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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어둠을 풍류하는 설엽미학

 

 

김복근 시인

 

 

1. 머리글

 

설엽 서우승은 카메라 렌즈로 시조를 읊조리는 가객이다. 앵글에 포착된 질료를 풍류미학으로 녹여내는 응시와 성찰의 시조인이다. 자신이 처한 삶의 아픔과 어둠을 문학적으로 기록하여 현실에 숨어 있는 시조 세계를 명징하게 포착한다. 그의 시안과 풍모가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은 고난과 질곡을 화자 특유의 감수성과 민감한 직관력, 타고난 문학적 재능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개발 도상의 사회적 혼란과 도약적인 발전상을 카메라 앵글로 포착하여 가치 있는 자료와 자신의 삶과 사유세계를 기록함으로써 그가 형상화해낸 시조의 가치는 시조의 현대화로 귀결된다. 그의 시조 스승 박재두는 시인이 가진 카메라는 어떤 한정된 것에만 들이대는 카메라가 아니라 가까이는 자신의 심혼에서부터 생활이나 서정, 산수풍광에다 그가 처한 사회상까지 거의 모든 것에 셔터를 눌렀고, 누를 때마다 그 렌즈는 어슴푸레 실안개 같은 필터를 겹치기도 하고, 또 멀리 역사 속에서 망원하여 현실을 현상해 내기도 했으며, 때로는 육안으로 미칠 수 없는 미세한 것까지 현미경처럼 찍어내는 다양한 카메라였다.”고 한다.

그는 현실과 사물에 접근할 때, 머리보다 가슴을 앞세우는 시조인으로 생활감정의 교감이 승화된 풍류미학으로 승화된다. 그의 카메라는 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공감적 감수성이 배어들어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그가 빠진 고독의 늪에서 무엇인가를 형상화하기 위한 간절한 만남의 욕구가 카메라 탐방을 통해 독자들과 교감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의 삶과 사유에 의한 시조세계를 채수영은 연기설緣起說로 확인하면서, 현실을 딛고 찾아가는 길이 있고, 따스한 인간미로부터 대상에 대한 헌신을 전제로 하는 태도로부터 가능해지는 것으로 보고, 김열규는 아픔을 삭임질하는 일로 보면서 유년의 아픔, 식솔들의 아픔, 사회와 역사의 아픔의 독에 얹혀 괴어서 익었다.”고 했다. 박영주는 우리 시대의 인간 풍경을 다채롭게 연출하는 시조인으로 보고, 자신의 시선에 포착된 풍경들을 응시와 투시의 미학으로 조리하여 변증법적 조화와 통일에서 특유의 개성이 솟아나는 것으로 봤다. 이지엽은 다양한 소재의 변주를 통하여 연출되는 딴전 피우기로 재미성을 얻고, 발랄한 생의 윤기를 얻어내고 있다.”고 하였으며, 이상옥은 존재와 허무의 슬픔에 얽매이지 않고, 매사 초탈한 듯 한 달관의 품격으로 이 풍진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조선 시대의 고지식한 딸깍발이가 연상된다.”고 했다.

설엽 서우승은 1946817일 통영시 산양읍 남평리 354번지(야솟골)에서 아버지 서종영과 어머니 김태연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한 공무원의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과 질곡의 삶을 살면서 어둡고 힘든 문청 시절 시조문학, 중앙일보, 여성동아, 새농민등에 시와 시조를 발표하면서 주경야독의 습작기를 거쳐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카메라 탐방이 당선하여 문단에 나오게 된다. 1982년 연작 시조집 카메라 탐방, 1991년 시집 당신 하나로 하여, 2001년 시조선집 카메라 탐방, 2006년 시조집 생각도 단풍들면을 펴낸다. 대쪽같이 올곧은 삶을 살아온 그는 1991년 경상남도 문화상, 1996년 이호우 시조문학상, 2003년 청마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200833062세의 일기로 절명하듯 생애를 마감한다.

다분히 전설적인 삶을 살아온 설엽 서우승. 아픔과 어둠으로 점철된 삶을 풍류미학으로 당당하게 승화시킨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2. 앵글에 포착된 삶의 진실

 

사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수용된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의해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간직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삶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설엽은 선지자적 안목을 가졌다. 사실 카메라를 시조에 도입한 건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피사체가 되는 사물에다 화자 특유의 안목으로 앵글을 설정하고,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 하여 독자의 사유체계와 교감을 꾀하고 있다.

 

나비는 온실 밖에 은싸라길 흩고 있고

꽃은 향을 뿜어 한 생각에 하늘댄다

맞대고 갈라 선 투명透明, 주황朱黃 타는 저 유리벽.

—〈카메라 탐방探訪필름·7전문

 

미친 파도로 하여 지금 나온 어항 고기

유리알에 꿰비치는 세상 하나 도마 같아

이끼로 빛을 가리고 다시 앓는 바다의 꿈.

—〈카메라 탐방探訪필름·13전문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한 설엽의 카메라 탐방이다. 그는 문자문화 시대에 이미 영상문화 시대를 예견한 듯하다. 시조집 카메라 탐방에는 106편의 단시조가 수록되어 있다. 이병기의 연시조론이 주류로 자리하던 시대에 단시조로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단시조로 시조집을 펴냈으니, 시조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미지로 소통하는 영상문화는 짧고 재미있고 깊이 있는 것을 추구한다. 쿨한 재미를 추구하는 영상문화에 사람들은 지성과 이성은 장식으로 올려놓고, 세상은 유치한 놀이공원으로 변해간다. 이러한 현실을 50여 년 전에 이미 예견하고 있었으니 그의 선지자적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

설엽은 당대인의 삶과 사유체계를 짧고 재미있고 깊이 있게 노래함으로써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짧고 재미있고 깊이 있는 것을 추구하는 영상문화와 짧고 재미있고 깊이 있는 것의 총화로 볼 수 있는 시조의 접점을 마련하여 쇠락해가는 시조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위상을 구축한다. 언어로 진술되는 삶의 풍경을 카메라로 찍어내는 참신한 기법을 선보여 시조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카메라 탐방을 통하여 새로운 시조세계로의 확장을 꾀함으로써 주요한 시적 성과를 거두게 된다.

 

먼 남녘 답사하고 돌아온 나비는

꽃술처럼 자불면서 향기도 게워내면서

한사코 시치미 떼네, 눈먼 손짓 가로젓네.

—〈카메라 탐방探訪필름·3전문

그래본거지 그냥 한 번, 이렇게 태어나서

세상을 휘파람 불다 재미로 떠나는 너를

입덧 난 벚나무의 꿈이 돌려세워 놓구나

—〈카메라 탐방探訪필름·49전문

 

산 사람 비석 앞에 죽은 사람 엎드렸네

유명을 바꿔놓은 비문을 굽어 보다

하늘도 월식을 두른다, 먼 데 초식동물의 웃음.

—〈카메라 탐방探訪필름·97전문

 

설엽의 시조는 재미가 있다. 재미는 자양분이 많고 맛이 좋은 음식을 가리키는 자미滋味에서 나온 말이다, 이야기나 일이 맛깔스럽고 즐거운 기분이 날 때, 그것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한자어 자미滋味재미로 변하면서 뜻까지 바뀐 것이다. 그는 해학과 풍자를 적절하게 비빔질하면서 자신의 시조를 통해 풍류를 즐기고 있다. “먼 남녘 답사하고 돌아온 나비는/ 꽃술처럼 자불면서 향기도 게워내면서/ 한사코 시치미 떼네, 눈먼 손짓 가로젓네.”(필름3) 여기서 나비는 화자 스스로를 암시한다. 험한 세상을 떠돌다가 피안의 세계인 고향으로 돌아와 마음 놓고 즐기기도 하고, 자기 냄새를 피우면서 짐짓 시치미를 떼고 있다. 필름 49에서는 그래본거지 그냥 한 번, 이렇게 태어나서/ 세상을 휘파람 불다 재미로 떠나는 너를/ 입덧 난 벚나무의 꿈이 돌려세워 놓구나라고 눙치듯 너스레를 떨어본다. 세상에 태어나는 일을 그냥 한번 그래 본 거라면서 휘파람이나 불다가 떠나는 너를 입덧 난 꿈이 돌려세운다며 해학한다. 필름·3필름·49가 해학이라면 필름·97은 풍자다. 풍자는 비판의 날을 품고 있는 날카로운 웃음이다. “산 사람 비석 앞에 죽은 사람 엎드렸네/ 유명을 바꿔놓은 비문을 굽어 보다/ 하늘도 월식을 두른다, 먼 데 초식동물의 웃음.” 산 사람 앞에 죽은 사람이 엎드렸다고 산 사람의 오만함을 나무라면서 하늘도 일식으로 외면하고, 초식 동물도 웃고 있다고 한다. 메시지는 숨겨놓고, 상황만 묘사하면서 화자의 강한 의도를 발산하고 있다. 해학과 풍자는 사람을 웃게 하는 의미에서는 유사하지만 해학은 상대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익살스러운 웃음으로 따뜻한 감정을 갖게 하여 웃음으로써 화해적 분위기로 전환하고, 풍자는 남의 결점을 무엇에 빗대어 재치 있게 경계하거나 비판하면서 쓴웃음을 웃게 한다. 해학이 화해라면 풍자는 비판이라는 사실을 시조로 증거하고 있다.

 

정신대가 남긴 눈빛 하나하나 꽃피운

찔레덩쿨 감발하고 몰래 돌아온 성곽

남해안 일대를 돌려 방파제로 서나니.

—〈카메라 탐방探訪필름·51전문

 

이웃집 젊은이의 관상 보러 갔다가

난생처음 들여다본 거울을 훔쳐와서

대오한 소크라테스는 자화상만 그리나니

—〈카메라 탐방探訪필름·41전문

 

어디를 가나 비어 있더라, 어물전은

그럴 듯 아구 맞춘 직무대리 뿐이더라

도처에 먹물 튀기며 꼴뚜기는 떠나가네.

—〈카메라 탐방探訪필름·95전문

 

카메라는 피사체를 향해 생기는 각도와 앵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런 원리를 알고 있는 화자의 시선은 해학과 풍자를 넘어 역사적 사실과 현실비판까지 수용한다. 경제개발에 여념이 없는 70년대 초반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신대 문제까지 앵글을 들이댄다.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에는 한국 여성 수십만 명이 끌려가 일본 군인의 성적 노예 생활을 하는 위안부가 된다. 그 안타까움을 정신대가 남긴 눈빛 하나하나 꽃피운/ 찔레덩쿨 감발하고 몰래 돌아온 성곽/ 남해안 일대를 돌려 방파제로 서나니.”(필름·41)라고 읊조리면서 안타까워한다. “수양의 왕관으로 출렁이는 저 벼슬을”(필름·22), “만적이가 떠나면서 벗어둔 삼베적삼”(필름·25), “산대놀이도 안 먹혀 홍경래는 일어선다”(필름·27), “문익점의 붓 속에서 꿈틀대는 잠이다”(필름·28), “누워서 논개 가슴은 창을 꽂고 버티더라”(필름 34)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필름·95에서는 주인의식 없는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처럼 못난 사람일수록 같이 있는 동료를 망신시킨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어물전의 주인은 간 곳없고, 완장 찬 직무대리가 우쭐대는 모습을 보고, 어물전을 망신시키는 꼴뚜기마저 망신스러워 떠나간다며 세상의 삶을 야유한다.

 

 

3. 아픔과 어둠에 대한 변주

 

설엽이 처한 삶의 현실은 아픔과 어둠으로 점철되지만, 그의 사유체계는 긍정적이다. 단시조를 즐겨 읊조리다 후기에 접어들수록 다양하게 확대되는 그의 언술은 존재의 아픔과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비탄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 이겨야 한다는 강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피고 말고 그럼,

밟히는 덴 이력이 난 걸

손쉽게 버려진 자리 뿌리로 버티면서

막다른

이승의 골목,

아득바득 돌아섰는 걸.

 

죄 털리고 주저앉아도

꿇지 않은 이 남루를

미소로 도배하고는 오냐, 부딪쳐보자 하늘아

눈 뜨면

홀로인 새벽

유성流星 한 줌 움켜쥘 뿐.

 

쉴 새 없이 태어나고

죽어나는 밤마다

볼장 다 본 무감無感의 살 속 간직한 울음으로

바람의

단잠에 깔려

또 한 겹 불면不眠을 피운다.

—〈이 땅의 민들레전문

 

이 땅의 민들레는 민초의 상징이다. 엄동설한에는 보이지 않다가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난다. 강인한 생명력은 짓밟혀 힘들어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백성과 같다고 하여 민초로 비유되기도 하는 것이다. 민들레의 생태를 빌려 민초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화자는 밟히는 덴 이력이났다. ‘털리고 주저앉아도/ 꿇지 않은 이 남루유성을 움켜쥐고, 웃음 띤 얼굴로 하늘을 바라본다. 아픔과 어둠을 보며 밤마다/ 볼장 다본 무감의 살 속 간직한 울음또 한 겹 불면을 피우면서 세상과 화해를 시도한다. 민들레의 삶과 민초의 삶이 오브랩되어 고난과 억압을 극복하는 삶의 의지는 더욱 가열하게 형상화된다.

 

노래다운 노래가 없구나.

이 풍진 세상에

올빼미와 박쥐를 위해 폐광을 그냥 두듯

살얼음

딛고 가는 이에게

징검돌 놓는 노래가.

 

누가 삿대질하랴

단지 호구糊口를 잇기 위해

엉뚱한 데로 발길 돌리는

어깨 처진 소신所信

그나마 막차도 놓치고

발 동동 구르는구나.

 

도처에 도화선 깔고

끼리끼리 야합인 것을

잠꼬대로 이어지는 당대當代의 한숨들이

발 뻗고

누울 땅 몇 평도

비워 주지 않는 세상에.

—〈이 풍진 세상에전문

 

노래는 위안이다. 인간은 노래를 통해 감정을 순화하거나 정화한다. 우울하거나 괴로울 때, 노래를 하고 나면 맺혔던 감정도 풀어지고, 안정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화자는 이 풍진 세상노래다운 노래가 없다고 자탄하며 풍진 세상’, ‘올빼미와 박쥐를 위해 폐광을 그냥 두듯/ 살얼음/ 딛고 가는 이에게/ 징검돌 놓는 노래가없음을 안타까워한다. 이 시조에는 어느 시기에도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왕조시대가 몰락하면서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고, 사상에 의한 동족살육의 잔혹한 전쟁, 빈곤과 혼란이 난무하는 격랑의 시대를 살면서 경제적 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이루어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야기되는 갖가지 사회문제와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소중한 가치를 상실하게 되고, 더 큰 비탄을 체감하게 된다. ‘호구糊口를 잇기 위해’, ‘소신을 버리기도 하고, ‘그나마 막차도놓쳤다고, ‘을 구르기도 한다. 언어에는 주술력呪術力이 있어, 노래를 하거나 말을 하게 되면 의도하는 소망을 이루기도 한다. 노래가 가진 생명력과 주술력으로 우주만물이 생성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화자는 노래다운 노래를 염원하면서 노래다운 노래가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4. 승화된 풍류미학

 

풍류는 말 그대로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을 말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풍류는 놀이에 예술적인 요소를 더해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강조된다. 설엽의 시조미학은 앵글에 포착된 삶의 진실을 의도적으로 표출하고, 아픔과 어둠에 대한 다양한 변주는 산업화에 의한 구조적 모순과 삶의 아픔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응전을 위한 도전이 아니라 폭넓게 수용하는 풍류미학으로 승화하고 있다.

 

의족義足도 남루도 그대로인 나를 받아 섰습니다

허기진 새떼를 쫓다 허기지는 이 하루도

벼이삭 굽실거리는 날의 임금만 한 꿈으로.

 

쫓아볼 새떼마저도 거두어간 빈 들녘

온 가을을 지킨 품삯, 돌팔매로 갚습니다.

속아온 하늘 아래서 허허허허 허허허.

—〈허수아비의 노래전문

허수아비는 아비에서 비롯되었는데, 접두사 은 있지 않은 것을 뜻하며, ‘아비는 아버지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따라서 허수아비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거짓 사람을 이르는 말로써 곡식의 낟알을 쪼아 먹는 새나 곤충들을 쫓기 위해 논밭에 세워둔 사람 모양의 인형을 말한다.

설엽의 허수아비의 노래는 화자의 초상과 다름없다. ‘의족도 남루도 그대로인허기진 새떼를 쫓다 허기지는 이 하루를 보내면서 화자는 해는 지고 쫓아볼 새떼마저날아가고, 제대로 된 품삯도 받지 못하며 속아온 삶을 두고, 허허허 웃음을 웃고 있다. 종장 마지막 구에 일곱 마디의 웃음 허허허허 허허허를 제시한 것은 설엽 특유의 여유로움과 풍류미학으로 볼 수 있다.

 

미래사

가는 길에

내생만 한

꽃을 만나

 

스치는

눈인사에

절이 한 채

생겨나서

 

심부름

까마득 잊고

소풍 속에

노닌다.

—〈심부름전문

 

설엽 풍류의 진경은 단형시조 심부름에서 구체화된다. 삶에 대한 달관과 생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기경결해起景結解의 잘 짜인 시조로 나타난다. 이 시조의 특장은 단수 안에 엄청나게 큰 정신세계를 함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장에서 미래사/ 가는 길에/ 내생만 한/ 꽃을만나게 된다. 내생이란 죽은 뒤의 생애를 말함이니, ‘내생만 한 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무한의 크기다. 중장에서는 거대한 꽃을 만난 후 인사도 스치는 눈인사를 하게 되는데, 눈인사에/ 절이 한 채/ 생겨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종장에서는 심부름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소풍 속에/ 노닌다.’ 자연에 귀의함으로써 맺힌 삶을 풀게 되는 구조적 형식미를 보여준다. 아픔과 어둠의 생애를 살아온 화자는 어떤 일에 마음이 쏠려 매달리기보다 달관의 경지에서 내생까지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하는 특유의 앵글을 설정하고, 이를 형상화함으로써 삶에 대한 긍정과 관조의 시조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절창이다.

눈은 자꾸 내리고/ 차가 끓는다// 그해 그 봄이/ 두고 간 눈빛// 삭정이에 턱이 걸린/ 낮달의 눈빛// 쑥물 든 유년은/ 잠기며 뜨며// 그런 날에 누워 삭인/ 허기로 온다// 어디서 오는지/ 또 가는지// 곁에 앉은 아내도/ 그림이 되어// 차가 그만 잦았다/ 눈도 그치니

—〈설다雪茶전문

 

시의 첫 구는 신이 내린다지만, 과연 절묘하다. ‘눈은 자꾸 내리고/ 차가 끓는다’. 눈에 그려지듯 상황묘사가 선명하다. 납설臘雪은 좋아하고, 춘설春雪은 싫어한다지만, ‘그해 그 봄이/ 두고 간 눈빛에 되새겨지는 낮달의 눈빛은 따뜻하다. 화자의 마음은 신산하지만, 지나간 삶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회상한다. 그 사이 아내의 서러움은 그림처럼 말이 없고, 끓던 차도 잦아들고, 눈도 그치게 된다. 스냅 사진 같은 이미지가 가슴에 들어와 앉는다. ‘낮달의 눈빛을 노래하면서 그 풍광을 절묘하게 묘사하며, 설다雪茶를 그려내는 화자의 눈사랑은 각별하다. ‘풍류예술적으로 노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화자는 무심無心의 경지를 유유자적 넘나들며 한 시대를 풍미한 것이다.

 

 

5. 마무리

 

설엽은 한 시대의 풍운아로 남다른 개성을 지닌 시조인이다. 이 풍진 세상의 가객으로서 민초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꾼으로서 풍류남아의 당당한 면모를 보여준다. 카메라로 찍어내듯 우리네 삶을 포착하여 형상화하는 기법은 신선한 충격이며, 시조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응시와 성찰의 시조인 서우승은 개발 도상의 사회적 혼란과 도약적인 발전상을 카메라 앵글로 포착하여 가치 있는 자료와 자신의 삶과 사유세계를 기록함으로써 그가 형상화해낸 시조는 시조의 현대화로 귀결된다.

 

서민의 가난을 적으로 대치對峙해 싸우는 한편, 스스로의 가난을 만지면서 살라는 어쩌면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당신의 분부가 내 예업穢業의 지침指針이 되고 있으나, 또한 끝없이 풀리지 않는 숙제宿題인 것만은 감출 수 없습니다. 훗날 내 영혼이 소환召喚 당할 때, 부끄럽지 않은 때깔과 무게의 나를 바치기 위해 당신의 알몸이 확연確然할 때까지 겹겹 막아서는 운무雲霧도 헤쳐 나갈 것입니다.

—〈카메라 탐방探訪, 뒷말 부분

 

민초의 가난과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스스로의 가난은 어루만지며 사는 것을 예업으로 생각하면서 풀리지 않는 숙제지만,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겠다는 가열한 의지를 들어준다. 그는 30대 중반에 펴낸 첫 시조집에서 밝힌 자신의 백서를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다. 서민의 삶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앵글을 들이대면서 화자 자신의 삶에 대한 사유체계는 긍정적이다. 단시조를 즐겨 읊조리다 점진적으로 언술이 확대되는 그의 시조는 존재의 아픔을 노래하면서도 비탄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 이겨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해학과 풍자는 사람을 웃게 하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해학은 상대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익살스러운 웃음으로 따뜻한 감정을 갖게 하여 웃음으로써 화해적 분위기로 전환하게 한다. 해학이 화해라면 풍자는 비판이라는 사실을 시조로 증거한다.

노래는 위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설엽은 노래를 통해 감정을 순화하거나 정화한다. 경제적 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갖가지 사회문제와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소중한 가치를 상실하게 되고, 더 큰 비탄을 체감한다. 격랑의 시기를 살아온 설엽의 시조미학은 앵글에 포착된 삶의 진실을 표출하고, 아픔과 어둠에 대한 다양한 변주는 산업화에 의한 구조적 모순과 삶의 아픔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현실에 응전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수용하는 풍류미학으로 승화하고 있다. 그의 절창 시조 심부름을 보면 지금의 나이로는 요절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미 작고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내생을 노래하고 있으나, 물소리에를 발표하면서 더도 말고 한 여든 해쯤 살았으면 좋겠다는 삶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픔과 어둠을 풍류미학으로 승화시킨 설엽 서우승. 그의 당당한 기개와 의로운 풍모가 새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