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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진주의 하늘 아래 살면서 또다시 남강물 흐름 위에 열여덟 번째의 조각배를 띄웁니다. 남강 변 칠암 들판에서 둥지를 틀고 농사지으며 써온 글들, 시조집 14권을 상재했으며 산문집으로 네 번째의 글들을 비망록(備忘錄)으로 엮었습니다. 1950년 6·25를 맞이하여 밟은 진주 땅에서 촉석루가 폭격에 불타는 것을 보아 온 안타까운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진주의 며느리가 되어 살아온 지도 일흔 해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문 날의 길목에서 생애에 잊지 못할 기억들의 흩어진 산문들을 찾아 모아서 나의 생을 뒤돌아보는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수필 몇 편과 최근의 기행문들, 경남일보·경남신문·문예지·일반잡지 등의 청탁으로 쓴 칼럼, 진주여성문학인회를 창립하면서 써 온 머리말들, 진주와 진주 문인 이야기, 평설문 등, 흩어 놓았던 산문들을 모아 놓고 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대부분 청탁에 의하여 써 온 글들임을 밝히며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묶음에는 진주에 관한 수필을, 둘째 묶음에는 진주에 관한 역사와 문화를, 셋째 묶음에는 최근의 칼럼들을, 넷째 묶음에는 진주의 문인 이야기를 엮어 보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책을 펴내는 일도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예감을 느끼며 본인의 생애에 있어 가장 오래 살아왔고 사랑했던 약속의 땅, 진주에서 산 흔적의 작은 글모음으로 삼으려 합니다. 

 

또한, 이곳에서 50년대에는 선진농법(先進農法)으로, 60년대부터는 식물원의 원정(園丁)으로 살아오면서 어른을 모시고 아이들을 키워 온 고마움을 잊지 않습니다. 이 책으로 하여 진주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애향심과 긍지를 더 높일 기회가 되시기를 소망하며 붓을 놓겠습니다.

2020년 여름
소심(素心) 김정희

 

 

│차례│

 

책을 내면서―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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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묶음 
남강가의 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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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강물― 012
남강가의 대숲― 015
뒤벼리산을 보며― 020
만해(萬海)기념관에 갔던 날― 024
다산초당(茶山草堂을) 다녀와서― 030
천만궁(天萬宮) 이야기― 035
시정(詩情)이 넘치는 제향(祭享)― 042
무이산(武夷山), 꿈속에 노닐다― 047
사향(思鄕)의 노래― 051
6·25전쟁과 나의 문학― 056
길 위의 삶–노비산 오솔길과 남강의 강변길― 061
사랑, 그 영원한 신비― 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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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묶음 
진주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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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이야기― 074
문학으로 올리는 제례祭禮― 080
선각(先覺)의 땅, 진주 정신을 찾아서― 082
잊힌 불망비(不忘碑)― 085
천혜(天惠)의 땅, 진주의 풍광(風光)― 090
진주 12경(景)과 신 진주 8경(新八景)― 093
진주지역의 구전민요(口傳民謠)를 찾아서― 101
진주목(牧)의 고시조(古時調)― 111
진주의 개화기(開化期) 시조― 125
진주 지역의 현대시조― 131
2007년 10월 3일 제7회 세계시조사랑축제를 주관하고서―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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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묶음 
시(詩)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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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聞香)― 166
전통차를 사랑하며 ― 168
시(詩)의 목소리― 170
앓고 있는 지구별― 172
아름다운 상생(相生)― 174
시조문학을 위한 단상― 176
쓰레기 유감(遺憾)― 178
숨 쉬는 생명의 외경(畏敬)― 180
보랏빛 그리움― 182
들녘에 서면 ― 186
추억 속의 텃밭― 190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내 마음을 일깨운 책│―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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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묶음 
진주의 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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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성 선생님과 나― 200
소설가 김보성 사모님 영전에― 204
시조문단의 선각자이며 대부(代父), 맏형이셨던 기리 박사님― 208
꿈속에 뵌 듯한 이형기 시인― 213
덕망(德望) 높았던 의리(義理)의 시인–이덕 시인을 추모하며 ― 219
학처럼 고결(高潔)했던 선비의 기상)氣像)–고 운초 박재두 시인의 인간상(人間像)― 227  
볕바른 창가에서–조계자 첫 시조집― 233
순수서정과 자아성찰의 시조미학–이희규 시인의 작품 세계― 236
수행과 물아일체의 시학–김용진 시인의 시조세계 ― 253
삶의 진실과 일상의 서정, 그 비유의 미학–정강혜 시인의 작품세계 ― 257
자연에서 관조하는 삶의 눈길–이동배 시인의 작품 세계 ― 273
삶의 진실과 자아성찰을 추구하는 정형미학–박영숙 시인의 시조세계  ― 284


김정희 연보― 298

 

 

│책 속으로│

 

모든 사라져간 것은 아름다웠다. 그것은 추억의 프리즘으로 미화되고 승화昇華되기 때문이지만 되돌아 다시 바라볼 수 없는 허망과 애틋함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까닭일 것이다.


소슬바람이 일어 앞뜰의 목련 나무 잎새가 서로 몸 비비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 때면 늘 귓전을 스치던 대바람 소리가 그리워진다.

 

우리가 남강 변 칠암 벌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 집과 남강 사이를 가로막는 울타리는 대숲이었다. 그때 뒤벼리 산밑은 낚시터로 유명했었고 남강물은 쪽빛보다 더 푸르렀었다. 그 강물과 하얀 백사장 가장자리를 띠처럼 두른 대숲은 한 폭의 절경이요 낭만이었다. 지금은 비록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된 대숲이지만 내 마음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는 화첩(畫帖)으로 남아 있다.

 

-― 본문 <남강가의 대숲> 중에서

 

 

진주에 대한 이야기는 진주성부터 풀어 나가야만 한다.
천년 고도古都임을 자랑하는 진주에는 도심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남강이 있고 그 남강의 돌벼랑 가에 진주성의 성벽이 보인다. 원래 진주성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이 있었다는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외침을 당하면서 외성은 훼손을 당하고 내성의 흔적만 남아 있다. 진주대교에서 바라보면 촉석루가 우뚝 솟아 단청의 아름다움이 한 송이 꽃으로 보이는데 그 아래 강변에는 논개의 충혼이 스며 있는 의암義巖이 보인다.


진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일부였고, 가야시대에는 고령가야의 일부였다. 이어서 거열주, 청주, 강주라는 이름을 거쳐 고려시대에는 진주목으로 격상된 역사와 문화, 교육의 도시이다. 진주목은 경상도의 전 지역이었고 진주는 경상우도의 중심 지역이었으며 남명南冥 조식曺植과 남명학파의 핵심 인사들의 생활 근거지였다. 또한 경敬과 의義 두 글자를 사람이 사는 도리의 근본으로 삼는 남명사상은 진주 정신의 근간이 되어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진주는 한때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지금은 잃어버렸던 도청의 일부가 진주에 이전되고 혁신도시가 세워져서 재도약을 꿈꾸는 도시가 되었다.

 

-― 본문 <진주성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