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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영상문예과 교수)
 

  공자는 시(詩)를 한마디로 사무사(思無邪)라 했다. 그런가 하면 워렌(Warren)은 문학(예술)의 본질과 속성을 "진실과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사악함이 없는 진실한 생각, 그렇다면 어떤 생각이 진실하고 아름다우며 사악함에서 멀어져 있는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생존을 위한 물질도, 사회생활을 위한 정치력도, 그리고 그에 따른 명예와 권력도 우리의 삶을 지탱시키고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그러한 생존 조건들이 우리 삶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결코 충분조건은 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빵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설령 살아간다 하더라도 동물처럼 그냥 먹고, 새끼 치고, 세력을 확장하면서 본능적 조건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람답게 사는 길, 그 길이 무엇일까?  이리 생각하다 보니 먼저 떠오르는 것에 종교와 도덕이 있다. 그럼, 그것이 우리가 정착할 수 있는 마지막 구원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 전쟁은 왜 일어나고, 그들 간의 반목과 질시는 무엇이며 도덕과 제도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왜 끊임없이 바뀌고, 곳곳에서 혁명은 왜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제도나 관습, 윤리와 도덕, 심지어 종교까지도 그것이 어떤 규범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지게 되면 그것은 어느 순간 인간의 편이 아닌 통치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되면서 우리의 구원과 멀어져가기 십상이다. 미셸 푸코의 말마따나 그것들이 어느새 우리의 삶을 구속하는 유폐(幽閉)적 그물망이 되어 그 안에 우리를 감금하는 도구기제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금 도구로부터의 일탈, 그리하여 반인간화(反人間化)에 대한 구원, 그 대안의 하나로서 우리는 문학을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학은 제도나 관습이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물질이나 권력 혹은 세상적 편견의 편에 서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에게 비판적 자세를 취하면서 인간이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천진한 마음을 지키고 있다. 그게 공자가 꿈꾸고 있는 사무사(思無邪)의 세계요, 워렌이 지적한 진실과 아름다움의 세계, 곧 인간 파라다이스가 아니겠는가?  현실 세계에서 우리 앞에 군림하고 있는 그 어떤 힘이나, 권위도 아닌 세계, 현실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랑의 대상을 고르고, 처신을 달리한, 그러한 현실 논리를 초월한 진정한 인간의 편, 거기에 우리의 문학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간과하기 쉬운 인간 그 자체의 존엄과 자유 그리고 그것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연민. 이것이 문학이 지향하는 길이다. 이러한 문학의 길을 두고, 어떤 이는 '문학은 1%의 꿈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긴 여정'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그 길이 고단하고 외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99%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길은 이끗이 없는 일이라고, 그래서 99% 객관적으로 손해요,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더라도, 그래도 그럴 수 없다며 남아 있는 1%의 가능성을 붙잡고 우직하게도, 때로는 고독하게, 아니 그 누구보다도 끝내 인간의 편에 남아 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진실과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문학은 늘 외롭고, 춥고, 눈물겨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님(조국)은 떠나 없다고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을 때도, 나는 그래도 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1%의 꿈에 의존하여 실의에 빠진 우리 민족에게 꿈을 주었던 만해 한용운, 옥중에서도 이도령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성춘향, 군부 독재에 맞서 시대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저 해남의 김남주,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돌아서 고개를 저었던 갈릴레이, 홍해의 기적을 이루어 낸 모세의 삶들이 바로 남들이 다 외면했던 1%의 꿈을 이루어낸 문학적 삶의 승리가 아니었던가?

  그 불가능할 것 같은 1%의 꿈이 바로 새 세상을 열어가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힘이 들더라도 마땅히 지켜가야 할 당위(當爲)의 세계. 묻혀 있고 훼손되어 있는 진실을 캐내고, 베일 속에 가려 있는 아름다운 가치들을 들춰내면서 누가 뭐라 해도 한사코 권력의 편이 아닌 사람의 길을 가는 사람들, 그게 문학의 길이다.

  뿐만 아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우주 앞에서 우리 인간은 티끌만도 못한 미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 우주를 생각하는 힘 또한 우리에게 있다." "생각하는 힘"이 있기에 인간은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주를 생각하는 힘, 삼라만상을 생각하고, 눈앞의 난관을 이리저리 슬기롭게 풀어가는 창의적 상상력, 이러한 인간의 고등정신 능력 또한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힘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고귀한 정신, 그게 바로 진실과 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무사(思無邪)의 세계요, 그게 바로 진정한 문학의 길이 아닌가 한다.


 계간 작은문학 제28호(2005년 봄호) 목차

■시와그림│自責의 먼지 ― 박재두(추모)
■책머리에│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 김동수
■특별기고
│樂論 3 / 노래와 直己 ― 윤재근(尹在根)
■근작소설│화양연화(花樣年華) ― 이원기
■근작동화│바퀴큰차! ― 이림
■생활 속의 발견⑪│
어느 무명 시인의 죽음 ― 오인문
■근작시
  혼자 가는 길  외 4 ― 김양채
  눈꺼풀  외 5 ― 도리천
  海潮音이 전하는 비보  외 2 ― 민병기
  어미 물새  외 2 ― 오덕애
  불국사  외 6 ― 윤상운
  시골 면장 1  외 4 ― 이상규
  관계  외 4 ― 이상원
  노자송老子頌  외 2 ― 전의홍
  태풍을 먹은 하늘  외 5 ― 조경숙
  콩서리  외 5 ― 한석근
■근작수필
│방창갑 시인 가족과 유품 ― 오하룡
■평론
  트로트 같은 시와 불타는 자작나무 ― 이상옥
  천재 시인 김삿갓의 인생과 해학 ― 강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