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인의 말

 

어쨌든 나는 강물처럼 흘러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종교 이전의 종교였던 새벽을 서툴게 깨우며

기도 이전의 기도였던 시를 썼다 지우며

 

바다, 어쩌면 바다는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흔적이라는 흔적들을

수평선에 묻어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다는 수평선이 아니었다면

툭하면 터지는 그 너른 눈시울을 어디에 개켜둘 수 있었을까

머무를 곳 없는 그 깊은 눈길을 어디에 숨겨둘 수 있었을까

 

다가간 만큼 멀어지는 저기 저 수평선을 향해

누구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저 수평선을 향해

어쨌든 흘러가야 하는 나는

부서지는 게 두렵지 않은 파도가 되고 말았다

 

멈출 수 없고 멈춰지지 않는 것이 단지 걸음일까

어쩌면 수평선은

눈물이 넘치는 눈의 높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글에서 잠시라도 멈칫거린 흔적이 있다면

그곳이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나의 수평선일지도 모른다

 

-신축년 봄, 남녘 바다에서

 

 

 

제1부

 

오래된 숲

호숫가 수선(修繕)집

오렌지 껌

작업복

가을낙엽

가을장마

밤비, 죽음보다 깊고 어둡다

징조 몇 가지 1

징조 몇 가지 2

가을바람이 나른 이삿짐

물에서 캐낸 봄

물의 집

시차(時差)

한 사람을 위한 역

강변야행

남해병동

 

제2부

 

노보시비르스크제도의 아침

한밤의 실험실

아침을 위한 콜라쥬

쥐들이 산다

볕이 짖다

설국엔 흰 눈이 내리지 않는다

선 1

선 2

취해서(醉+楷書)

정류장

나무가 그늘을 옮겼다

마리오네트가 사는 102동

가로등은 심경을 밝히지 않는다

여명에 몰두하다

배후의 배후

금에서 발견한 틈

 

제3부

 

변형된 카탈

들길로 가자

안개바다

그림자를 떠나다

산딸기

약수터

철골공사

러닝머신 위를 달리다

다이어트

11월의 가로수를 열람하다

이차삼차

이불빨래

엉거주춤

어둠 속 도마뱀 무늬의 말(言)

싱크홀의 진화

쇼트 푸로그램

 

제4부

 

갈참나무 숲 사이 한 마리 새가 되고파

셀 수 없는 것을 세어보다

뿌리를 읽다

보낸 이

대나무 평상(平床)

낚시, 허공을 건지다

입춘

금붕어

몽유일기(夢遊日記) 6

죄와 밥

공항 가는 길

기회의 환심을 사고 싶다

진치령 지렁이

가보지 않은 나라

위탁의 조건

 

평설

마이오네트의 탈주선/ 강외석 문학평론가

 

 

시인소개

 

진주출생

2014년 경남문학 신인상 등단

 

현재

이형기시인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무크지 <청천문학>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