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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봄볕처럼 따뜻하고 해풍처럼 시원한 글

 

 

강현순(수필가·한국수필작가회 이사)

 

 

평소에 나순용 수필가와는 그리 썩 잘 지내는 사이도, 그렇다고 영 모르는 사이도 아니다. 가끔 문학행사장에서 만날 때면 참 반듯한 사람이다 싶었고 작품을 통해서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등단 후 처음으로 내는 수필집의 작품 해설을 내게 부탁했을 때 적이 놀랐다.

한 편 한 편 정독을 하여 50편 다 읽었다. 그간 긴가민가하던 반듯한 사람’ ‘가슴 따뜻한 사람임을 내 가슴에 확실하게 심어 주었다.

그의 작품을 다 읽고 난 느낌은, 그는 타고난 수필가라는 것이다. 글은, 특히 수필은 문장이 생명이다. 나순용 수필가의 수필은 물 흐르듯 막힘없이 술술 잘 읽혀진다. 잘 읽힌다는 것은 문장의 정확성, 명료성, 논리성, 그리고 통일성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긍정적이고 건전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부족함과 못남에 대해 자책하지 않고 긍정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다. 고통과 절망조차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며 진솔한 삶의 세계를 꾸밈없이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조용조용 이야기하는가 하면 소재의 탐색을 위해서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음을 느낄 수 있다. 보잘 것 없는 사물에도 그의 눈길과 숨결이 닿으면 빛이 나는 것이다.

수필은 작가가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다. 픽션인 시나 소설과는 달리 수필 한 편을 읽으면 문장력에서 작가의 인격과 사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을 통하여 본 나순용 수필가는 아름다운 감성과 지성을 겸비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은 내면을 살찌우게 하고 정신을 정화하는 힘이 있어서 좋다고 한다. 합창단에 소속해 있는 그는 공연장을 즐겨 찾는가 하면 감기몸살이 날 때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듣는 습관이 있을 정도다.

그림(수채화)도 좋아한다. 오랫동안 그림공부를 하였기에 이제는 프로급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예쁜 꽃그림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나순용 수필가의 수필집 내 삶의 꽃 피우기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총천연색이라고 할 수 있다. 싱싱한 감각이 살아 요동치고 있는 파란색도 들어 있고 여리고 섬세하고 따스한 분홍색도 있다. 눈물같이 순수하고 무구한 흰색도 보이는가 하면 교과서처럼 고지식한 초록색도 들어 있다. 억척스럽게 일하는 열정적인 빨간색도 보인다. 마치 향, , 영양, 색깔이 고루 들어있는 한 그릇의 비빔밥이라고나 할까.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씻은 후 다림질 판과 물뿌리개, 다리미를 제자리에 배치하고 주말에 세탁해 놓은 것들을 꺼내 펼쳐 놓는다. 손수건과 같은 작은 것부터 다리기 시작한다. 다림질 판에 와이셔츠를 놓고 어깨, , 등판, 소매를 다린다. 때로 바지 종류는 마음먹은 대로 주름이 잘 잡히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한다. 구김이 심한 곳은 물을 뿌려가며 몇 번씩 더 눌러준다. 크고 작은 구김살이 펴지고 모양이 반듯해지면 기분이 좋다. 거칠고 힘든 세상살이에 지친 내 삶을 하나하나 정리 하고 바로잡아 나가는 느낌이다.

다리미질에 몰입하다 보면 아무리 큰 고통과 절망의 순간에 부닥쳐도 이렇게 펼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긴다.

나에게 다리미질은 단순한 다리미질이 아니다. 나 자신을 곧추세우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작업이요, 의식이다. 한 가지씩 다려 옷걸이에 걸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옷이 환하게 웃는 것 같다. 나도 따라 웃는다.

- <다리미질> 부분

 

구겨져서 후줄근한 세탁물에다 물을 쫘악 뿌려가며 반듯하게 다리미질 하노라면 누구라도 기분이 산뜻해질 것이다.

나 수필가는 집안 살림 중에서 유독 다리미질하기를 좋아한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숯다리미로 다리미질하실 때 형제들과 양쪽에서 잡아주던 추억이 꿈결처럼 되살아난다. 잘 다려진 이불 호청이 피부에 가슬가슬하게 와 닿던 촉감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하고 있는 일이 순조롭지 못하거나 힘들 때면 다리미질을 하곤 한다. 작은 구김살까지 펴지고 세탁물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면 마치 자신의 구겨졌던 못난 마음도 펴지는 듯하여 속이 후련해져서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비록 크나큰 절망에 처하여도 다리미질 본연의 기능을 생각하면 극복해낼 수 있는 용기도 생기며 마음도 그지없이 평화로워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작가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어 흐뭇하다. 작품 전면에 흐르는 유려한 문장 솜씨와 독특한 비유법이 돋보이는 글이다.

 

수필 우리 집사람은 공주요는 단란한 가족상을 보여주는 따뜻한 글이다.

바다가 있는 진해의 새벽시장은 갓 잡은 생선이나 조개, 해초 등이 주를 이루는데 신선도가 그만이다.

군에서 휴가 나온 작은아들을 위하여 남편은 새벽시장에서 여러 반찬거리를 산다. 식구가 적다보니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생갈치 장수한테 보관 비법을 물어보고 있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생선 파는 아주머니께 물었다.

생갈치 오래 보관해서 먹을라고 하면 우째야 합니꺼?”

그 집에는 마누라도 없소? 갖다 주면 다 알아서 할 거요.”

우리 집사람은 잘 모릅니더. 좀 가르쳐 주이소.”

그런 것도 할 줄 모르는 마누라는 뭐하는 사람이요?”

고마 가르쳐 주면 안 됩니꺼?”

나는 이날 이때까지 손에 물 담그고 괘기(생선)판다고 이라는데,

그 집 마누라는. 아이구야, 무슨 팔자길래 서방이 장을 보러 다 오노.”

우리 집사람은 공주요,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요. 됐는기요.”

 

흔히들 삶이 무기력해지면 시장에 가보라는 말을 한다. 펄쩍 뛰는 생선 못지않게 상품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눈빛과 목소리에 생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생동감이 넘친다. 푸근하고 정겹기까지 하다.

바닷가에 사는 주부가, 그것도 주부 경력이 몇십 년이 된 아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평소에 아내를 공주처럼 예뻐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무의식중에 불쑥 나왔던 게다. 새벽시장에서 사온 물메기회, 산낙지, 생갈치 등으로 요리한 아침식사를 하면서 남편이 장보기 후일담을 펼쳐놓았던 것이다.

 

사다 주면 알아서 처리 할 건데 괜히 물어봐 가지고 웃음거리를 만드네요.”

아버지! 어머니도 매일 뼈 빠지게 일하러 다닌다고 말 했어야지요. 고생 엄청하고 있다고.”

어머니! 아버지 잘 좀 봐 주세요. 정상을 충분히 참작하여 무죄 선고해 주세요.”

 

셋이서 나누는 대화가 참으로 아름답다. 아들이 아버지한테, 그리고 어머니한테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콧등이 찡해온다. 그 착한 아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작은 이야기로 가슴을 흔들게 하는 힘, 그것이 수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지극히 단순한 일로 부부들이 대화가 단절되고 급기야는 별거니 졸혼이니 이혼을 하는 요즘 시대에 작가의 가정은 봄볕처럼 따뜻하다.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 이야기만 없다면 달달한 신혼부부인 줄 알겠다. ‘위기의 부부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글이다.

 

정말 놀라운 풍경은 도로에 자동차가 아닌 온통 오토바이의 물결이다. 숙소에서 내려다보니 아파트의 모든 에어컨은 우리나라 L전자회사 상표가 붙어있다. 마음이 뿌듯하고 우리의 기술력과 국력의 신장이 느껴졌다.

세계 7대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하롱베이를 비롯하여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발전을 꾀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엿보인다. 수많은 비포장도로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토목이나, 건설업체가 진출하여 상호 협력하면 양국의 경제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무지갯빛 상상을 해본다.

- <우리 이웃 베트남> 부분

 

집과 직장만 오가던 작가는 어느 날 친구 사이인 네 가족 여덟 명이 팀을 이루어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다.

통상적으로 관광 목적의 여행이라면 그곳의 명소를 둘러보거나 기념사진을 찍거나 쇼핑에만 관심을 두기 일쑤다. 그럼에도 공무원인 작가는 여행지에서조차 직업의식이 발동한다.

작가는 그 나라의 곳곳에서 우리나라의 상품을 보며 우리의 기술력과 국력이 급속도로 신장됨에 가슴 뿌듯해 한다. ‘베트남의 역사’ ‘베트남과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베트남에는 3천 개가 넘는 강이 있으며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라는 관광안내자의 말을 듣게 되면서부터이다. 급기야 수많은 비포장도로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건설업체가 진출하여 상호 협력하면 양국의 경제발전에 좋겠다는 희망도 가져보는 것이다. 마치 모범공무원 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진다.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한 상이용사들과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애처로워 눈물짓기도 한다.

수필 우리 이웃 베트남에는 작가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담뿍 들어 있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지 못해 애타는 마음도 담겨 있어 가슴에 잔물결이 인다.

 

부모의 정성이 가득한 깨끗한 무공해 채소를 내 자식들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흘이 멀다 하고 우체국으로 간다. 그 보람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택배비용 등 가격적인 면을 따져보면 각자 사먹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들 채소에는 좋은 토양, 좋은 공기, 좋은 물로 키워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아버지의 땀과 엄마의 염원이 함께 들어 있다. 이는 좋은 자양분이 되어 건강한 유전자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며느리들은 받은 채소로 나름대로 음식을 만들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올해같이 무더운 여름에 아버지가 애쓴 것을 잘 알고 있는 두 아들 내외는 고마운 마음에 가족 여행을 계획하였다

- <가족 여행> 부분

 

나 수필가는 오래전부터, 직장생활 핑계로 두 아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자주 못했던 걸 무척 가슴 아파한다. 그러다 실로 오랜만에 노랫말처럼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 퇴직한 남편이 텃밭에서 손수 가꾼 채소를 사흘이 멀다 하고 자식들에게 보냈더니 그 고마움에 착한 두 아들네가 가족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휴가철이다 보니 도로 위의 자동차들은 어김없이 거북이 걸음이다. 그럼에도 몇 시간 동안이나 차 안에서 사랑스런 손주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여행 기간 내내 흐뭇한 기분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자식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깨를 들썩이면서까지 눈물을 흘린다. 아쉬움의 눈물일까. 기쁨의 눈물일까. 어쨌든 이런 건강한 눈물은 많이 흘려도 좋을 듯싶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따뜻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직장으로, 결혼으로, 혹은 이혼으로 인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세상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곳곳에서 알 수 있듯 다복한 가정임을 눈치챌 수 있다. 좋아하는 가족 여행을 자주하여 그의 행복지수가 높았으면 좋겠다.

 

꽃은 그림 속에서도 피어난다. 틈틈이 익힌 수채화 그리기가 무척 재미있다. 배우기가 쉽고 무엇보다 마음가는대로 그릴 수 있어 좋다. 그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가상의 세계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눈앞에 가져올 수가 있다.

나는 꽃을 좋아하여 자주 그린다. 꽃을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을 사랑하고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향기를 맡아보고 꽃잎의 색깔과 질감을 보고 느껴야 한다. 그러노라면 자연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꽃은 화선지 위에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피어난다. 오묘한 자연의 모습과 빛깔을 내 붓질로 되살리는 일이다. 그림에 몰입해 있는 동안은 평화와 희열로 충만하다. 몸과 마음이 꽃처럼 아름다워진다. 그 경이로움에 동화되는 소박한 즐거움은 스스로를 위로해주기에 충분하다.

- <내 삶의 꽃 피우기> 부분

 

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바라보는 작가는 고달픈 인생길에서 잠시 쉬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삶의 모서리에 찔려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사정없이 불어대는 세찬 바람에 속절없이 휘청거리기만 했던 나날들이었다. 자신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왔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속상하였다.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그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눈바람 속에서 복수초, 매화, 동백꽃은 그토록 고운 꽃을 피워내면서도 결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꽃들을 보며, 외롭다 않고 묵묵히 새봄을 기다리고 있는 빈 들판을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이제는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씩씩하게 살아 가리라며 마음을 굳게 다잡는다.

그는 꽃을 좋아하여 틈만 나면 그린다. 그림만큼은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을, 마치 사람을 대하듯 한다. 좋아하는 대상이니만치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상대 또한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먼저, 그릴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까이 가서 향기도 맡아본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러다 잠시 후 화선지 위에 한 송이 고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것이다. 작가의 진중한 모습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피었다가 지고 또다시 피어나는 꽃처럼 이제 그도 자신만의 향기와 빛깔을 지닌 삶의 꽃을 피워내려 척박한 땅에 힘껏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작지만 가슴에 크게 와 닿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또 있다.

수필 쑥갓 꽃에서는, 밉지도 곱지도 않은 쑥갓 꽃이 어느 날 직장에서 퇴근하고 오니 식탁 위 유리잔에 꽂혀있다. 큰아들이, “엄마가 꽃을 좋아한다고 아버지가 꽂아놓으라고 하셨어요.” 한다. 옥상에서 키우는 쑥갓은 이제 꽃대가 올라와 못 먹기에 그냥 뽑아서 버리면 될 텐데.’ 하면서도 감동한다. 그는, “소소한 것에 대해 마음이 간다는 것,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다. 귀한 것은 화려하거나 비싸거나 큰 것만이 아니다. 더구나 내 아이들에게 곱고 아름다운 마음을 보여준 것이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고 토로한다.

아내를 위해 꽃을 준비한 남편도,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사랑의 가교 역할을 한 아들도,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행복해 하는 작가도 모두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수필 인식의 전환에서는 남편을 배려하는 마음이 들어 있어 읽는 내내 흐뭇하였다.

평소에 나 수필가는 동물, 특히 개를 아주 싫어한다. 어릴 때 개한테 쫓기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석 달 간의 중앙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다. 두 주일이 지날 즈음 남편이 전화로, ‘너무 심심해서 강아지 한 마리를 집에 데려왔다는 것이다. 교육이 끝나 집에 오면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겠다며.

처음엔 소스라쳐 놀란다. 누구보다도 남편은 자신이 개를 무서워하는 걸 아는데 싶어 속상하고 화가 난다. 곰곰 생각해보니 자식들도 다 떠난 지금 석 달 동안 혼자 외롭겠다는 생각에 말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다 이제는 강아지한테 정이 듬뿍 들어 주인에게 아직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니 어쩌나! 작가의 선한 심성을 느껴볼 수 있는 글이다.

수필 가뭄과 산토끼도 재미있다. 절로 미소가 배어 나오는 글이다.

어느 날 가뭄이 심하자 남편은 고향 형님네가 걱정되어 갔다가 산토끼 한 마리를 가져온다. 무더위에 연못으로 물을 마시러 왔다가 그물에 걸린 것이다. 토끼는 산에서 깨끗한 풀과 약초를 먹고 살기에 보약이 된다며 남편은 자신이 어릴 적에 잡아먹었던 이야기를 한다. 작가는 잠시 약골인 우리 아이들에게 고아 먹일까생각하다가 이내 머리를 가로 젓는다. 그리곤 가족회의 끝에 밤중에 차를 몰아 장복산 기슭에 토끼를 놓아준다. 그물에서 빠져나온 토끼가 몇 발자국 뛰어가다 뒤를 돌아보고는 쏜살같이 달아난다. 가족들은 고맙다는 인사로 생각하고 가슴 뿌듯해 한다. 토끼를 자연의 품으로 보내자는 아이들의 생각이 참으로 기특하고 예쁘다. 박수를 보내고 싶다. “100km를 에어컨 켜고 음악까지 들려주며 데려온 귀한 손님이었는데.”라는 남편의 너스레가 유난히 멋있게 느껴진다.

나순용 수필가의 수필집 내 삶의 꽃 피우기는 대체로 자연 관찰, 생활 경험, 사회 현상에 대한 느낌 등을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와 빛깔로 형상화하여 예쁘게 꾸며 놓았다.

수필은 원고지 열 장 정도의 짧은 글이다 보니 크고 많은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 작지만 봄볕처럼 따뜻하거나 해풍처럼 시원한 이야기여야 한다. 연못에 작은 돌을 던졌을 때 보여주는 작은 물무늬 같은 것이 아닐까.

흔히들 수필을 독백의 문학이라고 하지만, 수필집 내 삶의 꽃 피우기는 자신만의 독백으로 끝난 게 아니다. 그윽히 울려 퍼지는 산사의 풍경 소리처럼 독자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힘이 있다.

나순용 수필가의 첫 수필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꾸준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