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거제 지역에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는 곽상철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남풍 불어 참 좋았더라>를 펴냈다.

 

■ 시집에 붙이는 글

 

나는 오늘도 목눌木訥동굴로 출근을 한다. 강하지도 의연하지도 못하지만 꾸밈 없이 있는 그대로 거친 나무껍질이듯 질박하고 어눌하다. 단절의 벽 앞에서 면벽하며 문맥을 캐는 어눌함으로 말하지 않는 저들의 순박한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에겐 가위, 바위, 보는 천지인이고 원방각 세상이다. 농부 시인이라 자칭하며 가위, 바위, 보의 균형 잡힌 세상을 꿈꾸다 땀범벅 옷깃으로 남풍이 산들산들 불어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산 능선 너머 청마 유치환, 동랑 유치진의 생가가 있고 고려 의종이 피신해 3년을 머물렀던 둔덕기성이 있다. 교직 생활도 둔덕에서 시작하여 둔덕에서 마쳤다. 재직 중에 지역민을 대상으로 청마 문학 교실을 개설하면서 초청 강사로 봉사해 주신 눌산 윤일광 선생님으로부터 문학의 향기를 처음으로 접하였고 이를 계기로 글 쓰기에 매진하며 다섯 번째 시집을 내게 되었다.
일산一山이라는 아호를 내려주신 일주 최철훈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계간 《문장21》에서 시를 시작으로 수필로 등단하였다. 이어서 《자유문학》, 《월간문학》에서 민조시로, 《문장21》, 《시조문학》, 《오륙도 신문》 신춘문예에서 시조로 당선되어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이번 시편들은 삶의 균형이 무너진 팬데믹을 겪으면서 퇴직 후 작은 농장(木訥동굴)을 꾸려 농부 시인을 꿈꾸며 틈틈이 써온 작품들이다. 1장은 민조시로, 2장은 시조로, 3장은 사설시조로, 4장은 기행 자유시 중심으로, 5장은 영농 일기를 중심으로 구성하여 장르별 맛보기를 통하여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망설였지만 체증의 갑갑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 조금은 후련해졌지만, 혹여나 이 졸작들을 읽으면서 기대를 저버릴까, 싶어 걱정이 앞섭니다.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주시길 바라면서 미흡하나마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 감사를 드리며, 밥도 안 되는데 어눌하게 시를 긁적거릴 때도 말없이 지지해준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이 시집을 드립니다.

갑진년 유월 해미당에서

 

▲ 차례

 

시집에 붙이는 글 4

제1부  놀이에 스민 민조의 율격 ― 민조시 편
방하착放下着 12
덩굴손 13
물그림자길 14
인연 15
달팽이 16
어느 농부의 하루 17
택배를 부치며 18
봄소식 19
월영교 걸으며 20
물보라 21
화엄사 홍매화 피는 날에 22
하나로 살기 23
저마다 피운 꽃 24
이젠 25
청마 문학제 26
몫 28
말벌이듯 29
양떼구름 30
은둔隱遁 31
이별 연습 32
투망질 풍경 33
타이어 울음 34
가시나무새 35
샛바람 소리길 36
가을로 떠난 사람 37
낙조 38
송영送迎 39

제2부  절기를 노래하는 시절가요 ― 시조 편
천지인天地人 42
공천空天 43
춘삼월 44
축제의 들녘 45
낙화 46
덧짐 47
공곶이 수선화 48
이명耳鳴 49
우수雨水의 봄동 50
껌딱지 51
석화石花 52
봄이 아닌 봄 54
겨울나기 55
거스러미 56
농사꾼 일기 57
배티재를 넘으며 58
숲속의 전장戰場 59

제3부  랩이 흐르는 사설시조 ― 사설시조 편
붉새 62
춘당매 피는 날 63
격리 64
진주조개 65
꽃 한 송이 피는 것은 66
레일 68
봄이 오는 소리 69
구절초 향기 70
턱 빠진 조선 순백자 술병 71
풀잎 72
자드락길 걸으며 73
꽃이 지는 까닭은 74
겨울 풀 75
빈 지게 76

제4부  자유로운 나들이의 여운 ― 기행시 편
대변항 멸치 78
섬진강 79
물빛 파도 소리길 80
드림로드 벚꽃길 82
장좌리 장도 83
완도 전망대 84
두륜산 전망대 86
청산도 유채꽃밭에서 87
촉석루의 유등 88
남사 예담촌 90
늦가을 풍경 91
해금강 호텔 92
그날은 참 씁쓸하였네라 94
물결 96
개비리길 97
증도 모실길 98
대변항 드론 쇼 99
다낭, 모래 언덕에 핀 메꽃 100
방풍림 102
바나 힐 103

제5부  목눌 동굴의 일기 ― 영농일기 편
농부가農夫歌 106
농부의 길 108
남풍 불어 참 좋았더라 109
곡우의 봄비 110
비 멍 수채화 111
농부의 푸념 112
참다래 113
옥수수 먹으며 114
유월 지심밭 115
시인의 밭 116
훌정질 117
발아 118
언 땅을 일구며 120
굽은 손가락 121
앉은뱅이꽃 122
구월의 기도 123
시월의 막바지에 124
땡고추 씻으며 125

해설 126
방하착放下着에서 착득거着得去까지 
윤일광(시인·거제문화원장)

 

 

방하착放下着에서 착득거着得去까지

‘방하착’은 ‘내려놓음’으로 자유를 찾는 일이라면, 그와 한 쌍을 이루는 용어가 ‘착득거着得去’이다. ‘안고 간다’는 뜻이다. 이 둘은 불교 선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내려놓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방하착)과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착득거)을 의미한다.

시 〈시월의 막바지에〉에 의미로운 행간이 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25장에 나오는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곽 시인의 ‘착득거’인 것이다.
―윤일광(시인, 거제문화원장)  

 

시집 《남풍 불어 참 좋았더라》는 제1부 민조시, 제2부 시조, 제3부 사설시조, 제4부 기행시, 제5부 농사시, 모두 93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권의 시집 속에 작은 시집 5권이 옴니버스omnibus 형식을 차용하여 구성되었다.
이렇게 엮으려면 무엇보다 작가의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곽 시인은, 시든 시조든 민조시든 이미 문단에서는 인정받은 터라 그 문학적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곽 시인의 민조시는 자수와 행간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시상을 펼친다. 시조는 율을 엄격히 지키면서 내용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았고, 사설시조는 모두 중장에 사설을 플어 놓음으로 시각적 효과로 산문성까지 더하고 있다. 시들은 마치 옆 사람에게 소곤소곤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주듯 문장에 깊이가 있다.
―윤일광 시인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