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문학(계간-반연간)

계간 작은문학 20호(2002년 가을호)

gnbook 2008. 3. 13. 11:05



20호를 내며



오하룡


『작은문학』이 어느새 통권 20호를 맞았다. 등록은 1995년 7월 15일에 하였으나 막상 창간은 1996년 봄호로 실천이 되었다. 햇수로 7년이 된 셈이다. 계간이므로 결호 없이 제대로 내었다면 지금 27호가 되었을 것이다. 사정이야 있었지만 계간으로서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부분이 마음의 부담이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잡지의 나이나 연륜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잡지의 기능에 충실했느냐가 평가의 잣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작은문학은 그렇게 자를 들고 재려 든다면 별로 내세울 게 없다. 내가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듯이 내가 만드는 잡지도 평범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사는 내 몰골을 싫어하듯이 잡지를 그렇게 평범하게 만드는 자체에 대해 걱정하거나 때로는 강력히 불만을 갖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초고속 디지털 세상이 아닌가. 이런 때 보통을 고집하며 아날로그 걸음을 계속한다면 정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의 심정도 진심으로 이해하려 한다. 나태 혹은 안일, 적당주의란 얼마나 무서운 우리 삶의 적인가 말이다. 내가 하는 일이 그런 범주에 드는 것으로 비친다면 마땅히 그걸 경계하는 훈계는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내 신념을 외부적 요건에 함부로 휘둘리는 것 또한 경계하면서 내 길을 조심조심 가고자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뭐든 크게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실천을 앞세워 앞길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문학잡지니까 문학잡지로서의 사명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칫 벅찬 약속을 인기를 의식해 늘어놓았다가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고 있지 않은가.

형편이 되지 않으면서 원고에 욕심을 내는 때가 있다. 어떤 원고면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는가는 거의 정답이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실천에 옮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빤히 보이면서도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허용하지 않는 영역에 무리하게 접근을 시도한다면 과욕이고 그것이 지나치면 허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항시 직시하고 있다.

20호를 내며 굳이 이런 점을 짚어보는 것은 내 의식의 허약한 부분이 어느 사이엔가 나도 모르게 옆길로 들어서는 경우를 왕왕 경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누가 자신이 만드는 잡지가 독자들의 사랑 속에 높은 인기를 끄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 것인가. 이 유혹을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

이번 호에도 20호를 축하라도 하는 양 귀한 원고를 만나는 행운이 계속되고 있다. 요즘 지역문학회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단체에 대해서는 기존 지역 단체의 옥상옥 성격이라는 비판에서부터 여러 설왕설래가 있다. 이 즈음에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윤재근 한양대 명예교수가 그 좌장들에게 주는 서간문 형식의 글을 본지에 보내왔다.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 크리라 보며 본지로서는 윤 교수의 본지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전의홍 시인의 기인스런 글쓰기는 경남권에선 잘 아는 사실인데 그가 이번에도 신작 동시를 보내주었다. 그는 본지 외는 작품을 내지 않고 있다. 또 지난 호에 체험구도 소설을 발표하여 관심을 끌었던 도리천 스님이 이번에는 재미있는 에세이를 기고해 주었다. 이런 원고는 본지만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 멀리 충청지방에서 보내온 신작시를 비롯하여 이번 호에도 다양한 필자들이 참여하여 지면을 알차게 꾸며주고 있다.

욕심 없는 이런 책 만들기는 앞으로 보통 속의 읽히는 문학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 나가는 한 증좌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으리라 본다.


계간 작은문학 제20호(2002년 가을호) 목차

■화보│추모 김원숙 수필가
■시와 그림│돌쩌귀사랑―정일근/모닥불―白石
■책머리에│20호를 내며―오하룡
■특별기고│이웃사촌 문학운동―尹在根
■김원숙 추모 특집
수필가 김원숙 여사 생각 - 오하룡
어느 수필가의 죽음 - 이원기
서러운 달개비 꽃 - 하길남
대표작
│춘보의 바람병 / 모시옷 예찬
■김인자 신작시│윤사월  외 1
■남용술 신작시│노물리 어항의 파선  외 3
■성기각 신작시│창녕장터  외 9
■손남주 신작시│가을 언덕에 서서  외 3
■이득수 신작시│百濟行
■이월춘 신작시│그늘의 힘  외 9
■전태익 신작시│악 어  외 5
■정삼희 신작시│차마 말 못할 사람아  외 4
■최명학 신작시│짧은 노래 셋  외 1
■이상개의 추모시│어디쯤 항해하고 있을까
■전의홍 신작동시│빨간 공이 익어야  외 4
■강현순 신작수필│아름다운 실버
■김기천 신작수필│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든 까닭
■도리천 신작수필│건강을 위하여
■이원기 신작수필│나의 친애하는 친구 B
■조유전 신작수필│창원 성산패총 발굴 비화
■최진의 신작수필│친구의 은둔 1  외 2
■황경식 신작수필│노블레스 오블리주
■조현술 신작동화│숲 속 나라의 동물학교
■신민요│아버지는 누구인가―작자 미상
■정삼조의 지역시 읽기│고향길  외 3―정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