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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 선생 3·15의거폄하 논란 진의 분석

노산 선생은 3·15를 폄하하지 않았다

 

 

오하룡

 

 

1. 논란의 시작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저 명가곡 가고파의 작사자인 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이 가고파의 무대이며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마산에서 백안시되는 대접을 받고 있어서 놀랐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뚜렷하게 거론되는 것도 아니었다. 얼핏 친일을 하였다는 풍문이 들렸다. 그러다가 3·15의거를 폄하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독재에 부역했다는 섬뜩한 말이 등장하였다.

그러더니 어느 사이에 평생을 친독재 정권에 영합하여 양지를 지향하는 기회주의적 삶을 살았다고 비약하는 것이었다. 이 표현은 그가 거친 당시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등에 협조하며 처신한 것을 빗대는 것으로, 필경 친독재적인 삶이란, 일신의 영화(?)를 추구하여 정권에 의지한 삶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노산 선생은 친일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시민단체조차 지금은 거론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보며, 친독재 영합도 노산이 정치에 앞장서 실질적으로 부정선거를 획책하거나 군사정부를 찬양하지 않는 한, 평생을 애국애족자로 문학가의 삶을 살아온 사람의 평범한 신념이라고 볼 때 그것을 문제 삼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의 많은 작품을 보면 이 부분은 충분한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

나머지 한 가지 그의 고향 마산의 일부 시민단체가 노산이 3·15의거를 폄하했다는 논란을 벌여 지역사회를 어둡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곡해한 부분이 원인으로 보여 필자가 부족한 대로 그 규명에 나서 보는 것이다. 3·15가 일어난 지 올해로 56주년을 맞고 있다. 노산 선생이 3·15의거 폄하자로 몰려 어두운 대접을 받은 기간도 그 기간이라는 계산이 된다. 반백년이 넘어섰다. 필자의 분석으로 하여 더 이상 논란은 마침 점을 찍어야 하고 노산 선생에 대한 어두운 그늘도 명쾌히 제거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2. 논란의 핵심

 

노산 선생의 소위 3·15의거 폄하발언으로 회자되는 중요한 발언을 보면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다.”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다.”, “‘무모흥분이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3·15의거를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은 불상사라고 매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당시는 ‘3·15의거가 아닌 마산사건’ ‘마산사태였다는 사실이다. ‘마산사건’ ‘마산사태‘3·15의거로 받아들이면 우선 거부반응이 올 수밖에 없다. 의거인데 왜 사건 또는 사태냐 하는 반발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문장을 잘 살펴보면 빚어낸이 가진 앞의 의미에 대한 연결고리 역할이다. 즉 자칫 빚어 낸을 예사로 여기고 로 보면 의미가 확연히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마산사태‘3·15의거로 인식하면 불합리 불합법의 불상사‘3·15의거가 일어나선 안 될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빚어 낸이 들어가면 불합리 불합법이 당시 3·15의거를 일어나게 한 정부, 즉 자유당 정부가 불합리 불합법으로 부정선거를 빚었기 때문에 불상사’, 즉 일어나선 안 될 사건이 난 것으로 바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빚어 낸이 아닌 로 받아들이면 ‘3·15의거가 불순한 불합법 불합법의 불상사가 되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앞뒤 문맥을 보지 않고 이 문맥만 보아서는 노산 선생이 그런 말을 했어? 어른이 노망했군.”라고 할 만하다. 다른 두 문맥도 마찬가지다. ‘3·15의거가 어떤 의미인데 마산이 고향인 노산 선생이 ‘3·15의거를 그럴 수 있는가?’

불행한 일이지만 당시 여론은 누구의 발언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나 선생을 하루아침에 3·15 폄하자로 규정짓고 만 것이다. 당시 한 사람이라도 노산 선생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었다면, “노산 선생의 발언의 진의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또는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 낸 불상사로 했기 때문에 3·15를 폄하한 것이 아니야라고 회의적으로 바로 언급했다면, 약간의 여유가 생기는 시점에 바로잡는 기회도 있었을 법한데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모른다. 혹시 그런 분이 있었는지? 그랬는데도 불행히 당시의 의거라는 경직된 분위기에 매몰되어 그런 바른 소리는 전달되지 않고 묻혀버렸는지.

그리하여 노산 선생은 변명 한마디 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50여 년을 3·15의거를 폄하내지 폄훼한 반역자로 몰리고 만 것이다.

노산 선생의 3·15의거 폄하 논쟁의 시발은 3·15의거가 있은 지 꼭 한 달 만인 조선일보 1960415일자에 게재된 마산사건의 수습책이라는 제목의 6개 항목의 설문에 대한 답변에 있었다. 설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마산사건이 촉발된 근본원인은 무엇으로 보십니까?

2. 마산시민들의 시위가 확대되어 가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3. 지금까지의 당국의 수습책을 옳다고 보시나요?

4. 마산사태를 시급히 수습하자면?

5. 마산시민에게 보내고 싶은 말씀은?

6. 당국에 하고 싶은 말씀은?

 

여기에 대한 노산 선생의 각항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1항 답변

도대체 불합리不合理 불합법不合法이 빚어낸 불상사不祥事.

 

2항 답변

지성知性을 잃어버린 데모다. 앞으로는 더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고自古로 과오過誤와 과오過誤의 연속은 필경 이적利敵의 결과結果가 되고 만다.

 

3항 답변

역시 관의 편견이 너무 강했던 것 같다. 비상시非常時 정치에는 무엇보다 성실과 아량이 필요하다. 왜 과감한 정책을 쓰지 못하는가.

 

4항 답변

정부에서도 비정상적非正常的인 사태事態 앞에서는 비정상적非正常的인 방법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야與野 지도자들은 좀 더 냉정한 지도 정신을 발휘發揮해야 하며 좀 더 스케일이 커야 한다.

 

5항 답변

내가 마산馬山 사람이기 때문에 고향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 분개한 생각이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마는 무모無謀한 흥분興奮으로 일이 바로잡히는 법이 아니다. 좀 더 자중自重하기를 바란다. 정당正當한 방법方法에 의하지 않으면 도리어 과오過誤를 범하기가 쉽다.

 

6항 답변

요즘 5개조항五個條項 운운과 같은 지엽적枝葉的 고식적姑息的 대당적對黨的인 제의보다 비상非常한 역사적 대국면歷史的大局面을 타개打開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인 대책對策이 필요하다.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초당적超黨的 연립적聯立的, 아니 거국적이요 비상시적인 노장老壯 유능有能한 내각을 구성하여 그야말로 국민이 원하는 새 국면局面을 열어야 한다. 이것은 부분적인 각료 경질更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각改閣 여부는 별문제로 실지로 책임적인 전체적인 경질更迭을 말하는 것이다.

3. 내용 분석

 

이렇게 전문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짚어가 보면 예사로 넘겨서는 안 될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더욱 이 설문으로 보면 설문 6개 항목 전문을 같이 보아야 정확한 해답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어떤 이유에선지 극히 일부분을, 그것도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거두절미 발췌하여 문제 삼고는 그것만이 발언의 전부인 것처럼 기정사실화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가장 어필되는 어휘 가운데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다.”라고 한 부분을 보자. 이렇게 대답하게끔 노산 선생에게 보낸 설문을 살펴보면, 그렇게 받아들이면 왜곡된 것임이 드러난다. 해당되는 질문 1항은 마산 사건이 촉발된 근본 원인은 무엇으로 봅니까?”이다. 여기에 대해 선생의 답변이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한 것이다.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다3·15의거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3·15의거를 불러 온 정부의 부정선거로 하여, 즉 정부의 잘못으로 이 사건이 촉발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3·15가 일어난 원인을 지적한 의견을 무시해 버리고 3·15의거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은 부분만 드러내어 ‘3·15의거를 부정否定한 발언을 한양으로규정지어 버린 것이다. , 앞뒤 문맥으로 보면 3·15의거를 불합리 불합법인 불상사라고 지적한 것이 아니라, ‘불합법 비합법이 빚어 낸 불상사즉 전국적으로 자행되었던 부정선거로 하여 마산사태라는 사건이 일어났음을 분명히 해주고자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 낸 불상사라고 지적한 것이 명백한 것이다.

불상사의 사전적 의미는 일어나서는 안 된 일이다. 3·15를 언급함에 있어 이런 표현 자체에 거부반응이 있어 성역인 3·15에 어쩌자고 그런 표현이 들어가게 하느냐 식으로 억지를 쓴다면 모르지만, ‘불합리 불합법정부의 부정한 짓즉 범하지 말아야 할 부정선거를 범했으니 3·15가 일어난 것이 아니냐는 반문으로 불상사라고 밝힌 것뿐이다.

그러니까 노산선생은 정부가 잘 못하여 일어나서는 안 된 일이 일어나게 하고 말았으니 불상사라고 밝힌 것이다. 여기서 얼핏 불상사라는 표현을 의거로 규정된 오늘날의 시각에서 새겨보면 3·15를 부정한 듯한 의미로 느껴질 수도 있다. 본래 의거義擧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정의正義이다. 3·15의거야말로 부정선거를 심판하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실천적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분명히 의거로 규정되기 전마산사태’, 또는 마산사건으로 불리면서 파출소 등이 불타고 파괴되고 선량한 학생과 시민이 총탄에 희생되는 무법, 무질서의 격렬한 공포의 시위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언급했다면 3·15의거의 긍정적인 표현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만일 그런 언급을 한다면 그때 난리 상황을 부추기는 것이 되고 희생된 분들도 당연한 희생으로 보는 것이므로 상식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다.”라고 한 부분이다. 앞뒤 없이 3·15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라고 했다면 이 역시 능히 반발을 불러 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2항 질문은 마산시민들의 시위가 확대되어 가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하고 있다. 학생을 비롯한 희생자가 다수 발생하고 파출소가 불타고 시내 전체가 정의감의 분기로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시위상황이다.

더욱 이때는 김주열의 죽음이 경찰의 총격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수습불가의 사태로 발전하고 있는 극한 상황이었다. 데모군중이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고 냉철한 지성을 기대하기도 난망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당연히 분기憤氣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지성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성을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노산 선생이었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노산 선생의 언급은 타당한 것이 아닌가. 당시는 휴전이 되고 겨우 7년을 지나고 있다. 지리산에서는 준동하는 공비들로 하여 그때까지도 치안이 늘 어수선하였다.

그것이 조금 숙지근해지자 이런 사태가 난 것이다. 국가의 안위를 염려하는 원로로서 이것이 혹 북한을 자극하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과오는 과오를 낳고 이적利敵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이것을 단순한 3·15의거 폄하로 단정 지어질 수 없는 이유는 선생의 다른 항목의 답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다음은 무모無謀한 흥분興奮으로 일이 바로잡히는 법이 아니다. 좀 더 자중自重하기를 바란다.”라고 한 부분이다. 얼핏 보면 3·15의거를 무모한 흥분과 자중만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 문맥을 보자. 이 부분은 5항의 질문 마산시민에게 보내고 싶은 말씀은?”에 대한 답변으로 내가 마산馬山 사람이기 때문에 고향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 분개한 생각이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마는 무모無謀한 흥분興奮으로 일이 바로잡히는 법이 아니다. 좀 더 자중自重하기를 바란다. 정당正當한 방법方法에 의하지 않으면 도리어 과오過誤를 범하기가 쉽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이 항에는 분개한 생각이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마는이라는 언급이 있어 3·15의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정부의 부정선거와 무능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정당한 방법에 의하지 않으면 도리어 과오를 범하기가 쉽다는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당한 대책이 아니면 다시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발언임에도 거두절미하고 무모와 흥분’ ‘자중만 강조하여 3·15사태를 무모한 흥분이라고 매도한 것처럼 보는 것은 심한 왜곡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밖에 3항의 질문은 지금까지의 당국의 수습책을 옳다고 보시나요?”라고 되어있다. 이에 대해 선생의 답변은, “역시 관의 편견이 너무 강했던 것 같다. 비상시非常時 정치에는 무엇보다 성실과 아량이 필요하다. 왜 과감한 정책을 쓰지 못하는가.”

이라고 한 것은 정부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의 성실한 대책과 아량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감한 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과감한 정책이란 무엇일까. 부정을 저지른 잘못을 명쾌히 사과하고 국민이 시원히 받아들일 수 있는 과감한 정책 이행이 있어야 함을 밝힌 것이다.

 

4항의 설문은 마산사태를 시급히 수습하자면?”이다. 여기에 대해 선생의 답변은 정부에서도 비정상적非正常的인 사태事態앞에서는 비정상적非正常的인 방법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야與野 지도자들은 좀 더 냉정한 지도 정신을 발휘發揮해야 하며 좀 더 스케일이 커야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고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스케일이 큰 현명한 지도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전적으로 사태의 책임을 정부에 묻고 있다.

 

마지막 6항의 질문과 답변을 살펴보자. 6항의 질문은 당국에 하고 싶은 말씀은?”이다. 답변은,

요즘 5개조항五個條項 운운과 같은 지엽적枝葉的 고식적姑息的 대당적對黨的인 제의보다 비상非常한 역사적 대국면歷史的大局面을 타개打開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인 대책對策이 필요하다.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초당적超黨的 연립적聯立的, 아니 거국적이요 비상시적인 노장老壯 유능有能한 내각을 구성하여 그야말로 국민이 원하는 새 국면局面을 열어야 한다. 이것은 부분적인 각료 경질更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각改閣 여부는 별문제로 실지로 책임적인 전체적인 경질更迭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 마지막 항목에서 노산 선생은 종합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먼저 비상한 역사적 대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원칙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초당적 연립적이며 노장, 즉 늙고 젊고를 떠나 세대를 초월한 유능한 지도자로 내각을 구성하고 부분적인 장관의 경질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있는 전체적인 정부의 개편이라야 국민이 납득하는 사태 해결책이 될 것임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시국을 걱정하는 국가 원로로서 노산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4. 결론

 

이상으로 노산 선생이 3·15의거를 폄하했다고 하는 문제된 부분의 진의와 함께 전체 문안을 폭넓게 살펴보았다.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보았을 때는 얼핏 오해할 만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는 듯도 하였지만 전체를 보면 그렇게 받아들여서는 안 됨을 너무나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참고로 부언할 부분이 있다.

노산 선생의 답변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는데 오해의 소지가 생긴 부분이 있다는 설이다. 당시 같은 질문에 대해 소설가 김팔봉 선생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1항에 대한 답변 :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선거를 부정하게 치른 까닭이다.

2항에 대한 답변 : 누르면 누를수록 더 확대될 것이다.

3항의 답변 : 적당한 수습방책이 아니다.

4항의 답변 : 선거를 나쁘게 치르게 한 모든 사람이 전부 책임지고 물러앉는 것이다.

5항의 답변 : 시민들은 정숙하게 합법적으로 의사 표시를 하고 행동하기 바란다.

6항의 답변 : 신중히 자기 반성하고서 국민한테 사과하고 성실하게 책임을 다할 것을 바란다.

 

그러니까 이처럼 쉽게 답변하지 않고 노산 선생은 한문 투로 어렵게 답변한 것이 이런 곡해를 불러온 원인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팔봉 소설가는 소설가식으로 답변하였고 노산 선생은 일생을 한학자이면서 문학가로 살아온 자기식 답변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설명이 어디 가겠는가. 아무튼 필자는 6개 항목의 전체를 보아야 선생의 발언 의도가 선명히 드러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러함에도 노산 선생이 3·15를 폄하했다고 계속 몰아간다면 선생의 고향은 그에게 지나친 무례를 저지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내용 감수 : 윤재근 한양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단행본 <가고파 내고향 남쪽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