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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한 채로 살아온 어떤내 얼굴

오하룡 시집 <내 얼굴>론

 

김동민(소설가문학평론가)

 

1.

 

사계(四季)의 용() 가운데 가장 용다운 용은 어느 용일까. 아마도 여름용(夏龍)’ 일게다.

무릇 용이라고 하면 우선 물이 연상되고 또 물의 계절이라면 여름이 최고 제격일 테니까. 봄용은 아무래도 덜 성숙한 느낌을 주고 가을용은 소진해 가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 아래 갇힌 용은 상상만으로도 답답하다. 그에 비해 푸르게 넘치는 물속에서 마음껏 노닐거나 비상하는 용이야말로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오하룡 시인 필자는 그의 6번째 시집 내 얼굴에서 그야말로 용이 물을 만난것과 같은 문()의 기()를 느꼈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십년 세월하고도 한 해를 더 벼르고 벼르다가 잘 익은 밤송이 절로 벌어지듯 그렇게 세상에 나온 여의주의 찬연한 눈부심, 절대 난해하지 않으면서 결코 가볍지 않은 시편의 풍작(豊作)을 보게 된 것은 독자들의 복이다.

갈수록 냉혈한이 돼 가는 뻔뻔한 현대인의 군상들 속에서 홀로 가슴팍에 세상 밑바닥 데울 모닥불 지펴놓고도 도리어 부끄러움에 타는 얼굴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응인 시인은 내 얼굴에 수록된 시들을 순리의 길을 가는 시라고 뭉뚱그려 말하면서 평범해서 예사롭지 않은시라고 한 바 있다. 이것은 오 시인의 시편들이 억지를 부리거나 시쳇말로 튀려고(?) 하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시인 오하룡은 예사롭지 않은 내 얼굴의 소유자라고 명명하고 싶다. 우선 그가 하고 있는 일 생업이라고 하기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만 해도 그러하다. 요즘처럼 대한민국 온 출판계가 못 살겠다 아우성치는 판에도 꾸준히 책을 찍어내는 저력이 놀랍고, 게다가 남의 작품집만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시집까지 선보이는 창작열은 사뭇 두렵기까지 하다.

오 시인은 역작 내 얼굴책머리에서 나는 생래적으로 소인 나부랭이가 되어선지 중용적이거나 객관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라고 적고는, 처음에 시집 제목을 따뜻한 시선으로 하려 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바, 이를 역으로 적용시켜 본다면, 그의 시작(詩作)들은 하나같이 중용과 객관의 따스한 눈빛으로 독자를 흡입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오하룡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모두 93편의 만만찮은 분량이 담겨 있는데 마치 아흔셋의 빛깔을 빚어내는 무지개 같이 각각의 독특한 시향(詩香)을 뿜어내면서도 또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시의 산맥을 형성한다. , 오 시인은 우리 문단에서 그만의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다는 뜻이다.

다소 비관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요즘 시대는 독자가 책을 멀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명색 시인이 시를 읽지 아니하고 소설가가 소설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평론가가 평론을 멀찍이 밀치는 추세에 와 있다. 다시 말해, 시인이나 작가 그리고 평론가는 오직 자신의 창작물이 최고라고 맹신한 채 청맹과니가 돼버리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외곬으로 빠져 독자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반해, 오 시인의 시편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내 얼굴을 보듯 아주 익숙하고 친근하고 또 보고 싶은 기분에 젖게 이끄는 마력을 지닌다. 단언컨대 이것은 오 시인의 삶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남의 책을 출판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무수한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옥(좋은 글)과 진흙(나쁜 글)을 가릴 줄 아는 혜안이 절로 길러졌을 것이며, 그중 빛나는 정수(精髓)를 골라내어 오 시인 자신만의 독특한 시의 텃밭을 일궈내는 문복(文福)을 누릴 수 있는 건 정해진 이치가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 모두 오 시인이 초대하는 어디선가 얼핏 바라보거나 스치기나 했을 뿐인’ ‘한 채의 외딴집외딴집 한 채뜰로 들어서서 어떤’ ‘내 얼굴내 얼굴을 만나보자. ‘축담에 당당히 올라설 우리들의 기둥들그리운 환영과 더불어. 그러면 외딴집 주인은 방문객들을 위해 극적인 젊은 날의 한 페이지를 열어 주생환리라.

 

2.

 

오하룡 시인의 시를 두고 우선 첫손가락 꼽을 만한 특장(特長)을 들라면 장복산(長福山)’ 같은 높이와 곰절 골짜기같은 깊이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고독한 섬 같은 인생살이에서 서로를 가슴으로 껴안는 뜨거운 파도의 정이 넘치고, 고단한 삶을 위무(慰撫)해 주는 암자의 잔잔한 휴식이 마음으로 통하는 혈류(血流)의 손을 내민다.

먼저 그의 시적 높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장복산 등정 길로 나서보자.

 

육순 중반에 들어/장복산 그늘에 앉아보네

//그 봉우리 그 등성이/여전히 눈부시네

(중략)

//이제 사라진 옛길/언뜻 보이다 역사 되네

장복산 바라보며 한숨 짓네/아무 말 없이 우뚝 높이 앉아

/무슨 일인들 모르리/집안 일 바깥일 속속들이/나랏일인들 모르리

-장복산 한숨중에서

 

내 사는 곳에 장복산이란 명산 하나 있는데요 어릴 때부터 나는 이 산이 무슨 영험이라도 있는 양 한참씩 바라보고 손 모으고 견뎌왔는데요/(중략)/어떨 때 이상하게도 내 어릴 적 산지기 의붓아버지 음성 같은 우렁우렁 울리는 음성으로 용아, 초조하게 굴 것 없다 이리 사나 저리 사나 사람 한평생 별것 아니제

-장복산중에서

 

아는 것이라곤 그때나 지금이나 장복산과 정병산과 불모산이 서로 형제처럼 마주하고 푸른 산빛을 나누는 것과

-창원 살기중에서

 

막상 거기에는 비()와 이웃하여 정자나무 한 그루뿐 낯익은 아무것도 없나니 매번 멍청히 비면(碑面)이나 쓰다듬고 아득히 장복산 자락이나 바라보다 돌아서나니

-실향 불망비중에서

 

장복산과 정병산은 호수인 양 서로의 그림자를 서로에게 드리우나니 거기에는 맨 먼저 시골 중의 시골이던 창원이 어느 한 순간 어지럽게 먼지 피워대며

-역사중에서

 

그렇지만 그 냇가에서/지금도 아이들/여름 풀대처럼 자라고

/그런 아이들 뒤에/저 늠름한 장복산/어른처럼 지킨다는 사실 알지

-장복산은 알지중에서

 

시인은 육순 중반의 나이로 장복산 그늘에 앉아본다. 여기서 산그늘이야말로 시인에게 있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일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노라면 스산한 바람이 스치는 듯 하면서도 머리를 대고 가만히 눕고 싶은 안온한 지난 기억들의 언덕 같은 것, 어쨌거나 세월의 물레는 끝없이 돌아가고 올려다보는 장복산 봉우리와 등성이는 여전히 눈부신데 그리운 그날들은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 버렸다.

시인은 한숨을 짓는 한편으로 어릴 적에 들었던 의붓아버지 음성 같은소리를 기억해 낸다. 사람의 한평생은 어떻게 살든 결국 별것 아니라던 이야기를, 여기에도 오 시인의 시편이 빚어 내는 미덕이 살아 있다. 막막한 삶 앞에서 초조해 하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한편 장복산은 다른 산들과 더불어 형제처럼 마주하고 푸른 산 빛을 나누기도 하고, ‘호수인 양 서로의 그림자를 서로에게 드리우기도 한다. 장복산 있는 고장이 갈수록 낯설게 변해 가고 어지럽게 먼지 피워대는 오염의 도시로 바뀌어 가도 시인은 결코 비관적으로만 흐르지 아니한다.

그것은 여름 풀대처럼 자라는 아이들이 있고, 장복산이 아이들을 어른처럼 지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정성과 역사적 안목이 동시에 엿보이는 대단한 시심(詩心)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두 손 모으고 명산 장복산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과 같은 심정이 되어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영험한 순간 앞에 몸을 떨고 만다. 우뚝 높이 솟아 있는 장복산처럼 오 시인의 시는 늠름한기품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그의 시적 깊이를 짚어낼 수 있는 곰절 골짜기로 내려서고자 한다. 장복산을 노래한 일련의 시들을 높이 자라는 여름풀대로 비유할 수 있다면, 곰절을 읊은 이 시들은 우리 가슴 저 가장 깊은 곳까지 두레박을 내려 한 방울이라도 그냥 흘려버릴까 봐 조심조심 길어 올리는 명징(明澄)한 생명수로 볼 수 있겠다.

 

맑고 밝고 투명한 바닥 보이는 저 통영 앞바다 한려수도 물빛 닮으며 가자 저 곰절 깊은 골짜기 사람 발길 덜 닿은 외딴 곳에 핀 한없이 해맑은 한 포기 산꽃 닮으며 가자 거기 따스하게 내리쬐는 환하고 따뜻한 햇살 닮은 마음 가꾸며 가자

-다시 다짐하자중에서

 

육이오 동란 직전이었지 곰절 골짜기 어디쯤/아무도 모르게 몰살당한 주검의 끔찍한 소문/(중략)/휴일이라고 무슨 기념일이라고 놀이 삼아/그대들은 곰절 골짜기 좁다고 찾아들지만/끝내 광인 되어 머리 풀고 배회하던 형수 모습/지금 내 시야 막으며 드러나는 검은 구덩이

-곰절 골짜기중에서

 

곰절에 가면/물빛 같은 우리 어린 날/거울처럼 비치느니

/솔바람 소리 속에/산새 소리 속에/꽃빛 같은 우리 어린 날

/꿈속처럼 되돌아 보이느니

-곰절에 가면중에서

 

시인은 다시 다짐한다. ‘맑고 밝고 투명한한려수도의 물빛, 곰절 깊은 골짜기 외딴 곳에 핀 해맑은 한 포기 산꽃, 거기 환하고 따뜻한 햇살,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참으로 고운 심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다짐이 아닐 수 없다.

곰절 골짜기는 아름답고 그윽한 그런 곳은 아니다. 민족상잔으로 몰살당한 주검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요새 사람들은 그저 곰절 골짜기 산행이나 즐길 뿐 그 아픈 역사를 잊어가고 있다. 이것을 한탄하는 시인의 시야를 막는 것은 검은 구덩이이다. 지극히 적절한 비유가 눈을 끌고 기꺼이 고통으로 점철된 한 시대의 증인으로 서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그런데 한층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시인의 그 비극이 현장인 곰절을 티 없이 해맑은 동심의 눈으로 노래한다는 사실이다. 물빛 같고 꽃빛 같은 어린 날들이 거울처럼 비치고 꿈속처럼 되돌아 보인다고. 그리하여 고통과 비탄 어린 곰절 골짜기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아련한 옛 추억의 시간으로 숨쉰다. ‘곰절 골짜기 좁다고 찾아드는 어른들과 어린이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곰절이 곰절이라는 그 이름만큼이나 이채롭다.

 

오 시인의 상상의 날개는 하루에 구만 리를 난다는 대붕(大鵬)의 그것만큼이나 크다. 어느 새 그는 고립된 작은 섬에서 드넓은 대양과 뭍을 향해 띄울 인간애의 조각배를 만들고 있다. 산과 골짜기를 잠시 떠나 그가 손짓해 보이고 있는 섬들을 향해 나아가 보기로 한다.

 

거제도는 어디 없이 조금만 나가면 풍광 수려한 섬이라서 가만있어도 세상 좋은 경치란 경치 다 구경하는 기분인데/(중략)/그 무엇도 본 것 없고 새긴 것 역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쩌자고 어디선가 얼핏 바라보거나 스치기나 했을 뿐인 외딴집 한 채만 못 견디게 삼삼 거리나니

-외딴집 한 채중에서

 

여기는 섬이다/나는 지금 섬에 와서 자고 있는 거다/마음에 자꾸 되새겨야 겨우 섬이라는/자각이 드는 것을 느끼며/(중략)/그런데 바로 잠들지 못하고/한 가지 상상에 사로잡히는 걸 어쩌지 못하네/이 섬에 처음 발디딘 사람은 누구였을까

-육지도중에서

 

그러나 이 또한 막상 가까이 접해 보니 싱거워라 소리 절로 난다 그 섬에 언제 갈 수 있을까 달력에 인쇄된 사진 속에서 한 번씩 바라보던 섬 그 바다 태평양 나도 언제 가까이 볼 수 있을까 하다가 오늘 그 소원 풀고 보니 이상하게 허전한 생각 들고 새삼 누군가 같이 걷다 나만 홀로 떨어진 기분

-소매물도중에서

 

오 시인이 머무는 섬들은 절대 낯설지가 않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이름난 섬도 거대한 섬도 아니다. 그저 우리들에게 다정한 이웃 아저씨같이 친숙하게 다가오는 그런 섬이다. 거제도와 욕지도와 소매물도 모두가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뒤에서도 밝혀지겠지만 이것은 그가 가까운 이들과 가까운 곳은 누구보다 사랑하고 위한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특히 우리를 감동케 이끄는 시가 외딴집 한 채이다. ‘풍광 수려한 섬이라서무척 경치가 좋은 거제도인데도 시인의 눈에는 어쩌자고정말이지 어쩌자고 어디선가 얼핏 바라보거나 스치기만 했을 뿐인 외딴집 한 채만 못 견디게 삼삼거리는가.

이 외딴집 한 채야말로 시인 오하룡에게는 모든 것이 아닐까. 그가 경영하는 출판사일 수도 있겠고 아내와 아들이 있는 집으로 보아도 무방할 테고 나아가 그의 삶 전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비유컨대 그의 외딴집 한 채는 온 우주와 통하고 있다고나 할까. 시인은 그곳에서 나를 보고 너를 보고 우리 모두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욕지도에서 그 섬에 처음 발 디딘 사람이 누구였을까 궁금해 하기도 하고, 소매물도에서는 막상 와 보니 이상하게 허전한 생각이 들고 나만 홀로 떨어진 기분이라고 고백한다. 이에 누구든 아, 이런 감정, 그렇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오 시인의 시는 모든 독자들에게 내 얼굴그 자체라는 얘기다.

좀 진부하고 무책임한 소리 같지만 사람이 산다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사람은 처음 어느 곳에서 왔으며 어디에 맨 처음 정착했고 나아가 그렇게 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화두를 안고 한평생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존재인 것임을 시인은 이미 간파하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선비(先妣)에 대한 정은 참으로 각별하여 세상 모든 자식들로 하여금 때로는 울먹이게 또 때로는 통곡하게 만든다. 오 시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콧등을 시리게 하는 내용들이다.

 

모처럼 모자 단 둘이 집에 있던 날/어쩐지 천지 평화롭고 햇살 그럴 수 없이 따사로와/마당의 몇 그루 나무의 숨결까지/선명히 들릴 것 같은 날/우둔한 이 아들도 어떤 예감 같은 게 있었을까요/장롱 속 깊숙이 들었던 한복 꺼내 단정히 입으시고/옷만큼이나 밝은 표정으로/사진 찍기에 응하신 어머니

-사진 속 어머니중에서

 

미숫가루 한 잔 타 마신다 이럴 때 왜 저 까마득한 동란(動亂) 생각 퍼뜩 나는가 벌써 돌아가 흙 되신 어머니 왜 생각나는가/(중략)/‘그 쪼맨 봉금 받아 갖고 우째 배부르게 먹겠노 허기질 때 한 그릇씩 타 먹고 힘 내거라 용아 힘 내거라까마득한 옛날 어머니 삐뚤삐뚤 편지 왜 생각나는가

-미숫가루중에서

 

문인 중 한 부인 뒷모습 동그레한 파마머리/희끗한 머리카락 돌아가신 어머니와/너무 흡사하여 나도 모르게 다가가/생전에 그랬듯 껴안을 듯한 자세 취하다/(중략)/그래 민망한 김에 너무 어머니와/흡사하다 하니 그녀도 쓸쓸히 웃으며

-이심전심중에서

 

육순 중반을 넘긴 시인의 어머니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은 실로 절절하다. 스스로 우둔한 아들이라고 말하는 그 자세가 더없이 아름답다. ‘옷만큼이나 밝은 표정의 어머니가 오히려 어둡고 쓸쓸한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건 왜일까. 시인의 손끝에서 잘 정제된 역설적인 표현이 자못 눈길을 잡아끈다.

모처럼 어머니와 단둘이 집에 있던 날, 그날은 어쩐지 천지 평화롭고 햇살 그럴 수 없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어머니와의 이승에서의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순간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시인의 시재(詩才)가 비수같이 번뜩이는 대목이다.

또한 미숫가루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보여 진다. 특히 글씨체가 삐뚤삐뚤한 어머니 편지 내용은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뿐이랴, 얼마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에 차곡차곡 쟁여두고 있었기에 다른 부인을 어머니로 착각했을까. 어쩌면 지금쯤 사진 속 시인의 어머니는 사진 밖으로 나오고 계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오 시인의 이런 여리디 여린 심성 속에 살아 있는 어머니는 끝내 한국의 모든 여인상()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이것은 물이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여진다.

 

그녀는 채독증 환자였다. 언제나 누런 혈색에 병색이 완연하였다 그녀는 아무데서나 흙을 한 움큼씩 입에 털어 넣어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중략)/어쩌다 나는 그녀의 식구가 되었고 그녀는 어린 나를 내색 않고 보살펴 주었다 그것이 고마워 나는/(중략)/그런데 그녀의 무덤은커녕 그 혈육도 몇 번 찾아보지 못하고 이제 나도 쓸쓸한 황혼에 접어들었다

-산정 댁중에서

 

나는 명줄이 긴 것 같다 아직도 살아 있으니/아버지는 제명에 못 사시고 이십대에 비명횡사하였다/(중략)/내 어린 날 며칠씩 인삼바구니 끼고 와/어머니 곁에서 유숙하고 가던 곱상한 금산 댁이다/(중략)/그렇게 사는 것이 생계인 걸 까맣게 모르고/웃녘 말 쓰는 게 신기하여 나는/그녀를 자주 낯설게 쳐다보기나 했던가 어쨌던가/금산 댁 내 머리 쓰다듬으며 가고 난 후/집안에 남아 있던 이끼 싸인 인삼 몇 뿌리/내 명줄이란 생각 지우지 못한다.

-금산 댁중에서

 

산정 댁과 금산 댁은 하나같이 불쌍하고 애처로운 아낙들이다. 채독증 환자였던 그녀의 무덤과 그의 혈육을 찾아보지 못한 채 시인은 쓸쓸한 황혼기에 접어들고 말았다. 시간의 무상감과 지금은 사라져 간 것들에 대한 애잔함이 저녁놀처럼 묻어나고 있다. 시인의 마음은 그 저물어 가는 하늘을 비껴 날아가고 있는 한 마리 외로운 철새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 일찍 지아비와 사별한 의 어머니는 금산 댁과 고독한 인간끼리의 따뜻한 인간애를 나누고, 아직 철없던 그렇게 사는 것이 생계인 걸 까맣게 모르고있다. 이처럼 사람이 사는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와 같다는 것을 시인은 얘기한다.

금산 댁에서 가장 백미가 되는 부분은 집안에 남아 있던 이끼 싸인 인삼 몇 뿌리내 명줄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인삼과 장수(長壽)라는 두 개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인삼 성분보다 더 내 명줄을 길게 만든 것은 금산 댁의 정()임을 시인은 갈파하고 있다. 참으로 근래 보기 드문 주옥같은 시라고 생각된다.

 

오 시인은 한국 여인들의 불우한 운명 앞에 못내 가슴 아파한다. 어머니 또래 여인에서 할머니 세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효정 할머니는 여든 넘은 연세에도/시를 쓰시며 내 작품 어떠세요/아들 같은 나에게 보여 주신다/(중략)/할머니 아들 같은 나는 지금/열심히 시와 마주하는가/그렇다고 제대로 인생과 마주하는가

-이효정 할머니중에서

 

반세기 넘어 훈 할머니 돌아왔다/조국이면서 손님 같은 처지 되어/고향도 잊고 언어도 잊고/폐인 아닌데 폐인처럼/낯선 캄보디아 어색한 모습/훈 할머니란 이름으로 돌아왔다/(중략)/돌아와도 돌아온 것 같지 않고/되찾은 고향 피붙이 반가워도/마음 한 켠 도려내듯 아린 상처여

-훈 할머니중에서

 

어릴 적 내 철모르고 외할머니인 줄 알고/따르던 덤정 할머니 그분이네/어머니도 나도 파삭 곰삭은 눈으로/바라보는 덤정 할머니/(중략)/내가 덤정 할매라 부르며 따르던 할머니/저기 골목 돌아 아슴아슴 전설되네

-덤정 어스름중에서

 

서른여섯 한창 시절 홀연히 빼앗긴 아프고 저린/6·25 동란 비극의 시대로 거슬러 오른다/우리 남편 착한 분이었어요 내 집 어떻게 되건/(중략)/가슴 쿵쿵 뛰어요 남편은 사변 나던 그 순간/서울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었어요/그 후 북으로 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중략)/할머니 이야기 듣다보니/왜 이리 내가 왜소해 지는가/할머니 말씀은 내 얼굴에/왜 이리 모닥불 끼얹는가

-이효정 할머니중에서

 

이효정 할머니라는 제목의 시가 두 편 나온다. 그녀는 육이오 동란 때 남편을 잃었다. 그리고 훈 할머니는 낯선 캄보디아에서 반세기 넘어 살다가 돌아왔다. 참으로 기구하고 얄궂은 운명을 살아온 그녀들이다. 두 할머니는 바로 지난(至難)한 인생 역정을 겪어온 우리 조상들로 대변된다.

이효정 할머니는 지난날의 한과 아픔을 시로써 담아내려 하고 훈 할머니는 반가운 고향 피붙이를 만나도 마음 켠 도려내듯 아린 상처를 보듬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피 묻은 손으로 우리 한민족의 힘겨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을 안기는 시편들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는 것이어서 그녀들은 덤정 할매처럼 저기 골목 돌아 아슴아슴 전설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그리는 시편들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스케일 큰 작품들이다. 특히 이효정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이 왜소해지고 얼굴에 모닥불 끼얹히는 것 같다는 시인의 진솔한 말에 우리는 엄숙해지고 만다.

 

다음으로 오 시인의 부정(父情)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천륜의 아버지와 자식이라 볼 수 없고 끝까지 간 세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이 시대 시만 쓰는 것도 아니면서 무엇인가 늘 부지런 떨긴 떠나 궁상스런 모양밖에 보일 것 없는 한 아버지 있나니

-어떤 아버지중에서

 

대학 졸업 앞둔 아들과/한 방에서 잠을 잔다/이제 장가들면/같이 자고 싶어도 어림없는/그런 한정된 시간이다/(중략)/그래 이 손처럼 듬직하고/여기에 따뜻함도 더하여/지혜롭게 이 세상 헤쳐 나가기를/나는 아들의 잠든 손에/가만히 입을 맞춘다

-아들과 함께 자며중에서

 

자신을 어떤 아버지라고 표현한 시인은 그 아버지 모습을 참으로 서글프게 묘사해 놓기를 주저하지 않다. ‘시만 쓰는 것도 아니면서 무엇인가 늘 부지런 떨긴 떠나 궁상스런 모양밖에 보일 것 없는그런 아버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버지로서의 오 시인의 고뇌와 자책(?)까지를 읽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 비록 그런 아버지이긴 해도 아들을 향한 애정은 우리들 마음에 실로 눈물겹게 다가온다.

더욱이 단순한 자식 사랑에만 그치지 아니하고 따뜻함도 더하여살아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통해 오 시인의 도타운 인간애를 만날 수 있어 한층 반갑다. 시인은 부자간의 천륜(天倫)이 사라진 끝까지 간 세상을 통탄하는 속에서도 또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오 시인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런데 그는 한사코 그 호텔 마다하고/험한 길 건너고 고개 넘어 외딴 우리 집 갓방에서/모기에 물리고 삼복더위 쫓으며 자고 갔다/(중략)/얼근히 취중에도 우리 샤워나 하고 자자/이제 서로 가을 볏짚 같은 몸 확인하며/등 밀어 주고 시시덕거린 시간은 정겨웠다/삼십여 년 전 그나 나나 그땐 팽팽한 젊은이였다

-친구중에서

 

내 어린 날 야학교 때 친구 진균이/지금 어디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지/(중략)/어찌 살면 좋을지 모르겠다고/술이나 마실 일밖에 뭐 있겠느냐고/자꾸 술이나 마시자던 진균이

-그때 진균이중에서

 

앞으로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정치인 중에 오늘 선거 유세장에서 친구 내세워 자금 출처 어물쩍 넘어가는 현실을 실제로 보니 좋은 친구가 좋긴 좋으나 이렇게 국정까지 친구를 끌고 가면 과연 정치가 제대로 될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왜일까

-좋은 친구중에서

 

좋은 호텔마다 하고 외딴 우리 집 갓방에서자고 가는 친구를 가진 는 행복한 사람이다. ‘가을 볏짚 같은 몸들이지만 서로의 등 밀어주고 시시덕거린 시간은 정겨웠다고 노래하는 시인은 독자들 모두에게 정다운 친구되기에 충분하다.

팽팽한 젊은이었삼십여 년 전이 아련한 추억으로 뒷걸음질 쳐 오고 있다. 모기에 물려도 상관없고 삼복더위도 어떠리. 그저 그립기만 한 그 시절 그 친구인 것을. 그러나 멀리로 이주해 버린 친구 진균이를 떠올리면서 그는 진정으로 좋은 친구에 대해 회의한다.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시인도 그때 진균이가 그랬듯이 술이나 마시자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시인은 결코 어설픈 감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곧 드러난다. ‘좋은 친구가 좋긴 좋으나하면서 은근히 썩어빠진 정치판을 비꼬는 풍자의 칼날은 사뭇 매섭기까지 한 것이다.

 

오하룡 시인은 같은 문인의 길을 걷는 이들에겐 각별한 애정을 나타낸다. 이런 감정을 노래한 시를 읽으면 문단에서 그를 보는 시선이 따뜻한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살려보자고/모금 운동을 벌이고/더러는 간병을 자청하고 약을 별도로 해 먹이고/법석 벌였다

-어떤 메모중에서

 

황선하 시인 문신수 소설가에 이어/또 한 사람 경남의 참 문인/이 땅에 신념 하나 꼬장꼬장 곧게 꽂아놓고/훌훌 떠나시려 지금 준비하고 있다/아니, 이 작품 쓰는 사이 돌아가셨다

-전기수 선생중에서

 

선생은 그 동안 낡은 워드프로세스로 작품을 썼다/그렇다면 얼마나 신형 컴퓨터 하나/장만을 꿈꾸고 학수고대하였으랴/선생의 수중에서 겨우 7개월을 보내고/무심히 유품되어 나온 노트북/이제는 문신수의 노트북이란 이름으로/서글프게 진열신세 되어 있다

-문신수 선생의 노트북중에서

 

좌우익 대립의 그 살벌하던 시절/젊고 패기 찼던 그도 꼼짝없이/비극의 주인공이 됐을 판이다/(중략)/내 존경하는 수필가/하길남은 나에게 극적인 젊은 날의/한 페이지를 열어 주었다

-생환(生還)중에서

 

죽으면 당연한 이별이다/인정사정 볼 것 없다/소정의 이별하기 절차야 어쩔 수 없지만/죽으면 당연한 이별이다/그러나 참으로 이별답지 않은 이별이 있다/그것은 병으로 갈라놓는 이별이다/(중략)/병들면 그것으로 이별의 시작인 건 알지만/사람이면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이 무서운 이별답지 않은 이별

-이별하기중에서

 

이선관 시인 더욱 힘들게 말하네 무슨 말인가 귀 모아 듣고 보니 요즘 자꾸 부모님 모습 떠올라 못 견디겠다는 것이네/(중략)/나는 그의 부모 본 적 없으나 순간 내 눈에 그의 어렸을 적 그 연민 가득한 부모 표정 어른어른 잡히네

-시인 이선관의 눈물중에서

 

선관 시인의 눈물, 문신수 선생의 노트북, 신념 하나 꼬장꼬장 곧게 꽂아놓고 떠난 전기수 선생, 좌우익 대립의 살벌하던 시절을 잘도 넘긴 하길남 수필가, 박재두 시조시인과의 이별하기,…….

오 시인의 문인들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배어난다. ‘훌훌 떠나시려 지금 준비하고 있다/아니, 이 작품 쓰는 사이 돌아가셨다라는 시구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압권이다. 현재형과 과거형을 적절히 잘 배합시킨 시인의 재능이 남다르다.

그런가 하면, 고작 7개월밖에 안된 노트북만을 남기고 작고한 문신수 선생을 떠올리면 서글픔부터 앞선다. ‘무심히 유품되어 나온이란 부분은 죽음의 실체를 생생히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섬뜩한 기분마저 들 판이다.

특히 사람이면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이 무서운 이별답지 않은 이별이란 대목은 병으로 죽고 이별해야 하는 인간의 슬픈 운명을 절감케 한다. 인간은 언제 이별답지 않은 이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시인의 염원 앞에 자유로울 수 있는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오 시인의 세계를 보는 눈은 참으로 넓다. 앞서 접해본 시들 속에서도 간간이 드러나듯 그는 나라와 인류를 생각할 줄 아는 민족 시인이요 세계 시인이다. 우리 남북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을 다룬 내용을 살펴보자.

 

반가운 태풍님만 오시면/온 국민 기다리는 비 따라오는데/그렇게 비 오듯 통일만 오시면/그 밖의 것쯤/다 버릴 각오되어 있네/정말?

-태풍 초대중에서

 

비 오더라도 수해 날 만큼 오지 말고/가뭄 해갈되어 하늘 보고 한숨 안 쉬게/그리하여 남북 주민 힘 펄펄 나서/서로 통일 생각 날만큼/비오는 소식 다오

-기원중에서

 

소매 끝으로 흘러내리는 눈물 훔치며/지금까지 여느 월남가족들이 그랬듯이/충혈된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방관시대중에서

 

그래도 통일될 날/아직 까마득한 나라 우리나라니까/남이나 북이나 한 민족이니 한 핏줄이니 떠들어도/실제는/하나도 한 민족 한 핏줄 같은 모습 안 보이고

-우리 나라중에서

 

어떤 여행객이 찍어 온 두만 강변/아무렇게 버려진 두 시신을 본다/죄짓지 않은 주검이라면/아무리 극단의 공산사회라도/거둬 장사 지냈으리/필시 그대들은 그쪽에서/죄악시하는 도강 범죄 저질렀으리

-두만강변 두 시신을 보며중에서

 

남이나 북이나 휴전선 바짝 대치하고 있다/(중략)/그러나 전쟁은 쉽게 터지지 않는다/이 투명한 사실도 모르는 척/자꾸 임박한 듯 떠들어야 밥이 나온다

-중에서

 

통일은 되어야지 말은 좋다/‘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아무도 이 노래 모르는 국민 없다

-구호중에서

 

시인의 관심은 개인과 가족, 친구에서 국가 민족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소곤거리듯 하던 그의 목소리에 홀연 엄청난 에너지가 풍긴다.

시인은 가뭄이 들어 비 내리기를 빌면서도 통일을 기원한다(태풍 초대기원). 시인은 월남 가족들의 아픔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무능을 한탄한다(방관 시대). 시인은 한 핏줄임을 강조하면서도 통일을 앞당길 줄 모르는 남북 위정자들을 질타한다(우리 나라). 시인은 두만강변에서 발견된 동포의 두 시신을 보며 절규한다(두만강변 두 시신을 보며). 시인은 남북 대치상황을 악용하는 정치권을 풍자한다(). 시인은 구호만 내세우는 현실을 일깨운다(구호).

 

참으로 시인이 처해 있는 현실은 괴롭고 고달프기 그지없다. 그만큼 그가 하고 싶은 말도 많다. 그는 잠든 용이 아니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시인의 선각자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속적인 것에 얽매이기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그는 복잡하고 혐오스러운 이 세상을 떠나 선()의 세계로 훌훌 들어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약수암 1에서 약수암 5까지 모두 다섯 편의 약수암 연작시가 수록돼 있는데 역사바다문학운동고마운 말씀이란 부제가 각각 붙어 있다.

 

암자길 답잖은 너무 평범한 길도 있다 그러나 암자로 가는 길은 길이다 이 길로 내처가면 도리천 스님 약수암 있는 길은 길이다

-약수암1중에서

 

스님이면서 아동 문학가이면서 시조시인인/도리천 스님은/어떤 생활 영위할까/(중략)/우리의 범상한 일상처럼 그림도 있고/이불도 덩그렇게 저만치 눈에 띄었다

-약수암2중에서

 

스님의 일상을 보며 내 의식은 엉뚱하게 옛날에 잠시 다녀온다 절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원도 한도 없이 글 읽을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절 찾아간다며 몇 번인가 어머니 가슴 멍들게 하던 옛날 어린 시절

-약수암3중에서

 

이미 인근에 소문나 있다 그가 열심히 뿌린 문학의 씨앗은 가을날 그의 뜰에 가득 핀 아름다운 코스모스 군락 같이 어느 땐가는 화려하게 개화하리라는 기대 갖게 한다

-약수암4중에서

 

도리천 스님은 서슴없이 말씀 하시네/며칠 쉬다가 가시지요/덧붙여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좋아요/여기 그냥 눌러 사셔도 좋아요

-약수암5중에서

 

스님이면서 아동 문학가이면서 시조시인인/도리천 스님이 기거하고 있는 약수암이다. 시인은 그곳으로 가는 길을 통해 길의 도()를 깨치고 약수암1, 스님의 생활을 통해 인간의 공통된 모습을 발견한다 약수암2. , 절을 통해 어머니 가슴 멍들게 하던 옛날을 탄식하고 약수암3, 스님의 문학이 화려하게 개화하리라는 기대를 품어보기도 한다 약수암4.

무엇보다 시인은 그 약수암에 그냥 눌러살아도 좋다는 스님의 고마운 말씀에 가슴 뭉클한 감격마저 느낀다 약수암5.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약수암 연작시라고 생각된다.

 

오하룡 시인의 무게 있는 시들 가운데서도 제일 눈길을 끄는 시편을 들라면 아마도 죽음을 다룬 다음 작품들이 아닐까 한다. 생명에 대해, 그리고 그 생명의 소멸에 대해, 이만큼 깊은 성찰을 하고 있는 시들을 결코 흔치 않을 것이기에.

 

내 죽으면 소지품 어찌 될까/둘러보면 별것 아닌 것뿐인데/생명 있어 어째 달라/눈동자 굴리는 것도 아닌데/소멸 앞에서 부질없이/돌아 보이는 쓸쓸함이여

-유품중에서

 

백미러에 비친/내 얼굴//한순간이면/영정이 될/내 얼굴//갑자기/낯이 설다

-내 얼굴중에서

 

아름다운 시를 썼으면 시처럼/그렇게 아름답게 여운 남기며/이승 떠날 수 없을까

-시인 박재삼중에서

 

한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합니다”/그래, 안내원의 저 목소리!/저승사자도 저렇게 우리를 세상에 보내놓고/시간을 재고 있을 테지/발걸음이 이상하게 헛놓였다

-해남 대흥사에서중에서

 

사람이 죽고 나면 유품이야 별것 아닐 것일진대 왜 인간은 그토록 많은 것을 얻으려고 집착하는가 하고 쓸쓸해 하는 시인의 마음결이 손끝에 잡힐 듯하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동료 문인들 그리고 모든 죽은 대상들에 대한 앞서의 시들은 이곳에 와서 그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승을 떠날 때 아름다운 시처럼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떠날 수 없을까 아쉬워하는 시인의 마음씨가 아름답기 한량없다. 죽음 앞에 초연해 지려고 하는 이런 자세야말로 가장 시인다운 모습이 아닐까. 나아가 안내원의 시간독촉을 통해 저승사자를 떠올리는 시인의 사물과 인생에 대한 인식의 폭이 결코 범상치 않다.

오 시인의 시를 논함에 있어 절대 빠트릴 수 없는 가편(佳篇)이 시집내 얼굴의 표제작이기도 한 내 얼굴이다. 백미러는 지금까지 그가 지나온 곳 과거를 보여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여기서 우리는 오 시인의 예사롭지 않은 안목을 짚어내게 된다.

백미러에 비친 내 얼굴에서 내 영정을 떠올리기까지에는 사물을 대하는 비범한 눈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영정이 될/내 얼굴에서 사람은 누구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시인은 갑자기/낯이 설다라는 말로 철저히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미묘한 감정 결을 이렇게 짧은 시속에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시인의 솜씨가 예사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는 시편들이 또 있다. 바로 제목에 어떤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시들이다. 그의 시에서 이 어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걸까. 우선 그 시들의 한 대목만 적어 봐도 만만찮다.

 

어떤 고부간 소곤소곤 이야기 하네/식구들 다 곤히 잠든 늦은 밤/시어머니는 시어머니 겪은 하루/며느리는 며느리 하루 털어 놓네

-어떤 고부(姑婦)중에서

 

일행은 합숙하는 하룻밤이다/그러나 우리 부부는 예외가 되어/독립된 공간에 배정되었다/30년 훨씬 넘게 살며 이런 자리 처음이다/무주리조트의 하룻밤/아내도 뒤척이고 나도 뒤척인다

-어떤 점수중에서

 

한 해 동안 자식에 맞아 죽는 아버지가 수십 명에 이르고 자식에 맞아 억울하다고 고소한 아버지가 수천 명 넘는다는 기사 넘치는 이 시대

-어떤 아버지중에서

 

해질녘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아파트 공터 앞은 마중 나온 젊은 여인들로/저절로 화사한 꽃밭 하나 만들어지나니

-어떤 정경중에서

 

웃옷을 챙겨 입고/슬리퍼를 벗고/구두를 신는다/그리고 잠시 멍청해 있다//이승 떠날 때/저승사자 또한 미리 예약하는 것이라면/허둥지둥 이렇게나마/주변 정리를 하련만

-어떤 준비중에서

 

이선관 시인은 간염으로 죽다가 살아났다/(중략)/그런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서일까/나는 그가 가끔 특별한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다

-어떤 메모중에서

 

문학 활동이랍시고/시집 몇 권 변변찮게 낸 것뿐이나/처음에는 선정된 것만으로도 반갑고 흐뭇하였다/잠시 후 정신 차려 보니 아니구나 못난이의 주접은/자칫 이리하여 세상 웃음거리 되는 것을

-어떤 인물사 편찬을 보며중에서

 

삶에서 처신이란 얼마나 어려운지/어느 사이 본의든 아니든 나라는 인물도/여기저기 잡다한 매체에 담겨/이제 내 의지대로 뭐라 행동에 옮기고 어쩌고/할 수 없는 처지에 진입해 버렸다

-어떤 인물사 편찬을 보며()중에서

 

시인은 왜 한 권의 시집 속에 이렇게 많은 어떤의 시를 넣었을까. 여기서 다시 그의 말을 되살려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생래적으로 …… 중용적이거나 객관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다. 오하룡 시인의 미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시적 화두는 어디까지나 중용과 객관임이 분명하다.

중용과 객관 그것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어떤이 아닐는지. 어떤이야말로 오 시인이 시를 통해 평생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목표로 삼는- ‘그 무엇 내지는 그곳(혹은 저곳)’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면 필자의 섣부른 입놀림일까?

그 해답을 시인의 다음 시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바로 저기다/아아, 빤히 보이는 저곳/그러나 어느새 숨이 가쁘다

-목표전문

 

3.

 

이제까지 시인 오하룡의 외딴집 한 채 속으로 들어가 그가 있어 왔고, 있고, 또 있을우주와 접해 보았다.

우리는 어떤’ ‘내 얼굴이야말로 나의 얼굴이요 너의 얼굴이요 결국 우리 모두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넓고도 오묘한 시세계를 찾아 나서다 보면 모든 독자들은 그의 말처럼 스스로 방향성이 마비되는경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그의 시편들은 우리 혼을 깡그리 빼앗아 놓는다. 그것을 예감한 듯 오 시인은 이번 시집 책갈피마다에 솔바람 소리 산새 소리를 숨겨 두었다. 바로 삶의 소리 인간의 소리다. 그래 모두는 숨이 가쁘게 달려갈 목표를 건진 듯한 희열과 깨달음이 있었으리라.

그의 시집을 덮는 이 순간 벌써 장복산이 그립다. 곰절 골짜기로 성큼 내려서고 싶다. 우리는 오 시인으로 하여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여름 풀대처럼, 여름 풀대처럼 자라면, , 자라면…….

뿐만이 아니다. 오하룡은 6번째 시집내 얼굴이끼 싸인 인삼 몇 뿌리로서 우리에게 남겨 두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약수암 가는 길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으며 못 견딜 그리움을 환영으로나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창조했다.

그리고 오 시인, 그는 특히 이번 시집을 통해 지금부터는 어쩌자고 어디선가 얼핏 바라보거나 스치기나 했을 뿐인외딴집 한 채로서가 아니라, ‘정말 어쩌자고 오래 오래 바라보거나 순간순간마다 스치울그런, 말하자면 더 이상 외딴집 한 채가 아닌 우주의 집으로 우리 앞에 서려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또 결국은 못 견디게 삼삼거리는 외딴집 한 채로 살아온 어떤내 얼굴로-.

 

(계간 농민문학 2005.여름호. 통권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