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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리도 그립고
사무친 얼굴



임신행


세월의 숲 속에 들어서서 세월의 숲을 거닐어 보면 어디 그리운 사람이 한두 사람이겠는가마는 필자의 비좁은 가슴에 묻어 놓고 유독 그리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

사는 것이 혼란스러운 요즘은 문득 문득 그리워지는 사람, 그 사람!

그 사람 이름은 안정효(安丁孝)!

60년대 입학하기 그렇게 녹록치 않은 부산사범학교(釜山師範學校)를 졸업한 재원이다.

그는 숨은 교육자요, 민족주의자요, 생명주의자요, 시인이었다.

필자는 그를 이승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격랑의 세월의 징검돌을 징검 징검 건너 온 때를 더없이 행복하게 생각한다. 60년대에서 70년대를 거슬러 80년대까지 잘 건너오다가 그는 필자의 어깨동무가 버거웠던지 십여 년 전에 어깨동무를 풀고 이승의 강을 먼저 건너가고 말았다. 그가 없는 세상이 참으로 허전하고 더없이 쓸쓸하다.

그와 인연의 끈을 잡게 한 것은 동시인 오규옥이었다. 아는 이는 알겠지만 오규옥은 시인 오규원이다. 오규원의 호적 이름이 오규옥이다. 그는 또 무청처럼 기개가 시퍼렇던 청년시절에는 라무현(羅無現)이었다. 오규옥과 아니 오규원과 필자가 만난 것은 삶이 유독 곤궁했던 시절 도서관에서 만났다. 50년대와 60년대의 부산광역시에는 국제신문, 부산일보, 민주신보가 있었다. 지금은 부산일보와 국제신문만 남아 정도正道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정론을 펴고 있다.

그 무렵 고맙게도 세 신문은 학생문예란을 두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일반문예란을 두고 문학 저변 확대에 기여한 공이 크다. 물론 고등학생, 대학생의 작품을 투고 받아 실었다. 지금도 국제신문과 부산일보는 문화 면을 할애하여 문예작품을 싣고 있다. 초등학생 문예작품, 주부님들의 문예작품을 싣고 있다. 국제신문과 부산일보는 또, 신춘문예 공모를 통하여 한국문단에 기여하는 바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부산일보가 여성 백일장으로 문예부흥에 힘쓴다면 국제신문은 지방작가의 작품을 연재하여 향토작가의 사기를 진작 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문단 아니 한국아동문학에 돌려놓을 수 없는 분, 「꽃씨」, 「꼬까신」의 시인 최계락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최계락 문학상을 주관하고 있다. 최계락 문학상의 특장은 훌륭한 동시와 시 작품에 상을 시상한다는 것이다.

60년대에 작품을 3대 신문에 투고했던 문청인(文靑人)들이 어느덧 중년의 문인이나 교수 혹은 사업가로 자리를 잡고 있다. 다시 말해 그때 투고했던 사람들이 한국문단에 일각을 기여하고 있다. 물론 그 무렵 학원파도 있었으나 국제, 민주, 부산의 역할은 대단했었고 그 공로를 인정, 3대 신문에 치하하지 아니 할 수 없다. 그 무렵 숨어 고생을 한 분이 바로 「꽃씨」의 시인 최계락 선생이었다.

그분은 국제신문 문화부에 근무하면서 어려운 시인과 소설가를 남모르게 도우신 정 도타운 분으로 정평이 나 있다.

최계락 선생은 참으로 따뜻한 분이었다. 따님 여섯의 학비를 신문사에서 가불해 가지고 있다가 찾아 온 시인이나 소설가가 어렵다 싶으면 선뜻 건네주어 따님의 학비를 못 대주어 쩔쩔 매었다. 그러고는 신문사(그때는 중앙동 청과시장) 옆에 가서 일쑤 돈을 내어 학비를 대준 인정 많은 분이다. 그때 오규원도 투고에 열중한 문청인이다.

여기다 올리기는 싫지만 안정효 형 그를 말하고자 하면 오규원, 이수익, 김성춘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분들은 시인이지만 고 안정효 형과 사범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때 안정효 형은 숫기가 없고 가정이 어려워 가정교사 하느라 행사나 신문에 글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문학서적과 철학서적, 과학서적을 남모르게 많이 읽은 실력 있는 문청인이었다.

그의 집은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그러니까 구덕 공설운동장 옆 동아대학교병원 맞은편에 있는 경남상고(옛) 옆 작은 집이었다. 그 무렵 누구나 밤송이 머리를 한 청소년이었지만 안정효 형은 8월 풋밤의 밤송이처럼 매우 까슬까슬하고 팽이의 단면을 연상케 하는 얼굴이었다. 몸집이 그리 크지 않고 그렇다고 작은 체구도 아닌데 매우 당당해 보였고 강단이 있었다. 왼쪽 송곳니가 덧나와 묘한 매력을 지닌 다부지고 실력 있는 청년이었다.<이하 생략...>



계간 작은문학 제24호(2004년 겨울/봄호) 목차

■시와그림
│갈대 ― 이광석
■책머리에│아! 이리도 그립고 사무친 얼굴 ― 임신행
■2인 신작 소시집
  세종대왕님 ― 도리천  외 30
  무학 암자 ― 김종달  외 33
■박필상 신작시│봄비 2  외 6
■윤종석 신작시│낙 조  외 3
■이영자 신작시│아플 때 만난 사람들  외 6
■이응인 신작동화시│어느 오리나무
■정삼희 신작시│실 국화 5  외 17
■조남훈 신작시│우기의 풍경  외 10
■최양희 신작시│봄 비  외 4
■정삼조의 지역시 다시 읽기③
  그리운 수개리 ― 김일태
  경상도 사투리 ― 성선경
  성흥사 계곡 ― 박미경
  노비산 ― 김교한
■생활 속의 발견⑩│문학단체의 선거 바람 ― 오인문
■신작수필
  B선생 ― 박현안
  천왕봉 소나무 수피(樹皮)에 흐르는 달빛  외 1 ― 조정현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외 1 ― 차상주
  아름다운 세상  외 1 ― 황선락
■이소리 시인의 향수 에세이
│창원, 추억 속의 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