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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 없는
                  '문학의 해'



박경수


'문학의 해'에서 무엇보다 먼저 생각게 되는 것이 있는데 지난 1994년이 '국악의 해'였던 그것이다. 그 때는 그저 무심상히 그 국악의 해를 받아들이면서 다만 평소 그 쪽에 다소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터라 그 해에 맞춰진 여러 행사와 창악(唱樂)들을 즐겨 보고 듣고 했을 뿐이었다. 그 해에 내 그 쪽 계통의 외도책(外道冊) 하나 『소리꾼들 그 삶을 찾아서』 부춘향가고(附春香歌考)가 나와서 얼마간의 용전도 생기고 한 무망지복(毋望之福)을 누린 것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그 해를 지내고 다음 해인 1995년의 '미술의 해'와 금년 1996년의 '문학의 해'를 보면서 나는 비로소 그 해의 그 '국악의 해'란 명칭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 때의 명칭은 왜 '95, '96의 미술, 문학의 해처럼 '음악의 해'가 아니고 '국악의 해'냐였다.

우리 나라 국민들이 지나치리만큼 소위 근대화(서양화)라는 것의 충실한 학도가 된 나머지 음악, 미술, 문학의 예술 3자가 일찌감치 서구화된 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 음악하면 으레 서양음악을 지칭하는 것이 되고 미술대학은 서양화, 서양미술을 배우는 학교로 통하고, 문학도의 텍스트는 서구문학 위주의 '세계문학'이라야 되고(이 때의 우리 문학을 '염전문학'이라 한다.)-등이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서양화가 되어 있는데, 그래서 '미술의 해'라면 으레 그런 미술의 해로, '문학의 해' 역시 그런 문학의 해로 알고들 있는데 어찌 1994년의 그 해만이 '음악의 해'라 하지 않고 구태여 '국악의 해'라 하였느냐는 그것이다(음악협회가 전국단위로 있으니까 언젠가는 '음악의 해'가 있겠지).

그에 대한 내 나름의 해답이 있어야 본고 '문학의 해'의 얘기가 된다. 김덕수의 사물놀이(SAMUL-NORI)와 국악의 고장인 전라북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김덕수의 사물놀이는 이미 국제음악용어가 되고, 세계음악이 된지 오래다. 미국을 위시한 스위스 등 세계 도처의 10여 개 음악대학에 김덕수의 한국음악과(科)가 개설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미술이나 문학에는 없는 일이다. '국악의 해'가 될 만하다.

다음 전라북도 '정읍사 문화제', '전주 대사습놀이', '남원 춘향제' 등 전국 규모의 국악축제놀이들이 모두 그 고장에 모여 있다. 전라도의 각 시․군에는 어김없이 '국악원' 혹은 '국악협회'가 있고 그만큼 그 고장에는 우리 음악을 모르는 도민이 없다.

역시 미술과 문학에는 없는 일들이고 '국악의 해'가 되고도 남는다.

오늘의 우리 문학에 한국문학은 없다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서구의 '현대문학'이 미국문화의 조류에 실려서 들어온 후부터 우리 문학의 급속한 서구화를 발전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많은 그들이다.

그때부터 서구문학으로만 된 소위 '세계문학'이라는 것이 우리 나라 문학도들의 모범이 된 건 물론이고, 괴테의 『세계문학론』은 그대로 그들의 좌우명이 되었다.

이 지구상에 있는 어느 문학이든간에 그것들에 대한 모델 혹은 시범을 찾으려면 고대의 그리스 작품들로 돌아가야 한다(「에케르만」과의 대화에서).

그리하여 한국문학이 돌아가야 할 곳이 왜 서구문화의 발상지인 그리스냐고 하는 측의 우리 나라 작가, 시인은 모두 편협한 비세계적인, 지역주의적인 작가 혹은 촌놈작가가 되었다.

소위 문학의 해가 된다는 금년에 어떠한 행사들이 더 있게 될 것인지 궁금한 일이다. 되도록 작가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일, 즉 국민에게 책을 많이 읽히는 일 등에 대한 그 어떤 행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읽는 책이 우리의 문학이 아닌 서구문학이나 그 아류의 것들뿐이라면 국민 정서와 정신의 말살과, 대신 그의 서구화를 돕는 외에 또 어떤 뜻이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문학에도 하루 빨리 노벨문학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의도 있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약한 국력 얘기, 번역 소개의 부진 등 얘기가 뒤따르던 것이 그런 모임에서 흔히 보여주던 예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학 자체가 우리 것이 아닌 서구의 것이거나 그 아류의 것일 때 수상이 가능하겠는가도 한 번쯤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두 번이나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가장 일본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이고 가장 일본적인 작품이다'가 가와바다〔川端〕와, 그리고 그의 작품에 그 상이 주어지게 된 스웨덴 문학아카데미의 평이다.

심지어 미국의 몇 작가들은 자신의 출생지역 외는 작품의 무대로 삼지 않는, 우리의 눈으로는 지극히 편협한 지역주의자로만 보일 그런 결벽의 방법으로 하나같이 모두 노벨문학상을 받고 전 세계인에게 공감을 주는 작품만을 쓰고도 있다. 중서부의 싱클레어 루이서, 남부의 윌리엄 포크너, 서부의 존 스타인 백 등이 그들이다.


계간 작은문학 제2호(1996년 여름호) 목차

■시와 그림내 마음 속의 모든 슬픔을―프랑시스 잠, 작은 새―푸슈킨
               
시가 없는 밤에―이광석
■책머리에'한국문학'이 없는 '문학의 해'―박경수
■수필
  자수의 해학 그 여인의 꿈―서인숙
  독도를 다녀와서―신상철
  절을 찾아가는 마음―정목일
  수필에 대한 나의 생각―권정석
■다시 읽는 수필한국의 어머니/조국을 묻는 이에게―김소운
■평론
 
수필과 個性―하길남
  
시 동인지 『잉여촌』 연구―송창우
■서평│허상Vertual image의 진실―김현우 소설집 『먼 산 아지랑이』
■아동문학 계절평│동시의 探險과 換喩―임파
■시 계절평│현대시와 유토피아―이상옥
■시조 계절평│따뜻한 눈길 머무는 시단이길―김연동
■시
  少年以後  외 1―최명학
  우리 반 아이(1~4)―이은용
 
 小詩帖―박성웅
  안민고개  외 1―하영
  비둘기  외 1―이달균
  投射  외 1―송유미
  국화  외 1―신용찬
■중편소설│마음의 빗장(하)―이민형
■다시 보는 명작단편│산 해골―투르게네프
■신인꽁트│보리밭 추억―김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