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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경남은 노산 선생에 대한 문인들이 견해를 담은 단행본 <가고파 내고향 남쪽바다>(경남시조시인협회 편)를 간행하여 보급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연장선상에서 지난 2019년 4월 11일 저녁 마산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합포문화동인회(이사장 강제현)의 485회 합포문화강좌에 강사로 출연한 허성무 창원시장에게 이 입장문을 전달하였습니다.  합포문화강좌는 노산 이은상 선생의 제안으로 그의 후배인 조민규 씨 등이 맡아 지금까지 진행하여 왔으므로 이 행사장에서 이 입장문의 전달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오하룡

 

 

국가유공자, 애국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에 대한 문인들의 입장

-허성무 창원시장님께

 

우리 문인들은 일부 시민단체가 문제 삼는 국가유공자이며 애국시인인 노산 이은상 선생에 대한 명확하지 않은 사실 즉,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정권 등 군사정부에 대한 협력, 3.15의거 폄하에 대해서 이들 단체의 왜곡된 억지 행동에 강력 항의하며, 다음과 같이 우리 문인들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 행정 당국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처를 요망합니다.

 

1. 노산 선생은 국가의 검증을 받은 애국지사이며, 위대한 민족 시인입니다

 

노산 선생의 인물됨은 그의 약력이 말해 주듯이 국가가 인정한 국가유공자로서 대한민국국민훈장 무궁화장, 대한민국건국포장 애족장을 수상하였으며, 작고했을 때는 문화훈장 1등급 금관문화훈장 추서와 함께 국가가 지원하는 사회장으로 모셔져 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국가가 이런 예우를 할 때는 철저한 검증을 거치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처럼 국가가 인정한 인물을 기리는 일이 무슨 문제이며, 그가 쓴 문학작품이 애독되고 그가 노래 말을 쓴 가곡이 널리 불리어지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지 우리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행정당국은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행동에서 벗어나 국가가 인정한 인물인 노산선생의 공적을 선양하고 재조명할 뿐만 아니라 지역문화자산으로 기리는 사업을 자신 있게 펼쳐나가기를 요망합니다.

 

2. 문학작품으로서 <가고파>의 국내외적 위상

 

그의 대표작 <가고파>를 예로서 살펴보면, 노산 선생의 연치 30세인 1932년 문학작품 <가고파>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선생의 친구인 양주동 선생이 평양 숭실대에 근무할 당시 그의 제자인 김동진 작곡가에게 소개하여 같은 해 가곡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로서 성악가 이인범 등에 의해 일본은 물론 미국 등 우리 동포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불러져 거족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해방 후에는 교과서에 실려 범국민적 애창 가곡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도 해외를 다녀온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우리 동포가 사는 사회에서는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과 쌍벽을 이루며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 일 순위로 아리랑과 함께 <가고파>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사실은 <가고파>가 일찍부터 우리 국민정서의 근간이 되고 이미 고전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산을 일찍이 문향, 시향, 예향이라 하는 것은 이런 노산 선생의 문학과 노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의 고향 마산으로서 어찌 <가고파>를 사랑하고 기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욱 <가고파> 외에도 <옛 동산에 올라>, <성불사의 밤>, <고향생각>, <그 집 앞>, <사우(동무생각)>등 선생의 가곡은 또 얼마나 많이 사랑받고 있습니까.

 

3. 친 독재라니? 그것은 애국자인 그의 신념을 간과한 억지 트집입니다

 

1903년생인 노산 선생이 살던 시대를 어떤 필설로 제대로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견뎠고, 더욱 그는 일제 암흑기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두 번이나 옥고를 치루기도 한 독립투사로 유치장 에서 광복을 맞이하였습니다. 광복이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민족 분열주의자들과 갈등을 겪었으며, 마침내 동족끼리의 전쟁참화의 분단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습니다.

힘없는 나라 백성으로서의 고통을 절감했던 그의 확고한 국가관은 여기서 확립된 것으로, 강한 나라를 지향하면서 독립운동가인 이승만의 초대 정부를 지지하고, 비록 강압적 혁명으로 집권했으나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에 부분적으로 협조하게 된 상황은 어디까지나 그의 애국적 신념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인 것입니다.

그가 저 중국고사의 백이숙제나 고려말기 고려동 사람들처럼 특정정치에 초연하지 않았다고 하여 양지를 지향한 기회주의자로 몰아세운다면 오늘날 4~5년마다 바뀌는 지금의 정치적인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억압의 일제와 독립 후 6.25사변을 겪는 등 백척간두에 선 조국의 운명을 지켜보며 살아온 선생의 통한의 일생을, 광복 이후 세대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을 우리는 아프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날 사랑받는 그의 많은 문학작품 중 상당수가 일제 암흑기에 쓴 작품임을 기억하며, 더욱 오늘 날 성웅으로 받들어지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 정리된 것도 박정희 정부 때 선생의 협력으로 이루어 진 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방치되다시피 한 아산 현충사를 비롯, 통영 한산도의 제승당 등 전국의 흩어진 충무공 유적지가 비로소 정비된 것이 다 이 때였습니다. 선생은 일찍이 <이 충무공 일대기(1946)>, <국역주해 이 충무공 전서(1960)> 등으로 이론적인 바탕을 마련했으며, 그 이후에는 <국역주해 난중일기(1968)>, <성웅 이순신(1969)>, <태양이 비치는 길로(1971)> 등의 저서를 통해 이 충무공의 진면목 알리기 국민교육에 앞장섰던 것입니다.(이근배 시인, 중앙일보 2003.2.12. 노산의 충무공 사랑)이런 선생의 업적은 간과하고 단순하게 친 독재만 부르짖는 일부 사람들의 행태는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우리는 마음 아프게 묻고 싶습니다.

 

4. 그는 3.15 정신을 폄훼하지 않았습니다

 

살펴보면, 3.15의거는 처음에는마산사태’,‘마산사건으로 발생하여 4.19혁명으로 이어지고, 정권이 바뀌면서의거로 그 성격이 명확히 규정지어졌습니다. 3.15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노산 선생이 마산데모를 걱정하면서 불상사를 언급한 것은, 분명히 당시 자유당 정부의 부정선거로 하여 마산사건이 일어난 것을 말한 것으로, 고향 마산의 양민과 경찰과의 대치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시민 학생들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고,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문제가 수습되기를 바라는 원로로서의 염려에 나온 언급인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산의 언급 핵심은 그해(1960) 조선일보 415일자 6개 항목의 설문(앙케이트)’에 대한 답변에서 나왔습니다.

그 항목 제1항의 질문은 마산사건이 촉발된 근본원인은 무엇으로 보십니까?입니다. 여기에 대해 노산 선생은 도대체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 낸 불상사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선생은 당시 자유당정부가 합리적이지 않은 정치를 하고 불법적인 선거부정을 저질어서마산사태라는 비극적인불상사가 일어난 것으로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답변에는 선생의 평소 자유당정부에 대한 비판인식이 담겨있다고 우리는 봅니다.

그런데 문제의 시민단체는 오늘의 시각에서 “‘3.15의거인데 왜 불상사라고 거두절미하여 억지를 부리며, 흡사‘3.15 의거불상사로 언급한양 왜곡하여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 ‘3.15의거를 불상사라고 했다며3.15의거 폄하로 몰아가는 가는 것입니다. 우리 문인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당시 자유당 정부의 잘못으로 불상사가 일어났다는 뜻이라고 해명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전기 시민단체는 못 들은 척 하며, ‘3.15의거 불상사라는 왜곡된 앵무새 식 억지를 쓰며 노산 선생 헐뜯기의 철면피한 행태를 계속 하는 것입니다.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무모한 흥분을 나열한 트집도 이의 연장선상에서의 왜곡으로, 이들의 문장 해독력까지 의심되는 억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산선생 3.15논란 폄하논란 진의 분석에서 자세히 해명되고 있음<단행본 내 고향 남쪽바다/ 250>)

따라서 이제라도 노산 선생의 언급은 사실그대로 3.15의거의 폄하또는 폄훼가 아닌 걱정과 염려 이상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를 3.15의거를 부정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행동은 중지해야 합니다.

일부의 불만은 노산 선생이 당시 분기한 시민의 편에서 데모를 부추기는 언행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을 탓하고 있는 듯한데, 보통 사람들의 몸싸움도 우선은 말린 후, 그 옳고 그름을 따지는 우리의 정서로 보면 노산 선생의 언행은 조금도 잘못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 가지 예로 서울 수유리의 4.19 학생 비문은 노산 선생이 썼습니다. 3.15의거 연장선상의 4.19입니다. 만약 노산 선생이 3.15를 폄하한 장본인이었다면 그 예민한 시대에 4.19 의거 관계자들이 그에게 이 비문을 맡겼겠습니까? 이 한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노산 선생의 3.15에 대한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확고하게 살필 수 있다고 우리는 봅니다.

 

5. 2005년 마산시의회의 마산문학관 결정으로 노산의 평가가 끝났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살펴보면, 일부(특히 경남도민일보)에서는 2005<노산문학관><마산문학관>으로 결정할 당시 마산시의회가 1314로 결의한 것을 완전무결한 결정인 양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경직된 사회분위기에 편승한 일부 시민운동가들에 의해 없는 친일까지 문제 삼아 정상적인 논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진 정황이 짙습니다. 우리는 그때 친일혐의만 거론되지 않았더라도 그런 결정이 났으리라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라도 선생에 대한 평가가 바르게 이루어지게 창원시의회는 재의결을 통해서 노산문학관이 설립되도록 결정하기를 간곡히 요망합니다.

 

6. 그의 노래 <가고파>와 그의 문학작품을 제대로 접해보기 바랍니다

 

살펴보면, 노산 선생도 신이 아닌 이상 실수한 언행이나 행동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작은 흠결이 있다고 하여 그의 삶과 사유방식 전체를 문제 삼는 것은 민주시민이 취할 수 있는 논리적 태도가 아닙니다.

심지어 일부 시민 중에는 노산선생이 고향 마산에 대해 남긴 것이 무엇이 있는가 묻는 걸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노산 선생의 마산을 소재로 한 훌륭한 문학이면 되고 그 문학 중 많은 작품이 가곡이 되어 불리어지면 되었지 그 문학 그 가곡 말고 더 무엇을 남겨야 만족하겠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다른 업적은 젖혀두고, <가고파>만 가지고도 그의 고향 사랑의 애향역할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노산 선생을 잘못알고 궁지로 모는 사람들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가고파>를 제대로 한번 노래 부르면서 그의 문학 속에 제대로 침잠해 보기를 권합니다. 그가 얼마나 탁월한 애국자이고 민족주의자이며, 훌륭한 문학가인가 그 작품 속에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함부로 말하는 사람 중에는 마산 고향을 한 번도 떠나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많음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노산 선생이 너무 가까이 있어 그를 겉도 속도 제대로 모름으로써 오히려 그를 다른 사람보다 이해하지 못한 경우는 없는지 돌아 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7. 노산 선생은 문인다운 일생을 살았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지금까지 노산선생을 논란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거의 허구에 불과한데도 한번 잘못 와전되면 바로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기서도 알게 됩니다. 최근 알려진 사실로 경북 문경의 김시종(1942-) 시인은 3공화국 출범 때 박정희 대통령이 노산 선생을 국회의장으로 권유했으나 노산 선생은 문인으로 살겠다고 끝내 사양하였다는 비사(秘事)를 밝혔습니다.(대구신문 2014.6.29) 이것은 노산 선생의 일생이 얼마나 권력에 초연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라 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노산의 문인다운 청렴한 행동이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노산 선생을 이제라도 국가가 인정한 국가유공자, 애국지사, 애향문학가로서 그 업적에 합당한 위치에 바로 자리매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우리는 시민이면 누구나 검증이 필요한 인물에 대해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시민 된 자의 당연한 의무이며 권리라고 인정합니다. 노산 선생에 대한 일부 시민단체의 행동도 이런 차원에서 살피면 충분히 이해되고 존경할만한 행동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그런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나면 그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이들의 덕목이 되어야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노산 선생의 검증을 나선 일부 시민단체는 앞에서 살피듯 우리가 분명히 진실을 제시했는데도 사과는커녕 트집성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제라도 그들은 그동안의 잘못을 사과하고 노산 선생의 명예회복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야 말로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올바른 자세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끝으로 창원시장님께 건의 드립니다. 잘 아시다시피 통영시는 통영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데도, 친북인사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윤이상 선생을 모셔 와서 통영의 문화자산으로 통 크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자체단체장의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한 전형으로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이에 비하면 문제랄 것도 없습니다. 극히 트집 성 반대자들이 있을 뿐입니다.

창원시장님의 통 큰 결단을 촉구합니다.

 

<오하룡(마산문협 고문) 시인 초, 한양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윤재근, 시조시인 김복근 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