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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크지 파도소리로 굽이쳐봐도 느낌표에 남는 사량아 사랑아/ 그리운 파도소리 모임회
작고시인 추모시 1
운초 박재두
목련
별이 있어서
여울물에
난류
늪의 뇌임
꽃과 찬양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아가(雅歌)
곡예
통영포구
연보
작고시인 추모시 2
운대 차한수
신들린 늑대
목어
새 떼
베짱이가 울면
뜨거운 달
구두 한 짝
군말
돌쩌귀
거울을 보면
그림자
연보
차영한 시인
샤덴 프로이데
뼛속 푸른 불꽃
문득, 햇살이 쓰는 편지보다
여행하는 레일 위의 눈과 귀
몸과 옷의 오후
비내릴때도 눈물꽃은 피다
너무도 달콤하다
장자론
티핑포인트
깨꿍스런 날씨
드레싱 하는 바다
수평선 오후
물자배기에 보름달은
거문고 뜯는 파도소리
하얀 메모지에 웃음일기 쓰는 아내
파랑주의보
태양이 빛나는 바다
물망초, 한려수도 그 쪽빛바다
사량이여 나의 첫 사랑이여
바람과 빛이 만나는 해변
양지리 사람
박시랑 시인
대손상가
사랑병진단서
바다를 고무래질 하는 달
허공에 묻혀
바람과 꽃의 사랑후기
우화(羽化)를 기다리며
고향이 내게 남아
언저리 꽃
땅위에서 새움 트느라
돌배기와 파출 엄마와
달맞이 꽃
기도쪽으로 기우는사람
해저의 봄을 물고오는 까나리들
해안가의 통굄목
음복(飮福)
새들의 무리 짓
눈 쌓이는 바닷강 개들이
35학년
막자
달달한 나라를 아시나요?
담배연기의 길을 따라
박상진 시인
철딱서니
숲속의 아침
인연
바다 15
바다 16
다짐
여름 그 자리
바람의 노래
고임돌
도둑게
돌담에게
대숲에 이는 바람
빗소리
구멍난 가마솥
하늘에 묻는다
옥녀봉을 보며
가을의 문턱
묻혀버린 꿈
엔젤호의 뒤안길
나룻배의 추억
동강에서
나도 한마디
◑ 나도 한 마디. 01
거서기 아이가?…머서기제!
차영한
친숙한 것들이 낯설기만 하고 뭔가 허전해진다. 그러나 회상의 언덕에 앉아보면 고향은 하나하나가 훤하다. 사랑하던 동네 사람들 목소리도 들려온다. “거서기 아이가?…머서기제” 반가워서 손잡고 흔든다. 그 중에서도 문학에 뜻을 둔 운초, 운대 형님들의 목소리도 섞여 있다. 그러니까 우리 셋은 성장할 때 각성바지가 없이 형님 동생하면서 서로 다독여주고 어려울 때 자주 손잡아 주었다. 그 중에서 잊지 못하는 운초 형님은 청직하고 인정 많고 자상했다. 통영중학시절부터 한 방에서 자주 지내기도 했다. 인정 많고 근면한 운대형님도 우거하는 곳으로 등 밀어 형님 집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서로 아껴주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형제 같은 우리를 갈라놓은 간자들로 하여금 서로 멀어지는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는 서로 전화를 걸어 원래 “그런 놈”이라고 오해를 풀어냈다. 참으로 살쾡이처럼 이간질 잘하는 놈이 우리 셋만 그랬을까? 그럼에도 끝까지 변함없이 길흉사도 챙기면서 안부를 묻고 오가기도 했다. 보고 싶다! 다시 한 번 삼가 두 분의 명복을 빌고 빈다.
그러던 중에 고향 후배시인들과 함께 통나무 같은 어진 섬〔樸島〕에 있는, 프로이드가 말한 심연의 한 지점인 “원초적 장면”을 펼치는 첫 시집 출간에 공감했다. 그래서 우리 3명은 침묵을 착란 시키는 언어로 고향 바닷새처럼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2021년 07월 상한 초삼일 통영시 봉수1길9<한빛문학관> 집필실에서 쓰다.
◑ 나도 한 마디⦁02
시인 타고르는 48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여
박시랑
이 시집을 꾸민 시인들은 남녘 조그만 면 단위의 사량 상도 사량 하도 수우도 등 3 섬으로 이루어진 인구 1천5백여 명 남짓의 곳에서 태어나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시인들이다. 작은 남도에서 작고하신 두 분 시인을 포함하여 10명의 문인, 즉 박재두 시조 시인, 차한수 시인, 차영한 시인이며 문학평론가, 이종만 시인, 이적 시인, 박시랑 시인, 박상진 시인, 김진엽 시인, 박진임 문학평론가, 차진화 시인 등이 나왔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고도 흥미롭고 어쩌면 축복이 아닌가 싶다.
성경에 이르기를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대받는 이가 없다’는 말처럼 고향을 떠나야 비로소 뭔가를 이루는지 또한 단 한 사람도 고향에 거주하는 시인이 없음은 모두가 선지자의 반열에 들 것임의 예시인가?
통영의 선배 예인들도 대부분 객사를 면치 못했다. 윤이상 작곡가를 비롯하여 수많은 예인들이 타지에서 흙으로 돌아가셨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고 인심도 간데없는 현실의 매정함이 그곳에도 물들어 있었나? 아울러 여기 문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이 늦깎이 시인들이라는 점이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48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여 시성으로 추앙받는 시인이 되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이 중 누군가 시의 역사에 획을 긋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시작이 반이라고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우리나라는 본질과 외질 혹은 공과 사를 혼동함으로써 한 사람이 가진 개인의 자질과 역량이 진흙탕에 묻혀 무화된 일들이 너무 많았다. 너 죽고 나 살 자의 막가는 싸움에는 친구도 친척도 가족도 무시되는 오늘날의 현실에 차마 이것이 창칼 없는 전투장이 아닌가 싶다. 이재로 몇 술의 밥을 뜨겠다고 정치를 끌어들이고 갖은 거짓말과 뻘구덕을 파고 있는 악질적인 마귀의 인피들이 우리 고향에는 없으리라 단언한다.
작은 섬 사량이라는 고향을 매개로 부정기간행시집이나마 처음으로 발행하게 되어 참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반갑고 시집 발행을 위해 연로하심에도 수많은 역경과 고통을 너털웃음으로 넘기시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차영한 선배 시인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전한다. 이 어찌 축하하지 않으랴, 오래오래 지속되리라 확신한다. 감사합니다
-2021년 07월.
◑ 나도 한마디. 03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절
박상진
10년에 걸쳐 6명의 가족을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내 고향 사량도의 어린 시절. 유난히 고달프고 힘겨웠지만, 세월 지나 돌이켜보면 그런 사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겠지요. 비록 행복했다고 볼 수 없는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절이었고 추억의 책장을 한 장씩 넘겨보며 혼자 미소 짓기도 합니다. 바짝 마른 논바닥, 싸리나무 덕장에 물 쏟는 소리도 그립고 초저녁, 나락 잎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맺힌 물방울에 어린 영롱한 달빛도 보고 싶습니다. 사량도에 관한 시를 많이 쓰는 것도 그때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의 산물이겠지요. 고향에 갈 때마다 변해가는 모습에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이왕에 변하는 거라면 아예 육지와 연륙교가 놓이길 희망합니다.
-2021년 07월 부산에 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