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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울림이라도
있기를
오하룡
새세기라고 모두 들 떠 있다. 그러나 본지는 차분하게 오래된 한 작품을 음미하며 이번호의 의미로 삼을까 한다.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리에스코푸의 「어느 명절날 생긴 일」에서 보여주는 사회상이 어쩌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그런 것인지가 놀라울 따름이다.
리에스코푸는 백수십년 전 그때 이미 인간내면의 선과 악의 구조를 정확히 들춰보려 애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복수가 무서워 범죄자를 신고하거나 증인서기를 꺼리며 이러므로 해서 사회악을 방치하는 모순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 요즘 급격히 문제시되고 있는 파이낸스 사태를 보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싶은 것이다.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버젓이 백주에 저질러도 책임질 아무도 없다. 파이낸스 창업주만 사기꾼으로 몰면 되는가.
그들만 단죄하여 격리하면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사기꾼들의 수법에 속아 언젠가는 돈을 떼일 사태가 올 줄 알면서도 설마 '나한테는 그런 일이 닥치지 않겠지' '나만 고리를 챙겨 여유를 누리면 되는거지'라는 극도의 이기심에 마비된 투자자라면 동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허욕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그들도 피해자가 되어 눈물을 쏟으며 앞으로 살 일을 걱정하면 어쩔 수 없이 동정심이 일고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
리에스코푸는 세탁소주인을 통해 그런 상황을 진작 보여주는 혜안을 갖고 있다. 세탁소 주인은 비싼 외투를 수선해주기 위해 맡았으나 생활에 쪼달린 나머지 전당포에 맡기고 만다.
주인이 사라지고 난 세탁소에는 부인과 어린 자녀들만 남았다. 피해자인 주인공은 오히려 그 부인과 그 자녀들의 생활을 돕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외투를 잃어버린 것도 억울한데 그 범죄자의 가족을 돌보아야되는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 아무리 개인적으로 똑똑하고 영악해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런 것이다. 이런 의문에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회라는 것은 공동 운명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범죄는 저지른 자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사회문제로 계속 남아 여러 난제를 파생시키는 것이다.
리에스코푸 작품을 읽는 즐거움은 100년을 뛰어넘는 가장 인간적인 여러 문제와의 부딪침과 그 여운이 주는 감동일 것이다.
도둑의 아들이 던지는 양심의 절규 또한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과거에 무슨 짓을 하였든, 현재 어떤 직책이나 임무가 지어져도 아무런 가책없이 행동하는 철면피의 행위가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널려 있는가 말이다.
이번호에도 작은 울림의 읽을거리였다는 풍문이라도 들었으면 한다.
계간 작은문학 제12호(1999년 가을/겨울호) 목차
■시와 그림│最初의 失戀 ― 괴테 어머니의 손 ― 리석
■책머리에│작은 울림이라도 있기를 ― 오하룡
■어떤 건의서│작가 한천석의 편지 ― 편집부
■신작시모음
五月 단상 외 4 - 강윤수
섬의 演奏曲 외 1 - 김용길
상관이 있다 외 5 - 김일태
삼랑진에서 외 4 - 김혜연
보랏빛으로 저무는 가을 외 3 - 민병기
시월 상달 외 4 - 조은길
정상에서 외 2 - 최영철
江은 꿈꾼다 외 2 - 추창영
■이승희의 번역시│서인숙 「적막의 자유」, 박태일 「살구씨」, 변승기 「풀잎」
■수필
처녀 선생님 - 권정석
開眼 - 김원숙
죽은 자와의 화해 - 유자효
돌 한 개 - 이광호
검은 고무신 - 이방수
말, 쉰세대-신세대 - 이학수
다시 돌아보는 그 시절 - 허학수
누가 야만인인가? - 채규철
■다시 읽는 수필│同情 / 구두 ― 계용묵
■문학대담│장편 "의례적 삶a gesture life" 낸 재미작가 이창래 씨 ― 편집부
■평론
문학과 대중예술 그리고 Capitalism―그 악연 ― 김홍섭
길 위의 삶, 그 아름다움 ― 정삼조
수필 주제와 역사성 ― 河吉男
■동화│왕할머니의 입원 ― 이영호
■다시 읽는 명작│어느 명절날 생긴 일 ― 리에스코푸
■발굴자료 작고문인실화│「생각나는 소녀 ― 이범선
■단편소설│밝은 날의 은신화 ― 이상태
■서 평│시간의 무덤 파헤치기 ― 임신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