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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고운 선생을 오늘에 입체적으로 되살린 책

 

농정農庭 최순용崔淳鏞 시인은 호에 들어 있는 ‘농農’과 이름에 들어 있는 ‘순淳’에서 예견되는 것처럼, 참으로 순박한 분이다. 나이가 나보다 서너 살 위인 농정을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4월이었다. 경남 함양군 상림공원 인근에 새로 들어선 ‘최치원 기념관’에 고운 선생 영정 봉정식을 하던 행사장에서였다. 나는 고유문을 지은 경남대학교 고운학연구소 소장의 자격으로, 농정은 고운의 32세 후손의 자격으로 참석했다.

행사를 마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인사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농정은 원래 말수가 적고 그나마 아끼는 편이었다. 경주 최씨 시조 할아버지인 고운과 관련된 책을 쓴다는 사실을 어렵게 털어놓았다. 망설이면서 이 말을 꺼내던 그때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름도 이름이려니와 호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경남의 르네상스, 최치원이 열다》는 고운에 대한 ‘종합 안내서’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중국 등지에서 고운을 연구한 결과물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100여 년 전에 이미 국제화를 실현한 분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너무나 분열되어 있어 융합 내지 통합을 내세웠던 고운 선생의 정신이 그리워서일까. 그러나 대부분의 논저들이 고운의 어느 한 부분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것이어서, 일반인들이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고운의 학문과 사상을 평이하게 기술하면서도 전문가적인 식견도 가미한 그런 책이 나왔으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농정의 초고를 보니, 그것은 나의 이런 생각을 충족하기에 딱 알맞은 것이었다. 추천사를 부탁한다고 했을 때 약간 망설인 것은 사실이었다. 여러 모로 부족한 내가 그런 글을 쓰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의 진심을 알고 나는 기꺼이 추천사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이 갖는 장점은 참으로 많다. 영정을 비롯하여, 각종 각석물, 유적지, 기념관 등 고운 관련 사진을 풍부하게 넣은 점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고운의 주유도周遊圖, 유적의 주요 소재지, 연표 등이 이렇게 일목요연하면서도 정확하게 표현된 자료도 나는 일찍 보지 못했다.

주제에 따라 이 책을 일곱 장으로 나눈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같은 주제를 한 군데 모아놓으면 그 주제를 더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에는 같은 내용이 여기저기 섞여 나오기도 한다. 그것은 이 책이 이렇게 주제에 따라 편집된 데서 기인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많은 내용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것이어서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갖는 미덕의 하나다. 그 많은 자료들을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원고를 읽으며 감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대성해 놓은 것만은 아니다. 곳곳에 저자의 번득이는 혜안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多率寺도 고운의 발길이 머문 곳인데, 이 사실은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 언급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 점, 쌍계사본의 두 번째 영정이 조성된 경위를 처음으로 소상히 밝힌 점, 또 이 영정의 정밀 감식과 관련된 일을 자세히 언급한 점 등등은 직접 발로 뛰거나 집안 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은 바가 없었다면 적기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세상 사람들이 고운을 곡해한 부분에 대한 농정의 비판도 눈길을 끈다. 이 책 곳곳에 있는 이런 내용은 읽는 이에게 청량감을 준다.

농정은 또 고운의 융합·통합 정신을 강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국제간에도 이런 정신이 요구되는 오늘날임을 여러 차례 짚어 주고 있다. 지극히 타당한 언급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러다 구한말 우리가 당했던 것과 같은 비극을 다시 당하는 것 아닌가 하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고운의 화합·융합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이 책은 이런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책 전체를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정조情操는, 고운이 ‘진정한 경남인’이고, 고운이 ‘경남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농정이 이 책을 쓰고자 했던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고운이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비문을 지어 세우고, 함양군 태수로 선정을 베풀었으며, 생의 마지막 안식처로 합천 가야산을 택한 것은 그래서 농정에게 매우 의미 있는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독자들이 이 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고운이 한국 지성사의 가장 우두머리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경남의 르네상스는 곧 한국의 르네상스일 것이다.

이 책을 준비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농정은 말한다. 이 책은 그만큼 그의 혼이 담긴 책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오늘에 되살아난 고운을 만나게 된다. 나는 고운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오늘에 되살린 농정의 그 능력과 정성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러기에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께 이 책자를 한 번 읽어 보시라고 감히 권하는 것이다.

농정의 앞길에 문운이 가득하길 빈다.

2019년 6월  

경남대학교 고운학연구소장·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김정대

 

 

 

│머리말│

 

최치원 경남 르네상스의 문을 열다

 

 

나는 공직에서 퇴직하면서부터 근 10여 년을 고운 최치원 선생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으며 그의 이름 석 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우연히 찾았던, 1,150여 년 전 경남 하동 쌍계사에 세워진 〈진감선사대공령탑비명〉 속의 최치원崔致遠이란 이름 석 자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를 알기 위해 《고운 최치원 문집》을 비롯하여 《계원필경집》, 《사산비명》, 기타 그가 남긴 숱한 저술서와 시편들을 모조리 찾아서 몇 번씩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면서 자료를 찾아 어떤 때는 밤을 지새우면서 탐독하기도 하였고, 선생이 관직 생활을 하였던 중국과 국내 각지의 유적을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고운 선생에게서 두 가지의 위대한 가르침을 발견했다. 하나는 ‘인백기천人百己千’이요, 또 하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다. 그 뜻을 헤아려 보면 첫 번째의 것은 ‘무한한 노력’을 의미하고, 두 번째의 것은 ‘뭇 생명이 서로 만나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주 만물이 공생共生 공존共存 상호작용하는 삶에 그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인데, 최치원 선생의 심오한 사상인 ‘융합 정신’이 그 바탕에 있음을 발견했다. 

고운 선생은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중국 유학을 떠나서 국자감에서 공부한 지 6년 만에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20세에 중국 관리에 제수되어 〈격황소서〉를 써서 중국인을 감동시켰으며 관직에 재직하는 동안 1만여 편의 글을 저술한 국제적 관료이자 작가였다. 고운 선생은 29세에 조국 신라에 돌아와 중국에서 익힌 선진 문화를 조국을 위해 펼쳐 보려고 몸부림쳤던, 행동하는 진보 성향의 행정가이자 정치 지도자였다. 

최치원의 경남과 오랜 인연의 시작은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령탑비〉를 2년에 걸쳐서 비문을 짓고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함양군 태수(군수)로 3여 년 동안을 재직하면서 선정을 베풀었으며, 공직에 은퇴하고서는 합천 가야산 홍류동에 전 가족을 이주시켜 경남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합천 해인사를 비롯하여 창원, 양산, 사천, 하동, 함양, 산청, 거창, 남해 등 경남 일대를 두루 순례하며 지역 백성을 교화시키고 후학들과 강학하면서 많은 저술과 시를 남기고 풍류도風流道를 실천하다 경남에서 여생을 마친 ‘자랑스러운 경남인慶南人’이었다.

최치원은 ‘경남 선비 문화’를 펼쳤으며 ‘경남 문학’의 원류였고 ‘경남 불교문화’를 꽃피게 했으며 그가 머물렀던 경남의 ‘최치원 유적지’는 천년 문예 성지가 되었다. 고운 선생이 남긴 저서, 시, 글씨, 전설 등이 이곳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자랑거리이면서 귀중한 경상남도의 문화 유산이기도 하다. 

2018년 5월 가장 최근에는 고운 선생이 관내 하동 쌍계사 불일폭포를 감상하면서 시를 짓고 노닐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바위에 〈완폭대〉라는 일천 백여 년 전에 쓴 그의 친필 각석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고운 선생에 대한 경상남도 차원의 인식과 위상은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잊히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경상남도 산하 18개 시군 중에 최치원의 유적과 행적, 전설이 뚜렷이 남아 있는 시군이 절반을 넘고 있으나 이것을 도 단위 문화로 승화시켜내지 못하였다. 그 예로 경남을 대표하는 《경상남도지慶尙南道誌》에서조차 경남에 남긴 역사적 사실이나 시 작품 한 줄 소개되지 않고 있으며 도의 ‘문화 예술’ 시책 업무에도 소외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고운 선생은 ‘경남 문화’의 뿌리를 내리게 한 역사 인물로서 제일 먼저 언급되어야 할 분이다. 그는 전설 속의 지나간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경남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인물이다. 지역 문화란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주는 맥脈이며 미래를 여는 교두보이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시군에 각각으로 흩어져 있는 최치원의 얼이 하나의 도 단위道單位로 묶인 기록이 있어야 되겠다는 신념에서 용기를 내어 《경남의 르네상스, 최치원이 열다》란 제목의 책을 내게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쓰다 보니 어언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용들은 주로 경남이란 행정 단위 구역 내에서 일어났던 사실들을 유적 규모, 시대 순으로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이 고운 최치원 선생과 같은 대현의 글을 다루게 됨은 두렵기도 하고 망설여지는 일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운 선생의 32대 후손으로 시조께 한 번 응석을 부리면서 용기를 내어본 것이다.

필자의 바람은 경남과 최치원의 인연을 알리고 그가 남긴 발자취를 재조명함으로써 지역민들의 문화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이는 조그마한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많은 고마운 얼굴들이 눈에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이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고 조언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추천사까지 써주신 경남대학교 고운학연구소 김정대 소장님(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께 감사한다. 이 책이 경남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산만한 원고를 아담한 책자로 탄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도서출판 경남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끝으로, 10년을 옆에서 지켜봐 준 아내와 미국 뉴저지주New Jersey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랑하는 손녀 예원睿瑗과 손자 준準에게 이 책을 꼭 선물하고 싶다.

2019년 6월   

마산 구암산방에서 농정農庭 최순용

 

 

│차례│

 

 

사진으로 보는 최치원 1

최치원 연보 12

추천사•김정대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16

머리말 18

 

 

part 1 경남과 최치원

 

최치원崔致遠은 경남인이다 28

경남과 첫 인연을 맺다 30

경남과 두 번째로 만나다 32

영원한 경남인이 되다 35

 

‘경남 르네상스’ 뿌리 찾기와 최치원  

최치원을 기억하자 40

‘경남 선비 문화’를 열다 42 

‘경남 문학’의 원류이다 45

‘경남 불교 문화’를 꽃피우다 47

우리나라 최초의 조림가造林家 최치원 52

다성茶聖 최치원 54

최치원 천년 향기를 머금은 경남 57

 

경남의 최치원 유적지를 찾아서

하동과 최치원 62

합천과 최치원 80

창원과 최치원 95

함양과 최치원 109

양산과 최치원 117

산청과 최치원 120

거창과 최치원 123

사천과 최치원 124

남해와 최치원 126

 

최치원의 영정 이야기

경남 지역에서 발원되다 128

해인사본 영정 130

쌍계사본 영정 132

쌍계사본 두 번째 영정의 이동 경로와 정밀 감정 136

현존 영정의 전수 조사와 정밀 감정 필요성 139 

동상을 세워 추모하다 140

최치원 영정과 동상의 다양한 모습들 142

 

part 2 최치원, 그는 누구인가

 

출생과 고향 150

 

가족 관계 154

 

유년기와 중국 유학

유년기 159

12살 어린이의 유학길 160 

 

part 3 중국과 최치원

 

국자감 유학 생활과 최치원의 각오 164

 

인백기천의 노력과 장원 급제 169

 

중국에서의 관직 생활

율수현위 임관과 사직 174

회남절도사 종사관이 되다 181

중국인을 감동시킨 〈격황소서檄黃巢書〉 187

중국의 명사들과 교우하다 193

 

신라 귀국을 결심하다

귀국 결심과 출국 준비 195

최치원에 대한 고변 절도사의 배려 198

최치원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다 200

귀국선에 오르다 202

 

part 4 신라에 돌아온 최치원

 

금의환향과 관직 제수 206

《계원필경》 문집을 왕께 올리다 209

외직을 자청하여 지방의 태수가 되다 214

〈시무 10여조〉 국정 개혁의 좌절과 관직 은퇴 219

은둔의 세월과 은자의 길 222

최치원은 신선이 되었는가 227

 

part 5 최치원의 작품 세계

 

최치원의 작품 개요 234

 

중국에서의 작품 활동 236

〈격황소서〉의 작품적 의의 238 

 

국내에서의 작품 활동 241 

《계원필경집》을 편집하여 왕께 바치다 242

국내 창작 작품들 244

《사산비명》의 찬술 247

가야산 해인사에서의 저술 활동 251

그 외 창작 작품들 253

친필 각석과 서가書家로서의 최치원 255

 

주옥 같은 시詩를 남기다 258

중국에서의 시 작품 260

국내에서의 시 작품 266

 

part 6 최치원의 종교관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다 274

최치원의 유교 관념 276

최치원의 불교 관념 278

최치원의 도교 관념 282

 

최치원의 ‘종교 융합’ 사상

유·불·도교의 융합 287

‘종교 융합’의 현대적 의의 289

 

최치원의 풍류도 개창 292

 

part 7 최치원의 재발견

 

최치원에 대한 새로운 평가 298

그는 부처에 아첨했는가 300

그는 사대모화의 화신인가 306

한·중·일을 아우르는 지성인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