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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두 사람의 영별을 보며
오하룡_시인, 주간, gnbook@hanmail.net
나이 탓일까. 예사로 보이던 죽음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 위치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죽음의 모습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은 언젠가 맞이해야 할 자신의 죽음의 예고가 아닐 수 없으니 그럴 것이다. 최근 비교적 가깝게 지낸 문인 두 분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한 분은 최근에 영별의 손을 흔든 분이고 다른 한 분은 한동안 연락이 없어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 고인의 부인이 전화를 받으면서 지난해 12월 13일 별세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굳이 이 자리에서 익명을 쓸 필요도 없으리라. 한 분은 지난 6월 13일 장례를 치른 정규화 시인이고 다른 한 분은 돌아가신 지 벌써 반 년이 지난 권정석 수필가를 말한다. 그분들의 작품이라든지 깊은 부분에 대해서는 이 자리가 아니라도 전문가들이 다투어 언급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어 피하거니와 여기에서는 지면 사정도 있으므로 내가 그들과 겪은 극히 제한적인 부분에 국한하여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할까 한다.
정규화 시인의 부음은 뜻밖이었다. 월요일 오후 4시가 미처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오전에 『경남문학』 여름호 최종 교정 때문에 만나 시간을 같이 보냈던 이달균 시인으로부터의 전화였다.
"저도 지금 전화를 받고 어마지두해서 우선 연락을 드립니다. 정규화 시인이 별세했다고 합니다. 이규석이라고 정 시인과 자주 만나는 후배 시인이 전화를 해 왔습니다. 동마산병원 영안실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며칠 전 오전에 우리 출판사 사무실에 들렀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정확히 죽기 3일 전인 6월 8일 오전이다. 어쩐지 혈색이 좋았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지금 투석치료를 받고 오는 중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10여 년 넘게 누구나 힘들다고 여기는 중병을 앓으면서도 그는 너무 천연스럽게 잘 버텨주고 있었다. 이제 그는 정상인으로 보이게끔 되었다. 그가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그는 환자였다. 치료받았을 때와 받기 전의 상황이 현격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얼굴 혈색을 보고 건강상태를 대강 짐작하는 지혜를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때 그는 이승의 마지막 인사차 나에게 들렀던 것이란 말인가. 그날 이상하게 이 친구와 식사라도 같이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11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점심 얘기를 꺼냈지만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그도 했던지 시계를 한번 쳐다본 다음 일어서는 것이었다. 앞으로 시간이 많이 있는데 오늘만 시간인가, 그냥 보내기로 하였다.
그는 나가면서 최근에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뒤 알드 원작 최두환 교수의 번역서 『조선통사』를 집어 들면서 한 권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그사이 이미 그 책을 훑어보았던 모양이다. 정가가 38,000원이나 하는 고가 책이다. 한 권이라도 팔려고 애를 쓰는 판인데 공짜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는 환자가 아닌가 싶어 봉투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헤어진 것이다.
이 책은 1700년경의 우리나라 실상을 살펴본 프랑스 신부의 글로 재미있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명이며 동식물의 이름이 중국대륙에만 있고 한반도에는 없는 사실이 많은 점을 발견한 번역자는 혹시 조선이라는 나라가 반도만의 국한된 지역이 아니라 중국대륙 전체가 옛날에는 조선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흥미를 충분히 끌 수 있는 내용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일 수 있다. 정 시인이 이 책으로 하여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자위를 하였다. <이하 생략 전문 참조>
계간 작은문학 제34호(2007년 여름호) 목차
■책머리에│두 사람의 영별을 보며―오하룡
■새발굴 연재│崔行歸의 誥訓 2―尹在根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4
김수돈, 이석우, 김춘수, 고석규, 유신, 장세호, 고두동, 허민
■새연재│경남문단 그 뒤안길 2―강희근
■신작시 모음
고백 1 외 4―고영조
전 생애의 깊이로 외 4―김선희
滿心 1 외 9―김연희
땅 끝에서 외 4―김진엽
어머니 마음 외 4―박래녀
소작인의 가을 외 4―박성웅
길 위의 길 외 2―서인숙
장날 외 6―안한규
엄마 외 4―오삼록
귀향 2 외 2―이부용
콩을 가리다가 외 2―이응인
■근작시조
浮石寺 찾아 외 2―김만수
맨드라미, 불 지피다 외 2―金貞姬
破字로 禪 엿보기 2 외 1―전의홍
■근작시
설날 외 2―강득송
비탄 외 9―김춘랑
나무의 집 외 3―문수현
솔숲에서 외 2―배종애
신내림―성기종
■근작수필
다시 새봄을 기다리며―양해광
마음 가운데 꽃씨를 뿌려야겠다―이외율
東海―이원기
■신작소설
악마―한민
■이처기 시인의 노래기행│노래 따라, 길 따라―이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