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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

 

김진희   시조시인 경남시조시인협회장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이은상 시조 고지가 바로 저긴데첫 수

 

내가 시를 가까이하고 특히 시조를 사랑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이상은 국어 선생님 덕분인 것 같다. 선생님은 서울에서 오신 멋쟁이셨다. 항상 단정한 모습으로 흐트러짐이 없는 선생님의 옷맵시며 걸음걸이, 표정은 우리를 늘 긴장하게 했다. 거기다 서울 말씨에 청아한 목소리로 시조를 낭송할 때면 친구들은 그저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보곤 했다. 친구 영아는 선생님 흉내를 내며 콧소리로 읽어서 우리들은 잔뜩 몸이 오그라든 채 키득키득 웃곤 했다. 수업시간에 용기 있게 읽지 못한 나는 집에 돌아와 이은상 시조를 이불 밑에서 외며 낭랑한 국어 선생님의 목소리를 흉내 내곤 했다.

선생님은 특히 노산 이은상을 이야기할 때 얼굴에 빛이 나고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분이라며 무척 존경하는 분이라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의 이름과 비슷하니까 좋아하나보다’, ‘친척분이신가?’ 생각할 정도였다.

가고파,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고지가 바로 저긴데등 주옥같은 노랫말을 읽으며 좋은 시를 베껴 쓰고 문예부에서 시집을 만들던 그때 저 깊은 곳에서 시심이 자라고 있었나보다. 선생님의 표정, 말씨, 옷맵시 등 모든 것이 선생님만의 특별한 기술로 우리들 마음속에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압박을 느끼며 삶에 대하여 나름 진지했었나 보다. 하지만 어떤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능선을 넘으면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얻었다. 이불 속에서 외던 고지가 바로 저기다.”라는 주문을 외면 힘이 저절로 생기는 것 같았다.

선생은 있고 스승은 없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오늘날 학교는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와 다른 환경이지만 학교는 여전히 교사와 학생 간의 사이에서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아무리 물리적 환경적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떤 교육활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 간의 정서적 교감이다. 즉 교사의 긍정적인 한 마디 말에 학생의 진로가 결정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기너트는 교실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교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품행과 인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교사의 반응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모든 상황들을 교사가 인격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특별한 기술이다.”고 하였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영특하기까지 한 녀석들에게도 새삼 그 특별한 기술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학생을 가르치는데 교사의 바람직한 인격도 중요하지만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따뜻하고 인내심 있고 상냥한 교사도 여전히 교실의 문제를 극복하기란 어렵다고 하니, 학생들의 기억 속에 남는 좋은 선생님 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다.

갈수록 삶이 팍팍하고 어렵고 힘들다고 한다. 이 어려움의 끝을 알 수가 없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캄캄하다. 고지가 바로 저기라고 말해 줄 부모도 스승도 상사도 없다. 그저 바람을 맞을 뿐이다.

하지만 부모나 스승은 학생들에게 고지가 바로 저기 있다고 희망을 가르쳐야 한다. 도중에 내리지 말고 허위적거리며 가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깨어져도 부둥켜안고 가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먼 훗날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이은상 선생은 예전부터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는가.

이 어렵고 힘든 세상에 생각의 씨앗 한 톨, 마음속에 심을 시 한 편이라도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참 스승이 되어야겠다. 점점 멀어져간다는 학생과 교사, 제자와 스승 사이에서 시 한 편, 시조 한편 읽어주는 선생이 되어 그 간극을 좁혀야 하겠다.

생각의 씨앗이 한창 자라고 있을 아이들에게 나는 훗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좋은 선생님이 되는 길은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무한한 인내가 요구된다. 어떤 첨단 매체보다 개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며 나만의 특별한 기술로 어떤 제자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교사의 굳건한 마음이 절실할 때다.

 

단행본 <가고파 내고향 남쪽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