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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문학
13호의 의미
오하룡
『작은문학』 13호를 내보낸다. 햇수로는 5년째에 접어든다. 약속대로 결본없이 냈다면 17호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그런 실적이 못된다. 그런데도 왠지 지금 내딴에는 숨이 가쁘다. 보는 분들은 예사로 보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숨가쁘게 뛰어왔다. 그래서일 것이다. 남보다 폐활량이 크지도 않고 체격 따위도 뛰기에 알맞게 다져지지도 않았다. 애당초 뛰기 경주에는 적합치 않는 신체 조건이다. 그렇다면 아예 나선 자체가 무리라는 결론이 날 법도 하다.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며 찬물이나 한 잔 벌컥벌컥 마신다. 그러다가 주춤주춤 대열에서 이탈하여 으슬렁으슬렁 사라지면 된다. 얼마나 많은 이런 류의 행동을 우리는 보아왔던가. 내가 그런 낙오의 대열에 끼인다고 별로 아쉽거나 서운해 할 누구도 없을 것이다. 무리한 행동에는 결별 또한 엄존함에 대중은 너무나 익숙하게 길들여 왔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숨이 가빠 진땀을 빼면서도 낙오자로 낙인 찍히면서까지 물러설 생각은 없다. 때로는 주저앉아 한동안 쉬고 싶은 생각은 들기는 한다. 어차피 장거리 경주인 이상 등위 따위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없는게 아니라 아예 염두에 둘 필요조차 없다. 완주가 중요하며 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과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다.
뛰는 사람으로서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어야 하리라는 생각이다. 앞만 보고 목표를 향해 묵묵히 뛰어보는 것이다. 숨가쁜 상황에서도 달리는 길 주변의 다양한 볼거리와의 만남은 얼마나 흐뭇한 것이냐. 거기에는 철마다 각양각색의 자연의 초대가 있다.
화려하고 현란한 꽃들과의 만남은 황홀 그 자체다. 관록있는 어른처럼 든든한 모습으로 가지를 아름답게 늘어뜨린 거대한 나무들도 버티고 있다. 이 나무들은 우리의 전통이며 역사다. 바라보면 볼수록 희망을 갖게 하고 힘을 얻게 한다. 살랑대는 바람에 쉴새없이 흔들리며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저 이름없는 잡초들은 또 얼마나 많은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가. 그냥 달리는 게 아니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전도되어 내가 뛰는건지 이들이 뛰는 건지 혼돈스럽게 된다. 그렇다. 혼돈스러울 것도 없다. 같이 뛰는 것이다. 어차피 삶이란 어울려 같이 뛰는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 뛰고 있다. 결과야 어떻든 뛰는 과정의 달콤한 만남, 그 자체만 하여도 보람스럽지 않을 수 없다.
원로 황선하 시인의 동시 신작 모음은 본지만이 선택받은, 본지만의 누림이랄 수 있는 귀한 자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황 시인은 요즘 와서 동시 창작 욕구를 왕성하게 느낀다면서 그 발표 기회를 본지에 마련토록 한 것이다. 그만이 가진 맑고 투명한 정신과의 귀한 만남의 기회라 할 것이다.
이은용 시인의 신작 모음도 대단히 값진 본지만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번에 교감 승진의 바쁜 틈바구니에서 이 작품을 건졌다면서 작품에 대한 깊은 애착을 표시해 왔다.
아동문학가 임신행 회갑 특집은 본지에 대한 그의 한량없는 애정에 대한 보답의 뜻이 담겨 있다. 그는 『작은문학』에 보통 관심을 갖는게 아니다. 이 지방 자존심으로까지 치켜세우며 늘 깨우치는 이도 그다.
그도 이제 회갑을 맞았다. 그의 이러한 의미부여를 위해 그를 따르는 후진들이 뭔가 준비하는 낌새를 보이자 그는 대번에 손을 멀리 내저었다. 그의 천성이 용납을 허용치 않는 것이다. 그는 생래적으로 자신을 위한 떠벌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많은 책을 내면서도 출판기념회 한 번 안한 것만 보아도 그 고집을 알 수 있다. 본지가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줄 알면 절교하자고 펄펄 뛸지 모른다. 그러나 본지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으니 어이하랴. 그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우신 씨. 아직 친숙한 이름이 아니다. 친숙한 이름이 아닌 것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그 이름을 접하기 어렵게 된 이름이다. 본지 고문이신 박경수 선생 소개로 본지 10호에 수필 2편을 소개한 바 있다.
'한국수필'을 통해 최근에 등단했다는 사실과 함께 아직 문장이 거칠기는 하나 유명 목수로 활동하는 동안 남다른 글 소재를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장래 빛을 발할 수 있는 작가라고 소설가 박경수 선생은 굳이 '장래'를 강조하였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랬는데 지난 8월 갑자기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가족들은 약물중독 사실을 한사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실상 그의 고향 충남 서천에서는 시인으로 더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고향 '충남문학', '서림문학' 등에서는 시를 중심으로 추모 특집이 마련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본지는 고인과의 짧은 인연이지만 그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 수필 유작의 모음 자리를 마련해 보기로 한 것이다. 늦게 문학에 들어섰으면 열심히 쓰다가 가기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런 주절거림이 나도 모르게 입을 비집고 나옴을 어쩌지 못한다.
성기종 씨의 시모음 편도 마련한다. 그는 오랜 공직에서 벗어나 농촌에 들어가 지금 과수원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시를 습작하고 있다.
그의 시는 투박한대로 읽히는 맛이 있다. 시에 삶을 담으려는 그의 진지함이 그대로 보인다. 이미지니 뭐니하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현대시만 접하던 눈에는 우리 재래의 한복 입은 풍모의 만남 같은 정겨움을 느낄 것이다.
허둥지둥 뛰면서도 주저앉거나 낙오하지 않는 이유를 이만하면 이해되리라 여겨진다.
계간 작은문학 제13호(2000년 봄호) 목차
■시와 그림│꽃―李祥介 나는 앉아서 바라본다 ― 왈트 휘트먼
■책머리에│작은 문학 13호의 의미 ― 오하룡
■황선하 신작 동시 모음│착한 눈빛 외 11
■이은용 신작 동시 모음│봄 외 10
■특집 아동문학가 임신행 회갑 기념
대표동화│붉은 짤레꽃
작가론│자전적 通過禮儀의 理想化―이재철
작가소론│「겨울 안개」 외 7편을 중심으로―신현득
■이승희의 번역시
바다일기 7 ― 강윤수
울음이 타는 江 ― 박재삼
秋興歌 ― 전기수
■박우신 추모 수필 유고 모음│6월에 외 4
■방인영 신작시 ― 寂 5 외 1
■河吉男 신작시 ― 친구 외 1
■성기종 신작시 모음│사슬을 잘라내고 외 8
■생활속의 발견①│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의 목소리 ― 吳仁文
■엽편소설│麻姑城의 별빛 ― 崔明鶴
■평론│낭만적 에트랑제의 꿈―황동규론 ― 김홍섭
■다시 읽는 소설│소쩍새 ― 오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