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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선생 생각


오하룡


이번 호에는 우선 구상 선생 추모지면을 마련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상 선생을 한 번도 직접 만난 일이 없습니다. 몇 해 전 어떤 단체서 모셨는지 모르지만 강연 차 마산에 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인사드릴 일이 있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둘러싸고 있어 그만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우 목적 달성을 위해 비집고 다가가서 인사를 잘 챙기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매번 이런 상황이면 물러서고 마는 버릇이 있습니다. 내가 책을 증정했을 때마다 선생께서 엽신으로 몇 차례 답신을 주신 일이 있어서 인사를 드렸다면 이름 정도는 기억했을 수도 있을 텐데, 아쉬움이 한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통 모르는 사이라도 내가 누구라고 억지로 이름을 알리려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혹시 이름을 기억하고, 그래서 인사라도 오겠지 하는 기대를 하셨다면 선생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결과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즘 세태가 그런 세태가 아닌가. 어디 선배나 존경하는 사람을 챙기는 시대인가, 이렇게 체념이야 쉽게 하셨겠지만.

나는 그의 작품과는 일찍부터 친숙해 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초토의 시」, 「강」, 「밭」 등의 연작시 형식이었습니다. 『주간한국』이던가. 그때 거기 1면에 「밭」 연작이 게재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려고 한동안 그 주간지를 기다리던 때도 있었습니다. 「초토의 시」는 전쟁 후의 황량한 정경을, 「강」과 「밭」의 연작시는 물과 흙의 본질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읊어 좋은 반응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시를 어렵게만 생각하던 차에 만난 이런 구상 선생의 작품은 새로운 개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선생의 시는 쉽게 읽혔고 작품의 의도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마음을 끌었습니다. 일반적인 종교시처럼 교시적(敎示的)지 않고 안으로부터 기도처럼 울리는 호소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의 시집은 가급적 구해 읽으려고 했으며 1975년에 나온 『구상문학선』(성 바오로출판사)을 아직도 곁에 두고 틈틈이 읽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시집을 낼 때마다 선생께 우편으로 증정하였습니다. 선생은 연하엽서에 감사 인사를 답신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첫 시집 『모향(母鄕)』을 증정하였을 때입니다.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지난해 보내주신 시집(詩集) 『모향(母鄕)』을 반갑게 받아 읽었습니다. 그 작업은 우리 문학의 수확일 뿐 아니라 저의 정진(精進)에도 크게 비배(肥培)가 되었음을 감사히 여깁니다.


내 시집 따위가 감히 구상 같은 대 시인의 비배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몇 줄 되지 않는 선생의 이 구절을 읽고 또 읽으며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의 엽서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받을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겸손이 한껏 배인 이런 답신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근년에는 어디 신문 같은데 신년 시로 발표했으면 안성맞춤일 것 같은 그런 작품을 담담히 특유의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형식에 담아 인쇄하여 보내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본지는 아동문학가 임신행 형이 구상 선생과 오랜 동안 갈숲 동인으로 친교를 가졌던 인연으로 하여 해설을 맡아주어 이 지면의 뜻을 더 깊게 하여 주었습니다. 선생의 대표작은 제가 오래 전의 작품에서 뽑았습니다.


계간 작은문학 제25호(2004년 여름호) 목차

■시와그림
│낙화 ― 정진업
■책머리에
│구상 선생 생각 ― 오하룡
■구상 추모특집
  평설│구상! 구상 정이 드는 具常 ― 임신행
  연보
  대표시│밭 日記 1  외 6
■이한걸 신작수필 모음│나는 연말을 이렇게 보냈다  외 4
■신작수필
  메모수첩 ― 이아정
  태풍 매미 1  외 1 ― 이원기
  58년 만의 귀향 ― 차상주
■신작시
  서귀포의 새벽바다  외 4 ― 김용길
  바람 부는 봄날  외 9 ― 윤상운
  류큐〔琉球〕 처분  외 5 ― 이상개
  가지치기  외 4 ― 이찬희
  단장(斷章) 9  외 2 ― 정대현
  고향길  외 7 ― 조남훈
■신작소설│歸鄕 ― 강평원
■이소리 시인의 향수 에세이
│창원, 추억 속의 그 이름
■평설│새로 쓰는 사모곡(思母曲) ― 하길남
■독후감│『뜨거운 눈밭』을 읽고 ― 최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