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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 장편소설(전 3권) <축복> 마산문학관 강연 내용 -장편 <축복>은 이렇게 썼다, 문학청년 바다를 누비다
gnbook 2023. 4. 20. 10:25지난 4월 18일 오후 2시 마산문학관 강당에서 황성혁 소설가의 강연과 독자의 만남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마산문학관 정기 수업생과 작가의 마산고교 17회 동문 등 지인들 4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문학청년 바다를 누비다- 강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1939년 9월생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마산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마산 토박이이시고 마산에서 결혼하셨으나 아버님의 직장이 서울이어서 제가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산 기간은 십년 남짓했고 그 뒷 세월 마산이 저를 키웠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는 2차대전이 지구를 뒤흔들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되었고 일본은 중국을 침공한 여세를 몰아 동남아로 그들의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 있었습니다. 궁핍의 시대였습니다. 가진 것이 없었고 스스로 만들어 낼 능력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일곱 살 때 해방이 되었습니다. 여덟 살에 국민학교 입학을 하였습니다. 국민학교 이학년을 마쳤을 때 부모님은 마산으로의 귀향을 결정하였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마산 아이로 자랐습니다. 월영국민학교, 마산중학교, 마산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6·25사변이 터졌습니다. 마산은 공산군의 침공이 미치지 않았지만 국군의 후방 병참기지, 군 병원, 피난민들의 생활 터전으로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육이오 전쟁은 일년 남짓한 기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치 몇 십년 동안 계속된 것처럼 우리 민족의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고 한반도에 오래 그 그림자를 드리운 사건이었습니다.
마산고등학교에서는 해마다 개천절에 백일장을 열어 학생들의 정서를 길러주었습니다. 저는 입학하던 해 백일장에서 산문이 가작으로 입선을 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선배들이 문학동인에 가입하라는 꼬드김이 있었습니다. 문학이 무엇인지, 동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면서 그때 전국적인 문명을 떨치던 선배들의 이름에 이끌려 백치동인에 들어갔습니다. 동인에는 이제하, 변재식, 이광석, 박현령, 추창영, 김병총, 김만옥, 김용복, 염기용, 조병무 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막내였습니다. 고등학교 삼학년 진급할 때 변심을 하였습니다. 문과에서 이과로 진로를 바꾼 것입니다. 문과에 들어가서는 점점 기울어지는 가세를 버텨 내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1958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선공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눈만 뜨면 눈에 들어오던 바다 덕택에 배를 짓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결심이었습니다. 그 덕에 평생 바다를 누비고 세상을 섭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그막에 장편 대하소설을 쓴다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시골 학생이 서울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대학 생활은 공부는 뒷전이었습니다. 등록금을 벌고 한편으로 하루하루 생활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방법은 딱 하나 있었습니다. 가정 교사입니다. 대학을 7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군대를 1년 반 동안 다녀오고 1년 휴학하고 나머지는 가정교사 생활이었습니다.
1960년 봄, 일년 휴학을 한 뒤 새 학기 등록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3·15 마산 의거가 터졌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아침에 투표하러 갔으나 나의 투표용지는 없었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다투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투표장에서 쫓겨나왔습니다. 그날 저녁도 나는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밤늦게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골목길 깜깜한 어두움 속에서 갑자기 손전등 불이 내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음습한 목소리가 뒤따랐습니다. “손 내놔” 나는 영문도 모르고 손바닥을 내밀었습니다. 전등은 깨끗한 내 손바닥을 이리저리 비추더니 내 손등을 툭 치는 것이었습니다. 가도 좋다는 신호였습니다. 그제야 골목길에 얻어맞고 짓밟혀 뒹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날 데모에 참여했던, 돌을 던졌던, 손바닥에 돌을 던진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까지의 나의 삶은 주어진 삶이었습니다. 주어진 대로 따라다니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나의 하얀 손은 나의 인생을 스스로 이끌어 가는 나침판이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마다 나는 플래쉬에 비친 나의 깨끗했던 손을 생각했습니다. 그해 4월 서울에서 4·19 학생 의거가 있었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참여하였습니다. 김만옥의 소설에는 내가 내 키만 한 제도용 T자를 어깨에 지고 대학로에서 데모대와 함께 했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국영기계회사에 취직하였습니다. 기계설계를 담당하였습니다. 조선소를 가려고 했지만 가고 싶은 조선소가 없었습니다. 취직한 다음 해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무모한 도전 같았지만 평생 만족스러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1972년 드디어 현대조선이 문을 엽니다. 저의 인생도 활짝 열렸습니다. 1971년 말 입사 시험을 치르고 창립멤버가 되었습니다. 그 뒤 모든 일은 순조로웠습니다. 스코트랜드 조선소에 훈련을 가게 되고 세계 해운, 조선업의 중심지인 영국의 런던에서 기술 도입 업무를 맡게 됩니다. 곧 뉴욕 지점 개설요원이 됩니다. 처음 조선소에 입사했을 때 조선 기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박의 기본 설계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회사의 경영방침에 따라 차츰 영업 쪽을 담당하게 되고 1978년부터 현대중공업 런던 지사장을 맡게 됩니다. 시장 개척을 위해서 세상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나이지리아의 프로젝트를 위해 방문했을 때 결정권자인 교통부 차관은 심지어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한국에 주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이 프로젝트를 나이지리아에서 내 손으로 짓겠다.”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모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겨 내었지요. 일년에 집을 떠나 해외에 있는 시간이 평균 200일이 넘었습니다.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현대 중공업은 세계 최고의 조선소가 되었습니다.
1989년 제 나이가 쉰이 되던 해였습니다. 이제 내 일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끌려다니는 직장 생활이 아닌 보다 개인적인, 가족들과 함께하고, 친구도 만나고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여유 있는 생활을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조그만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세계 구석구석에 있던 친구들이 저를 한가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을 도와 달라.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등의 제안이 많았습니다. 어영부영 끌려다니다 보니 또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여기저기 글을 써 왔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학보에 단편 소설도 싣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잡지에 기고도 하였지만 다부지게 글과 맞닥뜨린 적은 없었습니다. 조선소를 그만두고 나서 여기저기 고정 칼럼을 가지고 기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백치동인”의 추억이 나를 부단히 격려하였던 것입니다. 조선공업협회지에 실었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중에서 서른 개의 에피소드를 모아 “넘지못할 벽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운송신문사가 1998년에 저의 첫 번째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환갑에 즈음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Let There Be A Yard” 라는 제목으로 영역되었습니다. 한국의 산업사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에게 필독서가 되어 제법 많이 팔렸습니다. 2016년 결혼 50주년이 되던 해에 “사랑 인생 길에서 익다”라는 제목의 기행문이 출판되었습니다. 그것도 조선학회지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아내와 둘이서 다녔던 여행 중 특별히 기억되는 여덟 개를 골라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은 모두 잡문들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 책다운 책을 남겨야겠다는 조급함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평생 가까이 두고 읽은 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입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할 때부터 패퇴할 때까지의 십여 년에 걸친 러시아 역사입니다. 전쟁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지만 그것은 그릇일 뿐입니다. 전쟁에 투영된 러시아의 전통과 다양한 삶이 거기에 담깁니다. 저는 평생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대하소설을 써보자 하고 마음먹고 책상에 붙어 앉았습니다. 축복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제1권은 2019년 12월, 제2권은 21년 3월, 제3권은 22년 5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그 오륙 년을 축복의 집필에 매몰되어 지냈습니다. 구성하던 시간까지 포함하면 십여 년을 소설의 집필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권이 제 나이 팔십에 나왔습니다. 톨스토이가 돌아가시던 나이에 첫 권이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세 권을 합쳐서 1300여 쪽이 되는 분량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3부작을 생각하였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역사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담고자 했습니다. 제1권은 우리가 가진 것,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2권은 어제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참담했던 지난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삶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를 이야기합니다. 기구한 우리의 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지배, 육이오 전쟁의 참혹함, 그를 따라오는 처절한 궁핍, 가족들의 이산, 삶 같지 않았던 피란 생활이 이야기됩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서도 가난이 무엇인지 몰랐던 날들, 수탈당하면서도 분노를 느낄 수 없었던 시절, 동족끼리 살상을 하면서도 그 비극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시대입니다. 기댈 곳 없던 대학 생활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역경과 절망이 극복되는 과정이 전개됩니다. 산업혁명과 민족의 새로운 탄생을 이야기합니다. 제3권에서 비로소 내일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제시됩니다. 정체성의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이 소설은 중국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 경제의 대 격동기가 그 배경입니다. 그중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 일어난 일을 그렸습니다. 세계의 모든 자원이 중국으로 빨려 들고 중국의 값싼 제품이 세계로 팔려 나갑니다. 중국 대륙이 블랙홀처럼 세계의 자원을 흡수하면서 그 자원을 실어 나르는 수송선들의 수요가 폭증하게 됩니다. 그 기미를 일찍 알아차린 벨지움 선주가 초대형 유조선(VLCC) 여섯 척을 울산조선소에 싼값으로 발주합니다. 그 배들은 2002년 발주되어 2005년 5월까지 차례로 인도됩니다. 선주가 배를 인도 받을 때 배의 시장 가격은 계약 가격의 두 배로 뛰었고 선주는 큰 돈을 벌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간들의 삶이 조명됩니다. 우리 동포의 삶의 역사가 함께 투영됩니다. 조선과 해운 이야기는 단지 그릇일 뿐입니다. 이 소설은 그 그릇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았습니다.
193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들은 인류학상 특수 종족으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짚신을 신었고 그 뒤 일본식 지까다비를 꿰찼으며 그것은 곧 구두로 바뀌었습니다. 몽매한 조선왕조가 사라지고 일본의 식민시대, 해방, 6·25 동란, 3·15 마산 의거, 4·19 학생혁명, 5·16 군사 혁명, 민주화 물결, 산업화의 완성 등 모든 일들을 하나 빠짐없이 겪어낸 세대입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덧붙여 2002년 한국과 일본이 나누어 개최하여 한민족의 자긍심을 한없이 드높였던 월드컵, 세계 시장에 괄목할 만한 프로젝트가 나올 때마다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던 일본 산업인들과의 애증,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정몽헌 회장의 자살, 중국 산업의 실체, 노무현 대통령과 산업현장, 한국의 노사분규, ‘욘사마’와 일본 산업의 사양화, 옛날 대학생들의 가정교사 이야기, 세계와 우리의 시민의식, 정주영 회장의 사소한 이야기들, 세계 해적 이야기, 아랍 선주와의 ‘길에서 읽는 한국 역사’, 찬란했던 신라 문화와 아랍과의 교역, 금강산에서 나누는 북한 유력 인사와의 진솔한 대화 등 흥미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시비에 끈질기게 콜탈을 처바르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적 유적지, 울산의 반구대, 경주 남산 등이 업무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영국과 유럽의 전통, 신흥경제대국으로 뻗어가는 노르웨이의 경이스러운 모습, 아랍의 신비로운 사회, 신화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어우러진 그리스, 일본 문화와 일상의 민 낯, 중국 산업화의 실상, 인도의 거대한 잠재력, 신대륙 미국의 새로운 전통이 조선 해운 이야기와 버무려져 전개됩니다. 조선해운 시장은 살벌한 뺏고 빼앗기는 일상의 전쟁터이지만 오히려 살아 있는 생물 같아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다양한 인간성을 포용합니다.
이 소설은 물론 배가 건조되어 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관련된 개개인의 역할이 부각됩니다. 특히, 이 소설은 우물 속 동네 이야기가 아니고 넓은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가슴을 열고 진행되는 외국인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 문화의 교류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해가는 한국인들을 조명합니다.
주인공은 배를 주문한 벨지움의 선주 클랜시(Clency)와 그의 친구 한국의 선박 중개인인 이재현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살만큼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선박에 관한 업무로 엮어져 있지만 그보다 그들은 살아온 인생과 그들이 체득한 철학을 통해 세계의 역사를 함께 꿰뚫어 봅니다. 세계의 역사, 우리의 역사,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혜를 되돌아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당돌한 여자 주인공 유인숙이 등장합니다. 서울의 유수한 대학교 역사학과를 나온 재원입니다. 그녀는 대학 졸업을 하고 울산의 요정에 접대부로 취업합니다.
“내가 역사를 연구해 보아야, 대기업에 들어가 월급쟁이를 해 보아야, 멀끔하게 생긴 부자집 아들과 결혼을 해 보아야 내가 내 인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고민합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큰 사람들이 노는 곳으로 가자.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직접 부딪히는 것이다. 거기서 인생이 무엇인지 역사가 무엇인지 결론을 내어 보자.”
그것이 그녀가 요정에 취업을 한 이유입니다. 거기서 얼마 전 상처한 클랜시를 만나고 어렵지 않게 클랜시의 애인이 되고 클랜시가 사는 브룻셀에 있는 작은 성의 집사로 고용됩니다. 거기서 그녀는 유럽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한국의 사회와 전통을 생각합니다. 세계의 시민의식을 살핍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 동안에 엄청난 경제적 기적을 이루었으면서도 국민의식은 초근목피로 생계를 유지하던 해방 후의 혼란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올바른 역사관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갈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동안 저축해 두었던 돈을 내놓아 ‘역사연구회’의 기금으로 삼습니다. 클랜시가 추가 출연을 하고 한국의 관계자들이 발벗고 나섭니다. 기성 사학계를 완전히 배제하고 대학 졸업반 학생들로 역사연구회를 조직하고 옥스퍼드 대학에 일년씩 돌아가며 다녀오기로 합니다. 거기서 영국이 체험했던 산업혁명과 그 후유증, 그리고 그들의 치유과정을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클랜시는 마치 그의 전생이 신라 사람이었던 것처럼 경주에 집착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경주의 남산을 찾습니다. 그 산자락에 앉아 역사를 생각하며 꼬인 인생의 실마리를 풉니다. 그가 한국을 찾는 것은 한국인들과 사업을 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남산을 찾는 것이 더 큰 목적이 됩니다. 거기서 그는 인생의 깊은 뜻을 얻으려 합니다.
이재현은 일본 친구 회사의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합니다. 세계 각국의 선주와 조선 해운 관계자들 백여 명이 함께합니다. 골프 모임입니다. 재현은 거기서 유럽 선주들과 한 팀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사십대의 캐디가 다른 손님은 완전히 무시하고 재현만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가 볼을 치고 클럽을 돌려주면 그것이 마치 그녀의 가보이기라도 하듯 정성스레 닦아 백에 담는 것입니다. 서비스를 받지 못하던 다른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그녀 눈에는 재현뿐입니다. 재현은 처음 그녀가 그에게 마음을 두는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 깨달았습니다. 그때 일본 열도를 휩쓸고 있던 ‘욘사마’ 배용준의 열풍 탓이었습니다. 욘사마의 출현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시민의식을 뒤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친일이네 반한이네 하는 낡아빠진 정치인들의 집착을 뛰어넘는 새로운 바람이었습니다.
또 재현은 사우디의 실권자와 함께 서울에서 울산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며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손님에게 이야기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박정희 대통령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검토되어야 한다.” 한국의 역사를 길에서 본 사우디의 실권자는 깊이 동감합니다.
재현의 사무실에는 박영호라는 재일교포가 함께 합니다. 일본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풍족하게 살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결심에 따라 북송선을 탑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일본에서 가지고 간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부모를 잃고 누이동생까지 자진합니다. 그런 와중에 그 혼자만 탈북을 해서 남한에 온 것입니다. 그가 재현의 사무실을 방문해 처음 내뱉은 말은 “김정일이를 쏴 죽이기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합니다”였습니다. 그의 눈을 통해 북한의 실상이 전해집니다.
금강산 여행을 합니다. 금강산을 통해 거기 있는 북한 고위급 관리의 생각이 전해집니다. 그는 단언합니다. “전쟁은 국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남북한 간에 차이가 나는 국력으로 전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70년대 말까지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큰 현판이 서 있었습니다. 논두렁 좁은 길을 미군이 먼지를 일으키며 두 줄로 행군합니다. 거기 땅바닥에 먼지와 궁핍으로 새카맣게 찌들은 아이가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습니다. 그 밑에 글자 한 줄이 있습니다. “전쟁고아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한국이라는 설명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한국입니다. 한국은 일제하에 있던 식민지, 육이오 전쟁으로 망가진 나라. 세상을 살아갈 의지도 능력도 없는 민족으로 70년대 말까지 버려진 나라였습니다. 정치적 식견이 뛰어난 처칠 수상 같은 사람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 막말을 했지요.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찾습니다. 그리고 경탄합니다. 쓰레기장은 말끔히 청소되었고 민주주의의 장미가 만발했습니다. 한국이 바뀐 것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합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들은 모릅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앞으로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감각이 없습니다. 이 소설은 제 나름대로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정체성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저의 노력이 여러분들에게 공감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