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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국복 시집 <강에 누워> 평설

 

자연에 동화된 삶,

혹은 내림의 지경

 

김복근 시조인 문학박사

 

손국복 시인을 보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양리 소나무가 연상된다. 한 그루 소나무처럼 의연하게 살아가면서 따뜻한 신뢰감을 심어준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과 호방한 성품도 영락없는 소나무다. 세상이 어지러워 정의가 흔들릴 때도 절의와 명분, 지조와 의리를 지키면서 탈속과 풍류가 함의된 삶을 살고 있다.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면서 매미같이 천연의 삶을 사는 시인이다. 자연의 존엄성과 특이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태주의 자연관이 몸에 배어있다. 자신의 인식체계를 수사로 꾸미거나, 이미지로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 받은 메시지를 체화된 경험과 주체가 일치되도록 일관성 있게 표출한다. 자신의 시세계를 직정 적으로 토로하여 명료하게 전달하는 특유의 개성을 구가한다. 내린 사람이 하늘과 인간의 중개자 역할을 하듯 자연에 동화된 삶을 살면서 시내림의 지경을 보여준다.

시인의 삶과 사유는 언행이 일치한다. 진주 이반성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후 합천에서 중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을 거친 후 교육장까지 지내며, 합천 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2권의 시집을 펴낸 중견시인으로 합천문협 회장과 예총회장,월간문학편집위원을 지내면서 문학을 위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화양리 소나무처럼 천연의 삶을 사는 손 시인이 시집을 내겠다며 발문을 요청해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사양해도 막무가내다. 짧게 써 줄 것을 강조하면서 이름자에 서로 복자가 들어 있으니, 꼭 해주어야 한다는 유머를 빠뜨리지 않는다. 쉬이 물러설 것 같지 않아 어룽거리는 사이 깔끔하게 정리된 원고를 보내왔다.

 

바람은 안다

저 강의 흐름을

어디서 여울지고

어디서 넘쳐

어디로 향하는지

얕은 강에 고기 품고

깊은 강에 배를 띄워

바다에 이르는지

 

새들은 안다

저 강의 빛깔이

얼마나 푸르고

얼마나 흐리며

얼마나 따뜻이

생명을 키우는지

아낌없이 나누다

미련 없이 떠나는지

 

산들은 안다

저 강의 깊이를

어느 산

어디 짬에서 깨어나

새소리 바람 소리

천둥소리 모두 모아

힘찬 팔뚝을 세우고

우람한 가슴 만들어

바람과 새를

산들을 덥석 보듬고

유유히 흐르는지.

-강에 누워전문

 

표제시인 강에 누워를 보면 그의 시세계를 조감할 수 있다. 시인은시인의 말에서어떻게 사는 삶이 옳은 삶이고, 어디로 가는 곳이 바른 길인지 영원히 모르겠다.”는 탄식을 쏟아놓고 있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바람강의 흐름을 알고, ‘강의 빛깔을 알고, ‘강의 깊이를 안다고 읊조린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강은 물이 흐르면서 생기는 자연현상이다. 노자는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살 때는 물처럼 땅을 좋게 하고, 마음을 쓸 때는 물처럼 그윽함을 좋게 하고, 사람을 사귈 때는 물처럼 어짊을 좋게 하고, 말할 때는 물처럼 믿음을 좋게 하고, 다스릴 때는 물처럼 바르게 하고, 일할 때는 물처럼 능하게 하고, 움직일 때는 물처럼 때를 좋게 하라. 그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라고 갈파했다. 화자는 노자 사상이 몸에 배어 있다. 강에 누워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을 살면서 바람, , 산의 눈을 빌려 강의 흐름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그의 시는 꾸밈과 가식이 없다. 명쾌하여 속이 다 시원하다. ‘목숨 건/거룩한 행렬 앞에/ 아무도 말이 없다’(사람이 죽는다)‘운명의 강에 몸을 던지고/ 천상의 땅에 위안 보내며/눈망울 싸늘히 하늘 원망하다.(얄팍한 인간)‘떠나고 싶다, 숨고 싶다, 묻히고 싶다’(싶다)면서 심화를 쏟아낸다. ‘얼굴도 모른 채/ 칠흑의 절벽에 부딪히고/ 절망의 감옥에 갇혀/ 사계를 넘나드는 꽃들의 향연과/ 해와 달 별빛의 찬란함도 모르고’(시각장애인의 날에 부쳐)‘남사당 외줄 타기/ 춤을 추다가/ 공중재비 차오르면 천당/ 처박히면 지옥’(칼날 위에서)에서 인간답지 않은 인간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판관이 되어 풀을 베는 예초기로 저주의 칼날 세워/ 목을 자른다.’(예초)

사물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존재에 대한 논리적 기초를 제공하는 비판적 안목은 에 와서 그 절정을 이룬다.

 

산맥

수맥

광맥

인맥

줄줄이

극 세사로 얽혀진

 

산맥 잘 타 종주하고

수맥 짚어 광천수

광맥 잘 파 노다지

인맥 잡아 출세하는

질긴 심줄

 

누구는 출세하고

누구는 몰락하는

맥박 같은 생존 싸움

맥락 놓쳐 범벅되는

그물코

한 번의 투망.

전문

 

그의 시는 거침이 없다. 과감하게 조사를 생략하고, 냉혹하리만치 간명하게 언어를 제어한다. 세상은극 세사끈으로 이어져, 산에는 산맥, 광천수에는 수맥이, 광산에는 광맥이, 사람 사는 데는 인맥이, 씨날줄로 얽혀 있다. 산맥, 수맥, 광맥, 인맥으로 행을 구분한 것은 인맥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의도적 배행이다. 은 혈기의 쇠약과 왕성함으로 허와 실을 살필 수 있다. 물이 산에서 발원하여 하류에 도착하듯이 인맥은 오장五臟의 명을 받아 지체肢體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극 세사로 줄줄이 얽어 출세와 몰락의 길로 가는 인간들을 보면서, 예리하고 신랄하게 풍자하면서 알레고리로 풀어내어 시 읽기의 재미를 더해 준다.

 

수 천 수 만 언 손 부벼

피어 올린 불

-복수초전문

 

짧고 간결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응축된 시어와 절제된 형태미로 여백을 최대화 하여 여운이 남는 시세계를 구축한다. 213음절의 단시지만, 한줄기 난 이파리 같이 줄기차게 뻗어나가 감미로운 음률이 흐르는 듯하다. 현대시가 언어를 지나치게 과소비하여 남용하는데 비해 손 시인은 응축과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복수초는 복을 받으며, 오래 살라는 뜻을 함의하면서 이른 봄,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이다. 불은 문명의 총화다. 화자는 복수초의 꽃대 하나를 세우는데도 수 천 수 만개 언 손을 부비면서 기를 모아야 을 밝힐 수 있음을 구명究明한다. 시인은 언어를 조율하는 전문가답게 따옴시 에서 과감하게 조사를 생략하더니, 복수초에서는 단 두 줄로 응축하는 언어미학을 보여준다.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마치 한 폭의 문인화를 마주하는 느낌을 받는다. 여백의 미를 살리면서 일필휘지一筆揮之하는 광휘光輝로움의 감동을 받게 된다.

문인화를 그리는 그의 작풍作風비봉루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억을 더듬어

돌길 오른다

비봉산 비봉루

사십 해 지난 가을의 누각엔

그 모양 빛깔 그대로

설대 푸르고

배롱나무 늙은 가지 사이

계절 깊은데

묵향 가득 꿋꿋한

은초 선생 붓자루가

석양 기우는 대청마루

아직도 걸려 있어

한 시절 추사를 꿈꾸던

장년의 나그네가

눈 지그시 감는

만추.

-비봉루전문

 

비봉루는 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이 현판을 쓰고, 서예에 매진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던 서예와 문인화의 현장이다. 진주권역의 선비들이 모여 시를 읊고, 사군자를 치던 풍류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선에 의한 생명표현의 충동이 서예의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알고 있는 화자는 40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오른 가을 누각은 세월이 지나도 그 모양 빛깔 그대로/설대 푸르고/배롱나무 늙은 가지 사이/계절이 깊어가는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면서 수감에 젖어든다. 서예는 단 번의 붓놀림으로 점과 획을 구성하면서, 무궁무진한 조형의 세계를 구축하는 독특한 예술이다. 추사와 성파, 은초로 이어지는 서예계의 맥을 보면서 젊은 날의 꿈을 회상하고 있는 이 시는 그야말로 한 폭의 문인화를 연상케 해준다.

 

참다가 참다가

도저히 못 견뎌

치과로 간다

덧난 상처와 고통

족집게로 쑤욱

뽑아버린 과거

살 떨리는 기억

이 갈리는 배반의 신경 줄

단칼에 끊어주는

발치.

-임플란트1전문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문제 중의 하나가 치주염이다. 염증이 생긴 잇몸을 그냥 두면 치아 뿌리가 노출되고 약해져 결국은 이가 빠지게 된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임플란트는 인공 치아를 나사로 고정시키는 작업이다. 임플란트 시술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시인은 임플란트를 하면서 고통받은 경험을 연작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참다가 참다가/ 도저히 못 견뎌/ 치과로 간다.’다들 경험해본 일이지만, 치과 진료는 고통스럽다. 화자는 치아를 뽑으면서덧난 상처와 고통족집게로 쑤욱뽑아 낸다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살 떨리는 기억이 갈리는 배반의 신경 줄까지단칼에 끊어낸다. 연작시 임플란트 2에서는 임플란트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삭아빠진 치아 사이 이 빠져나간다고 안타까워하다가 임시방편 플라스틱 창이/새는 바람 막아 준다/나가는 복 잡아 준다.’라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임플란트는 입안에 승용차 한 대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비용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수술에 대한 부담과 시술 과정의 고통이 크기도 하다.

 

산이동산 석사장은 운행을 나갔구나 강안개 자욱하여 앞도 안 보일텐데 광양 시멘트 한 차 벌써 싣고 오겠구나 하루도 쉴 날 없는 포크레인 허기사 시동 걸고 이 아침 첫 삽을 퍼는구나 농사 달인 이갑장 딸기하우스 나가는 길 제내교회 최목사 예배 말씀 하나님께 간절하고 강 건너 연호사 진각 독경 남정강물 맑혀 천년 잠든 대야성 죽죽 영혼 달랠 즈음 어둠 채 가시잖은 초겨울 신새벽에 대암산 산신령은 기침하여 정좌하고 잠행 마친 황강 물귀신 아침잠을 청하는 틈 새들은 둥지 날아 하루 여정 더듬는다 막바지 양파 모종 촘촘히 심어 가는 숙달된 아낙 손길 무서리 맨땅 파헤칠 때 햇살은 등허리에 미열 덮어 감싸주고 저 멀리 까마득한 다릿발 고가 크레인 기사 허공에 매달려 줄타기 하는 산 아래 땅 위에 서 있는 사람들.

-서 있는 사람들전문

 

산문시 서 있는 사람들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여 서민들의 애환을 실감나게 노래한다. 화소 높은 묘사는 화질이 선명하여 파노라마처럼 그 움직임이 눈에 선하다. 산이동산 석사장, 포크레인 허기사, 농사 달인 이갑장, 제내교회 최목사 등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분들이며, 연호사 진각과 대야성 죽죽이는 역사적인 인물, 대암산 산신령은 영적인 존재, 숙달된 아낙, 다릿발 고가 크레인 기사와 같은 불특정 다수의 인사가 등장한다. 움직임은 살아있음의 대체 어휘다. 그들의 다양한 활동을 열거하면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여 시 읽기의 재미를 준다.

사람들은 직립 보행을 하면서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인다. 화자는 사고의 매개가 되는 언어를 바탕으로 작품 전체를 단순하면서도 적확하게 묘사하면서 객관성을 부여하고 있다. 진술을 배재함으로써 시를 해석하고 음미하는 판단은 청자 스스로 하게 한다. 응축과 절제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는 시인은 산문시에서도 일필휘지의 습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준비된 사람은 언제나 서 있는 자세로 생활한다.

 

잠시 정전만 되도 쩔쩔매는 나에게

안대를 묶고 소경 체험을 하라한다

흰 지팡이를 더듬대며

건널목 건너는 봉사가 되라한다

세상은 온통 암흑천지

전봇대에 부딪히고

보드 블록에 발 차이는 것쯤이야

대수도 아닌

무엇을 먹는 지

보고도 모르는 청맹과니

꽃보다 어여쁜 내 색시

보석처럼 빛나는 내 자식

얼굴도 모른 채

칠흑의 절벽에 부딪히고

절망의 감옥에 갇혀

사계를 넘나드는 꽃들의 향연과

해와 달 별빛의 찬란함도 모르고

살아내는 사람들

귀 쫑긋 세우고

손과 발 미세한 감각 하나로

생을 지탱하는 가여운 선인

그대 아미에 찬란한 빛이 내려

그대 가슴에 신령의 축복이 닿아

보고서도 더 영악한 인간보다

안보아도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의 눈 열린 환한 세상 보시라.

-시각 장애인의 날에 부쳐전문

 

장애 중에 가장 힘든 장애가 시각장애일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눈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광선을 굴절시키는 안구를 통하여 망막에 상이 맺히게 하여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다. 평자는 한 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시집을 제작하였고, 시각장애인 시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과 교류를 하면서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알게 됐다.

시각장애인 체험을 나선 화자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잠시 정정만 돼도 쩔쩔매게 된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안대를 하게 되자 세상은 암흑천지로 변하고, ‘청맹과니가 된 자신은 아내와 자식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아픔을 공유하게 된다. 시각장애인은 하늘이 푸르고 사과가 붉은 것도 모르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들도 하늘이 푸르고, 사과는 붉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신령의 축복이 닿아’,‘안보아도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마음의 눈 열린 환한 세상 보시라.’고 축원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자신을 배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좋아하지만, 가련하게 보거나 동정하는 것은 매우 싫어한다. 시인의 염원을 시각장애인들은 좋아할 것 같다.

 

하늘에 있어야할 별이

땅으로 굴러 왔다

운석이라면 주워

돈이라도 셈하겠지만

돈 되는 별이 아니라

굴러다니는 별

지리산 산자락에 박혔다가

논개 붉은 피 말라 버린

진주 남강 강둑길 거닐다가

불현 듯 풍등 타고

명동 성당 첨탑 올라

프라하로 날아간다

별이 그리움이라면

별이 유랑객이라면

생멸의 강을 건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빛나는 시가 되어

외롭고 시린 이들의

등불이 된다.

-시 또는 별전문

 

현대인은 밤하늘의 별을 잊고 산다. 평자의 경우 밤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 늦은 시간에 바닷가를 거닐어 보기도 하고, 이른 새벽 산길을 걸어 보기도 하였지만, 어릴 때 보던 그 별빛은 보기가 어려웠다. 별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만, 밝게 빛나 보이지 않는 이유는 너무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는 수천억 개의 별이 있지만, 우리가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은 겨우 2,000여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별을 노래한 시인은 무수히 많다. 중국의 이백은 물속에서 을 건지기도 하고, 독일의 괴테는 별과 별 사이에 다리를 놓기도 하였으며, 프랑스의 생텍쥐페리는 상상의 별을 노래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시인도 예외 없이 별을 창조한다. 박화목은 유성우流星雨를 노래하고, 윤동주는 별 헤는 밤을 노래하고, 이시환은 지리산에서 문득 밤하늘의 별들을 노래했다.

손국복 시인은 시 또는 별에서하늘에 있어야할 별이/땅으로 굴러 왔다고 노래한다. 이 별은 돈 되는 별이 아니라/ 굴러다니는 별지리산 산자락에 박혔다가/논개 붉은 피 말라 버린 진주 남강 강둑길 거닐다가/불현 듯 풍등 타고/명동 성당 첨탑 올라/프라하로 날아가기도 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빛나는 시가 되어/외롭고 시린 이들의/ 등불이된 별은 좋은 시에 대한 화자의 갈망에 다름없다. 시는 언어의 별이고, 별은 우주의 시다. 별은 신앙의 대상이 되어 주술적인 힘을 주기도 하지만,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에 시심詩心과 시정詩情을 깨우는 데도 큰 힘을 발휘한다. 시는 마음으로 별을 찾아가는 인문과학이다.

 

손국복 시인의 시는 이미지나 수사로 치장하지 않는다. 단순명쾌하게 사물의 본질을 짚어내어 절제된 시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시적 상상력과 영감은 자신의 거소인 해누리에서 발원하여 황강을 타고, 남태평양으로 굽이치고 있다. 때로는 만주와 곡부, 후쿠오카, 프라하, 알래스카, 남아프리카로 날아가기도 한다. 삶에 대한 본래면목을 바탕으로 존재론적 연속성을 갈구하면서 존재적 부재와 부재적 존재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려내기도 한다. 인간은 되지만, 시가 되지 않는 사람과 시는 되지만, 인간이 되지 않는 사람 때문에 혼란스러운 이 시대, 손국복 시인은 인간도 되고 시도 되는 그런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山仁者樂水)고 하지 않았는가. 시인은 화양리 소나무처럼 아자연我自然의 세계에 몰입하여 지와 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의 앞날에 그가 염원하는 큰 시가 도래하여 청자들의 가슴을 풍요롭게 하리라는 좋은 예감이 든다. 그의 시는 그의 운명이다. 상상만 해도 기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