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s://t1.daumcdn.net/tistoryfile/fs5/17_11_11_11_blog168016_attach_0_8.jpg?original)
15호를 내며
오하룡
경제 사정이 이유이긴 하나 한 호를 거르고 보니 이 글도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는다. 할말은 많은데 억누르다가 거기서 또 잘라내고 정리를 하려니 잘 풀릴 리가 없는 것이다.
신작만으로 채울까 하다가 고개를 흔든다. 신작에서도 만족한 신작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 발표된 작품에서 다시 읽기의 찾아내기를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만만치 않음을 금세 깨닫는다. 나라는 사람의 찾아내기의 능력의 한계도 한계려니와 그렇다고 어디 도움을 청할 데도 여의치 않는 것이다. 나이라는 것이 제약 요소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과감하게 밀어붙이기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내가 무슨 도덕군자라고 어쩐 일인지 예의라는 것이 고개를 드는가 하면 염치라는 것이 뒤질세라 막아선다. 그러니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주변에는 그런 장애를 전연 느끼지 않으면서 천연스레 잘 버텨내는 사람도 보인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예의 염치없는 사람으로 매도당하지도 않는다. 잘 떠들고 잘 부딪치고 잘 넘어간다. 웃음이 잘 어울린다. 성격적으로 서글서글하다. 붙임성이 좋다. 그런 것이 그 사람의 특징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잘 안 된다. 전연 안 된다면 거짓말이고 잘 되지 않는다고 해야 정직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니까 『작은문학』을 이만치라도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이런 갈등 속을 헤어 나오느라 지친 가운데서 신작도 모으고 옛것도 뽑고 해서 이번에도 이렇게 햇살 속에 15집을 드러내 보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중에서도 특이한 것이라고 하면 종교의 진실 찾기이다. 지난번 장덕순 님의 글과는 또 다른 성격의 고고학자 김원룡 님의 글을 올린다. '인간, 신, 송충'이란 제목이다. 종교를 갖지 않으면서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야말로 가장 객관적일 것이라는 내 나름대로의 판단이다. 여러분들도 공감 얻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고한 분들의 글이어서 더 애틋한 감동으로 다가왔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호에는 특히 오래된 글에서 나병환자의 수기를 찾아내어 소개한다.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나병환자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어릴 때는 나병 환자들이 많았다. 그런 현상이 중년까지 계속되었던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쳤고 그래서 그들의 불행한 삶은 내 뇌리에 무겁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무서운 병에 걸렸으며 그들은 일생을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하였다. 물론 그들은 참담한 일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두를 단순한 보통 인생의 구도로 보기에는 너무 안타깝고 애절함이 남는 것은 내가 여린 감상주의자여서 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에 대하여 내가 계속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번의 이 수기 이상의 내용과도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나 나는 거기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 동안 한하운 시인의 작품과 그의 삶을 통하여 단편적으로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명 시인에 대한 연보적 소개에 그치는 것이어서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미흡하였다. 이번에 우연히 비록 일본의 재일 한국인 환자들의 수기이긴 하나 그 내용이 하도 절실하여 그 동안의 궁금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수기를 읽으며 어떤 문학이 이보다 더한 감동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 독자 가운데는 혹시 이 수기를 읽은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처음 읽는 분이 많으리라는 생각이다. 순수 문학지에 이런 내용이 게재되는 것도 아마 처음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자부한다. 우리에겐 저 소록도에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더러는 논픽션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재일 동포의 이런 수기처럼 개개인의 기록을 제대로 정리해 놓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점이 아쉽게 여겨진다. 소록도 이야기가 이처럼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았다면 참으로 기념비적 기록문학으로 대단한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이 순간에도 지우지 못한다.
계간 작은문학 제15호(2000년 가을/겨울호) 목차
■시와 그림│순박한 아내를 가지기 위한 기도―프랑시스 쟘, 開化―이호우, 마음―조병무
■책머리에│15호를 내며 ― 오하룡
■김일규 신작시 모음│自畵像 1 외 9
■원신상 신작시 모음│감 가지 밑에서 외 9
■정이경 신작시 모음│여행 외 8
■최일환 신작시 모음│안개꽃 외 5
■박은주 신인 신작시 모음│아침 풍경 외 4
■하영 신작 동시 모음│오솔길 외 9
■시
사리암에서 시집을 펴다 외 2 - 김성춘
극락조에 관하여 외 1 - 성선경
무정 외 2 - 오영재
밥 그밥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외 3 - 이선관
■이승희의 번역시
가을 그림자(Fall Shadow) - 김상옥
바다와 신발(The Sea and the Shoes) - 김연동
겨울밤(A winter Night) - 강지연
■이원기 수필 신작 모음│持病 외 2
■수필
팽배롱떡갈나무 - 안명수
이삭줍기 - 이아정
봄 - 한후남
■다시 읽는 수필
집단적 관음증의 사회 - 김병익
이기심과 이기주의 - 박시룡
인간, 신, 송충 - 김원룡
■손영희 신인신작 수필 모음│산행 외 2
■생활속의 발견③│이 생명 누가 살리고, 이 고질병 누가 치유하랴 ― 吳仁文
■다시 읽는 소설│北風 ― 白龍雲
■평론│김순규 에세이집 「희로애락의 인생살이」론 ― 河吉男
■나병환자 수기 2편│그날의 기억 ― 임학신/긴 시간 속에서 ― 허순자
■자료모음│노산 이은상 선생 검증자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