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문학(계간-반연간)

계간 작은문학 27호(2004년 겨울호)

gnbook 2008. 3. 13. 16:32
축시


홰치는 저 닭의
장대한 울음소리
새 힘 솟게 안하나

 
오 하 룡 (본지 주간, 발행인)
 
 
내가 보는 세상은 지금 회색빛이다
방금 지나치는 골목도 맞닥뜨리는 건물도
어쩐지 옅은 안개 속 마냥 침침하다
왠지 온몸 시리고 아리게 휘감는 바람도
무슨 무른 납덩이라도 달린 양 무겁다
아무리 걸음 가볍게 걸으려 해도
진흙 길 아닌데도 푹푹 빠지는 이 기분
그런데 이런 때 재래의 낯익은 조선 토종 닭
장대한 닭 울음 경쾌하게 들린다
갑자기 온 천지 서기瑞氣 가득 번지며
기분 좋게 밝은 물감 번지 듯 햇살 비친다
지금까지 가로막던 회색빛 어디가고
침침하던 골목 눈부신 조명 받은 양 환하다
바라보면 칙칙하여 머리 지끈거리던 건물
놀랍구나, 그 사이 무슨 조화 있었던가
갑자기 휘장 걷은 신축 건물인 양 신선하다
닭이 울면 이렇게 세상 달라지는 구나
쫑긋 볏살 세운 순후한 눈빛의 우리 닭
가만 있거라, 우리 지금 있는 곳 어디냐
우리 다급히 간다고 깝치는 곳 어디냐
닭 울음 그냥 심심하여 귀청 두드리지 않는다
저 횃대 속 밝은 전통 부활하는 순간이다
이제나 저제나 어영부영 세월 놓치는 게으름
우리 사는 온갖 서툰 짓 어눌한 짓
죽비 되어 내리치는 성찰이고 질타이다
세계 비좁다 당당히 깨라는 신호이다
들어보라, 홰치는 저 닭의 장대한 울음소리
이 아침 새 힘 불끈 불끈 솟게 안하나
                                                        ―경남신문 신년시 게재


 계간 작은문학 제27호(2004년 겨울호) 목차

■시와그림│늪―김춘수(추모) / 하얀 손수건 ― 어효선(추모)
■책머리에
│홰치는 저 닭의 장대한 울음소리 새 힘 솟게 안하나 ― 오하룡
■특별기고
│樂論 2 / 노래와 聖明 ― 尹在根
■강연초록│나의 시와 나의 지형학 ― 송수권
■근작수필 모음
 
가을에는 편지를 씁시다 - 김용길
  책을 나누어 주는 기쁨  외 1 - 김학래
  소나기야 퍼부어라  외 1 - 이종화
  아버지의 추억  외 2 - 정일근
  흔들의자 - 최영환
  노랑어리연꽃 - 하영
  못 잊어 - 황선락
■근작시 모음
  을숙도 추억  외 1 - 도리천
  집이 있네  외 1 - 서인숙
  캄캄한 밤에  외 2 - 신은립
  나의 가을  외 2 - 이보라
  늦갈  외 1 - 이은방
  새벽 아테네  외 1 - 이처기
  포장마차의 추억  외 3 - 임종린
  징  외 4 - 전병철
  그러나 불안은 늘  외 1 - 정광수
  우포늪 가는 길  외 6 - 조남훈
  물 풍선  외 6 - 조숙
  누군가 네 방문을 툭툭 걷어차며  외 2 - 조은길
  봄비  외 6 - 차성우
  남은 시간에  외 1 - 추창영
■평론
  상징과 교훈, 그 이항융화―수필집 『아버지의 유산』론 ― 하길남
  정신과 육체의 인간학, 그 구도적 탐색―도리천의 시세계 ― 이상옥
■이소리 시인의 향수 에세이│창원, 추억 속의 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