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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을 곡진한 선율로 노래한
노산 이은상
이처기 시조시인, 전 경남시조시인협회장
노산 가곡의 밤 음악회가 2017년이면 제33회가 된다. 〈가고파〉 〈탄금대〉 〈그 집 앞〉 〈봄처녀〉 〈옛 동산에 올라〉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노래가 되어 연연히 불리고 있다. 2016년 지난해에는 숙원이던 노산시조문학상이 제정되어 제1회 시상식을 가짐으로써 우리나라 문학의 별 노산을 기리는 사업이 빛을 보게 되어 다행으로 여긴다.
합포문화동인회(회장 조민규)와 노산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김교한)의 노고에 큰 감사를 보낸다.
노산은 천부적 문필가로 시, 시조, 수필, 평론, 기행문, 비문, 교가, 가사 등 여러 장르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애국자로 독립운동가로 민족정신과 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기원〉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고지가 바로 저긴데〉, 자연과 국토에 대한 사랑이 깃든 〈피어린 600리〉 〈조국강산〉 〈성불사의 밤〉 〈탄금대〉, 그리고 사향과 효행심이 깃든 〈가고파〉 〈옛 동산에 올라〉 〈효대〉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 〈사우〉 등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노산의 폭넓은 작품 세계 때문에 쉽게 지나치기 쉬운 노산의 연정시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연정을 곡진한 선율로 노래한 노산 이은상’이라고 글의 제목을 부쳐 보았다.
다음 작품들을 보면 선생은 순진 무구하고 애정이 깃든 낭만주의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언어의 아름다움을 미화하는 탁월한 마력을 지닌 천부적 작가임을 알게된다. 애정과 연정을 노래한 문인 묵객이 얼마나 많은가! 청마 유치환의 〈낮달〉, 김소월의 〈진달래 꽃〉, 박재삼의 〈내 사랑은〉, 조선조 홍랑의 〈묏버들 가지 꺾어〉,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등 수많은 문인들이 연정과 사랑시를 남겼지만 노산 또한 못지않은 자기만의 서정으로 연정을 노래한 분임을 그의 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집 앞〉을 음미해 보자.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오늘도 비나리는 가을 저녁에
외로이 이 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 일을 잊어버리며
울 밑에 빗줄기를 세며 갑니다
이 작품은 기교가 없으면서도 쉽게 전해오는가 하면 순진하고 너무나도 신선한 언어구사의 순수미에 젖어들게 한다. 때묻지 않은 유년시절 첫사랑의 울렁거리는 심리 묘사를 어떻게 저리 세밀히 표현할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잔잔한 절창이다.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져 있다’는 그리운 마음 두근거리는 마음 얼굴이 달아오르며 부끄럽기까지 한 착하고 애띤 심연의 묘사를 그린 한 편의 동화이다.
〈사랑〉에 들어가 보자.
탈 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디 마소
타고 다시 타서 재 될 법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쓸 곳이 없소이다
반 타고 꺼질진대 아예 타지 말으시오
차라리 아니 타고 생나무로 있으시오
탈진대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소이다
생나무가 불타면 동강이 남는데 그 동강은 마침내 재가 된다. 그 재도 태워버려야 진짜 사랑이다. 사랑의 정념은 영혼 속에 파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랑의 극치를 읍소하고 있다. 혼을 너머 초혼의 경지에 들어야 사랑이라 할 수 있다고 한 노산의 사랑이야말로 진실한 사랑이다.
단행본 <가고파 내고향 남쪽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