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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 선생의
평론 한 편                 



오하룡


문학인의 길을 생각할 때가 있다. 문학을 전업 삼아 매진하는 사람은 아직 우리 나라에선 많은 것 같지 않다. 짐작으로 몇 사람은 되는 것 같지만 그 밖에는 전업이라 하더라도 아예 다른 쪽이 기반이 있던가 아니면 생활의 파탄을 각오하고 나선 사람이 아닐까 한다.

이밖의 대다수 문학인들은 생활인으로서 생업과 병행하여 문학의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판매 부수를 내세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떴다가 지금은 어디쯤 가라앉아 버렸는지 보이지도 않은 문학인의 후일담이 궁금할 때가 있다. 간간이 이름이라도 볼 수 있는가 하면 그처럼 뜨던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도 침잠해 버렸을까 새삼 의아스러울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도 뜨고 있는 문학인들이 있다. 신통하게 여겨질 정도로 10여 년 넘게 명성을 유지하는 분이 간혹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신인급 작가들이 뜨고 있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나름대로 뜰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문장에서나 소재면에서나 참신스러움이 드러나고 있다. 대화체 하나라도 현대의 세태를 반영한 언어들이 톡톡 튀듯이 신선하게 배열돼 있다. 실제 들을 땐 그렇지 않았는데 막상 소설 속의 대화에선 한층 더 발랄하여 읽는 묘미를 새롭게 한다.

내 경험으론 어떤 인기 있는 작가건 그 작가의 작품을 자주 읽다보면 싫증이 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재도 진부해 보이고 그렇게 신선하고 참신해 보이던 문장도 그저 그렇게 평범해지다가 식상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은 문학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고 이의 극복이 궁극적으로 작가로서의 생명력과 직결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뜨던 작가들이 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 신경숙이란 신진소설가의 작품이 뜨고 있다. 나도 그녀의 소설을 읽었다. 신예소설가다운 여러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 독자들이 호감갖게 하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 들어 가장 재미있고 잘 쓴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본지 자문위원이신 원로소설가 박경수 선생에게 언뜻 이 작가의 이야기를 비추고 어떻게 읽으셨는지 소감을 쓰실 수 있겠는지 서신을 통해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책도 보내드렸다.

그랬는데 뜻밖에 선생께선 흔쾌히 그 달필의 친필로 40여 매 넘게 독후감식 평론을 친히 써서 보내신 게 아닌가. 너무 흥감한 일이었다. 선생께선 지금 예순 여덟이시다. 그도 한때 인기소설가로서 뜨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동아일보, 신동아같은 데 장편을 연재할 때는 꽤 문명을 날렸다. 이때는 신경숙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다.

헌데 그 원로 소설가가 애송이 신경숙의 작품을 읽고 애정 넘치는 자상한 관심을 보인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박경수 선생이 이런 유의 글을 쓰신 일이 거의 없다. 신경숙의 소설이 이 원로 작가의 관심을 끌 만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기인된 결과이겠지만 단연 문단의 화제가 될 만한 사건이라 할 것이다.

박경수 선생은 지금 고향 서천에 낙향해 계신다. 신경성 지병으로 건강도 좋지 못하시다. 그런데도 본지의 청을 흔쾌히 들어주신 것이다. 이 서평성 평론 한 편만 하여도 이번호 『작은문학』은 꽤 큰 성과를 얻었다고 자부해도 될 것 같다.



계간 작은문학 제6호(1997년 가을호) 목차


■그리운 시인 최계락의 사진과 시│외갓길 / 꽃씨(1)
■책머리에│박경수 선생의 평론 한 편 ― 오하룡
■원로 동시인 최순애 작품 발굴│오빠생각  외 4
■도리천 신작시조모음 32수│고향 가는 길에서
■시
  大谷里에서 43  외 2 ― 박진환
  고향  외 2 ― 최일환
  누나의 손  외 2 ― 유자효
  가을에는  외 2 ― 김동렬(金棟列)
  코스모스 환상(幻想) ― 방인영
  젊은 날의 초상  외 2 ― 박종해
  원칙  외 2 ― 최명란
  똥바가지의 訥辯  외 2 ― 이나열
■번역시
  그 사람은 가 버리고 ― 하길남, 번역 이승희
  NO TITLE ― by John Berryman, 번역 이승희
■이재금 시인 추모 시선
  추모시 ― 퇴직  외 8
  추모사 ― 오하룡
■다시 읽는 수필│나는 과연 한국인인가? ― 장덕순
■수필│할머니와 꼼밥 ― 권정석
■평론
  신경숙 소설집 『오래 전 집을 떠날 때』를 읽고 ― 박경수
  隨筆의 構成考 ― 하길남
  부성 망실과 찾기의 변증법 ― 서석준
  전쟁기 부산지역 동인지―『新作品』― 송창우
■다시 읽는 명작│귀여운 여인 ― 체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