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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남 수필집 <삼태기골 통신>

│박성남 수필가│

 

박성남 수필가는 충북 청원 출생으로 해군 군무원으로 재직하다 1999년 퇴직하였다. 이후 경남문예대학과 마산대 평생교육원 문예반을 수료하고 2007년 《경남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였다. 현재 경상남도문인협회, 진해문인협회, 경남문심회, 솜다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책 소개│

 

농부 수필가의 땀으로 핀 꽃

 

우리나라에 수필을 쓰는 사람 중에서 이처럼 농사를 지으며 자신의 삶과 인생을 수필로 기록하고 있는 농부 수필가는 보기가 어렵다. 

그의 수필에선 순수하고 땀에 배인 체험과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을 보여준다. 농부는 많지만 수필로 농사짓기의 희로애락을 절실하게 전해주는 수필가는 드물다. 이런 점에서 삶과 인생이 결부된 농사수필을 만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정목일 수필가의 〈서평〉 중에서

 

 

│작가의 말 중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오랫동안 지방문화재보호 규제에 묶여 증개축을 할 수 없어 쪼가리 집으로 살았다. 누덕누덕 이어붙인 집처럼 내 삶의 궤적이 삼태기골 통신이다.

어느새 희수를 넘겼다. 인생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민망해질 때가 많다.

전에 입던 바지가 내 발에 밟히어 작은 돌부리에 걸려 뒤뚱거린다. 자연의 섭리이니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인생의 뒤안길을 질척대며 걸어온 처지에 주제넘게 책이라는 민낯을 내보이게 되어 부끄럽다. 부족한 내가 책을 낼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정목일 스승님께 도를 다하지 못해 송구할 뿐이다.

부족한 글재주임에도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자양분을 공급해 준 문심文心 도반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한다. 

 

 

│차례│

 

작가의 말•3

평설  농부 수필가의 땀으로 핀 꽃  정목일•274

 

제1부 외로움 타는 나무

생명의 소용돌이 •10

연리지를 꿈꾸며 •16

삼태기골 통신 •23

마당, 시작과 끝의 공간 •27

고삐 •34

꿈꾸는 방 •41

일어선다는 희망의 말 •47

바다와 함께 걷는 산행 •53

달집을 태우며 •60

외로움 타는 나무 •67

 

제2부 순명의 강

순명의 강 •78

사라지는 풍경들 •84

마삭 넝쿨 •90

남사예담촌에서 •96

견룡문(見龍門)에 기대어 •101

이방인 목격자 •108

하여가(何如歌)의 물살에 떠밀려도 •112

검은 얼굴의 미소 •117

호밀을 심던 시절 •124

하룻밤 사이 •131

호박 예찬 •141

 

제3부 속이 무너진다는 말

영월의 빛과 그림자 •148

아름다운 마무리 •155

웅천의 방향(方向)을 찾아 •163

내가 생각하는 수필 •170

일엽편주 •173

필연 •181

속이 무너진다는 말 •186

다인산방(茶仁山房) •195

눈 내린 아침에 •201

산을 품고 강에 안기다 •204

 

제4부 매화야 미안해

빌린 외투 •212

섣달그믐 •217

예리코인과의 만남 •223

겨울 꽃 •227

이틀간의 동거 •234

골목 풍경 •240

가지치기 •245

불타버린 유모차 •250

문학(文學), 황혼의 방랑자 •255

눈 내린 아침에 •263

매화야 미안해 •266

 

 

│책 속으로│

 

가지치기를 할 시기가 되면 농부는 서둘러 내년 농사를 준비해야한다. 한 해 농사의 결과가 미흡해도 아쉬움을 접어야 한다. 수확의 최종결과와는 상관없이 가지치기는 이루어진다. 나무의 전정은 휴면기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지치기 방법은 지난여름 동안의 나무의 성장상태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가위를 잡는다. 가지치기는, 한정된 공간에서 품질 좋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가지치기는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나, 오랜 경험과 특별한 안목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과일나무는 장기간에 걸쳐 수확을 하기 때문에 한번 잘못 잘라내면 이를 교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과일의 수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가지치기에 공통적으로 고려되는 사항이 햇빛을 고르게 받게 하고 작업을 편리하게 하는 일이다. 햇빛이 고르게 비쳐야 당도가 높아지고 과일의 착색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과일 농사는 가지치기를 한 것만으로 우수한 열매를 기대하지 못한다. 꽃이 과도하게 피면 적절한 수량조절을 위하여 꽃따기도 해야 하고 열매도 튼실한 것만 남기고 솎아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봉지 씌우기를 해도 약제 살포는 반복되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들이 원활해지도록 가위질을 하는 것이다.

― <가지치기> 중에서

 

요즘엔 시골에 가도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기 어렵다. 올챙이가 보여준 수중발레는 물이라는 생명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구리가 알을 낳을 자연조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무분별한 제초제 살포로 생지옥이 된 원인도 있지만, 댐이 들어서고 지하수 개발로 웅덩이가 사라짐에 따라 알을 낳을 만한 곳이 없어졌다. 예전 같으면 봄철에 논물을 가득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배란과 부화가 용이했다. 요즘은 수리시설이 좋아 모심을 시기에만 물을 대기 때문에 번식시기에 들판에 물이 없다. 

― 〈생명의 소용돌이〉 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내 방을 갖고 싶어 한다. 내 방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가족이라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비밀의 공간이다. 때문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다. 방안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사람 냄새는 살아있는 향기이자 존재 그 자체다.

내 방이 없는 아이들에게 방을 따로 갖는 것은 간절한 소망이다. 특히 사춘기가 되면 더욱 절실하게 내 방이 갖고 싶어진다. 넓지 않아도 좋다. 가장 아끼는 물건과 몸을 누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있어도 족하다. 마음이 울적하면, 구석지고 침침한 다락방도 좋다. 오직,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공간이 필요할 뿐이다.

대가족이 생활하던 농경사회에서 내 방은 생각할 수 없는 사치스런 꿈이었다. 그 시절에는 형제들이 성장해 결혼을 해도 분가할 집을 마련하지 못하면 한 지붕 밑에서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 두 사람만의 공간이 아쉬운 신혼부부에겐 내 집을 지어 신접살림을 나는 일이 유일한 꿈이었다.

― 〈꿈꾸는 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