대로 피어 오른다. 이제 우리는 중앙(서울)을 쳐다보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다운 색채가 분명한 책을 출간하는데 애정을 쏟아야 한다. 소금 절인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 서로 나눠 읽으며 위로하고 위로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8호까지 이끌어온 『작은문학』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보일 때다.
무엇보다 향리에서 출간되는 계간지(『작은문학』) 한 권쯤은 주머니에 넣고 타도시로 볼 일을 보러 나갈 때나, 아니면 먼 지역에 떨어져 사는 친지나 지인이나 친구에게 보여주고 보내는 여유로움을 지니는 것도 삶의 여정에서 치열성과 여유를 더 보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궁핍에서 삶의 열망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기댈 어깨를 자주 내주어야 한다. 책 읽기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나를 구원하고, 가정을 구원하고, 나라를 구원하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무서운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다.
우리가 어려운 시절에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을 걸 수 있었던 것은 토담을 흘러 넘어 골목을 울리는 어린이들의 책 읽는 그 낭랑한 목소리였다. 어린이의 노랫소리도 아름답지만 어린이가 책 읽는 소리 역시 아름답다. 이 궁핍한 시대를 책 읽기를 통하여 여유로움을 지니면 어떨까!!
계간 작은문학 제8호(1998년 여름호) 목차
■시와 그림
손잡기 ― 문덕수
아아 내가 얼마나 ― 하인리히 하이네
■책머리에│궁핍의 상황과 삶의 열망 ― 임신행
■전의홍 신작동시 특집│참외밭가에서 외 9
■시
원앙 序說/風磬 소리 외 1 - 남용술
촌놈 외 2 - 조남훈
1998, 盤松洞 꽃길 외 2 - 최명학
별 외 2 - 이상옥
고향 옛집 외 2 - 권충욱
겨울바다 외 2 - 이광남
꽃에 대한 斷想 외 2 - 목진숙
■이승희 번역시
발견 4 - 목련 개화(開花) - 황선하
기러기 - 이우걸
■동시│어머니의 손(1) 외 4 ― 조평규
■동화│슬픈 열쇠 ― 안도현
■수필
철없이 살지 말라 - 윤재근
밤피리 소리 - 배석권
밤참기(記) - 정진권
■평론
수필의 結尾考 ― 하길남
지역문학의 고토 회복 ― 서석준
전통의 생산적인 변형 꿈꾸기<신인> ― 김소정
■서평│자연스런 삶의 새로운 출발 <최송량 시집> ― 정삼조
■다시 읽는 수필│小設/인사 ― 이태준
■다시 읽는 소설│행상인 ― 프랑스
■발굴자료 작고문인 실화│추억 속의 인간들 ― 손소희
■발굴자료 수필│無常(전재) ― 이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